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수 박원식의 對談, 이다미디어刊)
광고인 박웅현 씨의 ‘책은 도끼다’에 ‘坐脫(좌탈: 앉은 채로 해탈, 열반하는 것)’이 소개된 후 시쳇말로 판화가 이철수 씨가 떴습니다. 저도 ‘책은 도끼다’로 인해 이철수 씨를 알게 되었고 홈페이지에 회원등록도 했습니다. ‘좌탈’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만공스님이 76세에 이른 어느 날, 저녁 공양을 맛있게 드시고 거울 앞의 자기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독백한 후 슬그머니 涅槃(열반)에 들었다.
‘만공, 이 사람아! 그동안 수고했네, 나는 가네!’
만공스님의 이야기를 판화로 그리고 글을 써넣은 것이 ‘좌탈’입니다. 글을 읽은 후 왜 제가 그간 이철수라는 글쟁이고수를 모르고 있었는지 후회될 정도였습니다. 짧디 짧은 글로 어떻게 스님의 성격과, 좌탈 한 모습과, 불교의 윤회사상을 그려냈을까? 앉아서 열반에 들어가신 노스님을 생각하시면서 읽으시면 누구나 도끼로 머리를 찍히듯 강열한 인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좌탈
염주 끈이 풀렸다.
나 다녀간다고 해라.
먹던 차는
다 식었을 게다
새로 끓이고
바람 부는 날 하루
그 곁에 다녀가마.
몸조심들 하고
기다릴 것은 없다.
이철수 씨는 농사지으면서, 판화도 그리면서 세상을 살아갑니다. 한때는 노동운동의 걸개그림을 그리기도 했지만 그것이 옳지 않게 쓰이는 것을 보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여전히 사회비판적인 글과 판화를 많이 내놓지만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이철수 씨가 저자이고 박원식 씨가 편집했으나 실은 둘의 대화를 옮겨 놓은 책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농사를 지으며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온갖 微物(미물)들로부터 마음 공부 하고 있는 이철수 씨 말을 들어보기로 합니다.
우리는 굉장히 어렵게 살아왔고 지금도 어렵습니다. 언젠가 이런 환경에서 자란 딸아이가 이런 말을 합디다. “저는요, 가난하게 살아도 재미있게는 살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듣고 안심이 됐어요. 요즘 젊은이들을 88만 원 세대라 하죠. 무슨 수로 가정을 꾸리죠? 안타까워요. 그러나 어떻게 보면 젊은 날의 가난은 당연해요. 부유한 젊음. 이게 오히려 부자연스럽지요?
하늘은, 자연은 누구의 편을 드는 경우가 없어요. 자연은 그냥 자연의 일을 할 뿐 사람의 역정을 드는 것은 아니구나. 참 공평하구나. 이런 깨달음은 농사짓고 살지 않았으면 몰랐을 거예요. 우리에게 절실하게 소중한 일도, 하늘의 큰 눈으로 보면 사소할 뿐, 욕심으로 자연을 바라볼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자연의 다채로운 변화도, 조화도 그게 원래 그렇다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과의 관계에서 듣게 되는 고까운 소리도 공평하게 들을 줄 알게 됩니다.
누군가는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고 했지만, 저를 지켜준 건 온통 사람이었어요. 대숲에서는 쑥도 곧게 자란다고, 좋은 사람 곁에 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에요. 제가 스스로 많이 모자라고 상처도 많았지만, 좋은 분들 덕분에 그럭저럭 사람이 됐어요. 세상을 어떻게 살까, 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어요. 좋은 사람들 곁에 줄 잘 서라고! 반듯하고 정직하고 순수한 사람 곁에 머물라고! 유명한 사람들 곁에 서려고 하지 말고!
사람과의 관계가 제일 어려웠습니다. 저도 지혜가 있다고, 마음이 있다고, 내색을 하며 살아요. 그렇게, 부정한 기운을 가장 많이 내뿜는 게 사람이더라고요. 삿된 거지요. 욕심이 서로 부딪치니까 어려운 걸 거라고 생각은 하지요. 무욕이라도 쉽지 않을 거예요. 그도 용납이 안 되는 게 세상이지요. 사람 관계 속에서 늘 어려웠어요.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자연 속에선 내 마음이 묻고 내 마음이 답합니다. 물음도 답도 조용하게 오가죠. 그러나 사람과의 관계에선 내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하고, 곡해나 오해도 생기고, 나만의 생각으로 그치게 되고... 늘, 마음 그릇이 작아서, 다 받아 낼 수 없었던 게 제일 문제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