214.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1)

(김정운著, 쌤앤파커스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명지대 김정운교수는 특유의 입담으로 속칭, 잘 나가는 교수입니다. ‘남자의 물건’ 등 책 제목을 이상하게 작명하는데 오늘은 사모님들에게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아도 될 만한 제목의 책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소개드립니다.


김정운교수는 심리학자답게 인간 底邊(저변)에 깔린 이야기를 합니다. 프롤로그의 ‘가끔’ 후회하는 남편과 ‘아주 가끔’ 만족해하는 아내는 본인의 심리상태입니다. 2000년 독일에서 귀국해 명지대에 여가경영학 석사과정을 개설하고 정부의 여가정책포럼 위원장을 맡는 등 10여 개 직함을 갖고 노는 것만 연구하는 사람이지만 밀려드는 강의 청탁에 정작 본인은 놀지 못해 즐겁거나 행복할 시간도 없는 불행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쉽게 화내고, 자주 좌절하고, 사소한 자극에도 짜증부터 내는 아주 전형적인 한국 중년남자인 김정운 교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강연을 마치니 많은 사람들이 내가 쓴 책에 사인을 해달라고 모여들었는데 한 여자의 미소가 눈에 걸렸다. 군 시절 애인이었다. 그녀에게 전화하기 위해 여덟 시간을 걸어 나왔고 그녀와 마지막 통화 후 부대로 복귀하는 밤길은 내 인생의 가장 길고 슬프고 외로웠던 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생뚱맞게 내 앞에서 웃고 있고 나와는 애틋한 기억이 없다고 했다.

기억은 언제나 자작극이다. 그래서 옛 애인은 절대로 만나면 안 된다. 해석과 편집으로 인한 왜곡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마치 어릴 적 반나절을 걸어 다녔던 초등학교까지의 먼 길이 불과 몇 킬로미터에 불과하단 것을 확인했을 때의 허전함과 같다.


오랜 외국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견딜 수 없이 신기했던 것이 폭탄주였다. 저녁마다 폭탄주를 마시는 모습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비싼 양주를 보리차 마시듯 마셔댄다. 왜 폭탄주를 마시느냐 물었다. 빨리 취한다고 했다. 나는 또 물었다. 왜 빨리 취하려고 하느냐. 맨 정신으로 서로 멀뚱멀뚱 바라보며 이야기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몇 순배 돌아 눈이 흐릿해지면 비로소 말을 터놓고 이야기한다고 했다.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하기 두려운 것을 정신병리학에서는 ‘자폐증’이라고 한다. 술 취해 한 이야기 또 하고 또 하는 것은 이야기를 한다고 하지 않고 술주정을 한다고 해야 맞다. 이 땅의 사내들은 심각한 자폐증을 앓고 있는 것이다.


봄은 식물의 발정기이다. 흩날리는 꽃가루와 꽃잎은 식물의 정자, 난자다. 봄이 되면 우리가 설레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고등학교시절 배 꽃피는 시기에 온갖 구실로 조퇴를 하고 배꽃아래에서 뒹굴었다.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면 배꽃아래에서 키스를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꽃의 발정기에 어린놈이 환장한 거다. 봄이 되었는데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면 그건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아침마다 조기축구를 하는 것, 내 몸을 위해 보약을 먹는 것도 아내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대기업 사장으로 명예롭게 은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해외지사, 지방공장 등 정열적으로 일하던 시절의 대부분을 밖에서 보냈다. 그러다가 은퇴하는 날 불현듯 아내 생각이 났다. 아이들이 훌륭하게 자라 각각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고 있고 존경받으며 은퇴할 수 있었던 것은 다 아내 덕분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내 이제부터는 아내를 위해 살리라.’

그는 매일같이 아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고자 애썼다. 백화점에서 쇼핑백을 들고 있었고 우아한 호텔에서 식사를 했다. 해외 골프여행, 크루즈여행을 다녔고 주말이면 아내가 다니는 교회에 나가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은 더 이상 의무가 아니었고 아내의 존재가 즐겁고 감사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딱 3개월 후 아침 식탁에서 아내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당신, 이젠 제발 혼자 나가 놀 수 없어?’


왜 남자들은 서로 만나면 꼭 명함을 교환할까? 명함지갑도 따로 챙겨 가지고 다닌다. 도대체 왜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일까? ‘자신을 소개하는 행위’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문화심리학적으로 보면, 명함을 건네는 행위의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서로의 권력관계 서열을 정하기 위해서다. 서열이 정해져야 상호작용의 룰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서로의 사회적 지위, 연배의 순서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상호작용의 틀이 정해지지 않는다.


인간의 모든 행위 뒤에는 감탄의 욕구가 숨겨져 있다.

에펠탑을 보는 순간 ‘와~!’하며 꼭대기를 올려본다. 에펠탑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에펠탑을 보고 감탄하러 가는 것이다.

여름이면 바닷가로 가서 바다를 보며 ‘우와~!’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오른다고 말하면 또라이다. 정상에 올라가 ‘우와~!’ 감탄

골프에 미친 한국남자들 드라이버를 치고 ‘우와~!’ 감탄

술집에 가면 ‘어머 오빠! 왜 이리 멋있어?’ 싸구려 감탄에 지갑을 풀고 넥타이를 푼다.

‘지화자!’ ‘니나노!’ ‘얼쑤!’ 원래 우리나라에는 감탄사가 많았으나 지금 남아있는 감탄사는 고작 하나다. ‘죽인다.’ 그래도 집에서 감탄사가 많아야 행복한 가정이다. ‘아빠, 죽인다!’ ‘아빠, 죽이지?’


20세기의 남편들은 월급봉투를 ‘던져주며’ 자신의 존재를 느꼈다. 그때 남자들은 아내에게 꼭 월급봉투를 ‘던져준다.’고 했다. 마치 원시인들이 피투성이의 노루나 사슴을 어깨에 메고 와 기다리던 여인이나 자식들 앞에 척 던져놓으며 느끼던 그런 뿌듯함 때문이다. 아직까지 남자들의 육체적 ‘힘’이 가치를 만들어 내던 시기였기에 가능했다. 그런 사회를 사회학에서는 ‘산업사회’라고 한다. 그러나 21세기는 더 이상 산업사회가 아니다.


아침형 인간은 오후가 되면 집중력이 떨어져 오히려 생산성이 저하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세계 역사상 한국처럼 이렇게 짧은 기간에 이렇게 우뚝 선 나라는 없다. 동력은 새벽부터 일한 근면, 성실이나 세계사의 裏面(이면)을 보면 빨리 흥한 나라는 빨리 망한다. 한 시대를 발전시켰던 동력이 다음 시대로의 발전의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근면, 성실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참고 인내하는 근면, 성실은 아무 소용없다는 뜻이다. 참고 인내하는 방식으로는 창조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21세기의 핵심가치는 재미이다. 창의력 지식은 재미있을 때만 생겨나고 재미와 창의성은 심리학적으로 同義語(동의어)다.



마지막 대목은 ‘퍼스트 무버’의 저자 피터 언더우드 이야기와 같습니다. 한국을 이끌어 왔던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 일은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나게 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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