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 책만 보는 바보(1)

(안소영著, 진경문고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스물한 살 난 조선 선비 이덕무는 1761년에 쓴 짧은 자서전인 看書痴傳(간서치전: 책만 보는 바보 이야기)을 썼습니다. 하루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그는 작은 방에서 햇살을 따라 책상을 옮겨가며 책을 읽었습니다. 깨우쳐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막히는 구절이 나오면 얼굴이 어두워졌고 문득 깨우치면 바보처럼 웃기도 했습니다. 이덕무는 서자였기에 뜻을 펼칠 기회가 없었고 스스로를 책만 보는 바보라 했지만 이덕무와 그의 벗들은 책 속에서만 머물지 않아 그들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불립니다. 이 책은 책만 보는 바보, 간서치, 이덕무와 그의 친구들 이야기입니다.

# 이덕무(1741~1793): 조선후기의 실학자. 규장각에서 일하며 많은 서적들을 정리하고 감수했다.


아홉 살 아래이지만 박제가는 나의 벗이다. 그의 성격은 거침이 없었고 옳고 그름이 분명했다. 하지만 주위사람들은 박제가의 됨됨이가 글러 먹었다고 했다. 도무지 위아래도 모르고 잘못된 것을 보면 누구에게나 눈을 부라리고 자신이 옳다고 여기면 생각을 굽히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내면은 착하고 항상 서민들의 삶을 걱정하며 연구했다. 언젠가 그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위아래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정말 싫습니다. 예의를 지키라는 이야기 같지만 결국은 집안이나 신분, 벼슬의 높고 낮음에 따라 고개를 숙이는 것을 정하라는 것 아닙니까? 옳고 그름에 따라 고개를 들고 숙여야지, 어찌 그 사람의 껍데기만 보고 고개를 숙이겠습니까?’

#박제가(1750~1805) 조선후기 실학자. 서자로 태어난 불우한 천재로 불리며 당대의 개혁가이나 조정에서는 그의 의견을 받지 않았다.


박제가도 서자이고 유득공도 서자이다. 나의 벗 유득공은 나보다 8살이 어리다. 거듭되는 흉년으로 식구들이 굶고 있었고 집안에 남은 것은 ‘맹자’ 한 질 밖에 없었다. ‘맹자’를 팔아 양식을 얻었고 아이들의 얼굴에는 핏기가 돌았다. 명색이 선비인 내가 책을 팔아서 먹을 것을 얻다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유득공의 집으로 발길이 향했다. ‘자네, 오늘 내가 누구에게 밥을 얻어먹었는 줄 아나?’ 여느 때와 달리 허둥대며 붉게 달아오른 나를 어리둥절하게 쳐다보았다.

‘글쎄 맹자께서 양식을 잔뜩 갖다 주시더군. 그동안 내가 당신의 글을 수도 없이 읽어 주어 고마웠던 모양일세.’

‘아...’ 가느다란 한숨과 함께 유득공의 얼굴에는 안타까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유득공은 얼른 서글픈 표정을 감추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요, 그러면 나도 좌 씨에게 술이나 한잔 얻어먹어야겠습니다.’

그러고는 책장에서 左氏春秋(좌씨춘추)를 뽑아서 술을 사 오게 했다. 오래도록 비어있던 창자였는지라 술기운이 빨리 올랐다.

유득공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편안하게 해주는 독특한 기운이 있었다. 박제가가 어느 날 이런 이야기를 했다. ‘유득공의 마음속에는 우물 하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근심 걱정도 한 번 담갔다 하면 사뿐하게 걸러져 밝은 웃음으로 올라오게 하는 우물 말입니다.’

#유득공(1749~?) 조선시대 실학자. 박지원의 문하생으로 산업진흥을 주장하였다.


백동수는 두 살 어린 친구이자 나의 처남이다. 무인의 집안 자손답게 그는 칼싸움을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나는 글을 쓰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가 계신 평안도를 혼자서 오고 갔다. 어린 나이에도 담력이 세고 두려움이 없었다. 훈련도감에 있었고 劍仙(검선)이라 불리었던 김광택에게서 검술을 배우고, 진정한 무예의 길은 창과 검을 그치게 하는 것이란 가르침을 받는다. 사람을 상하게 하는 무술을 하려면 사람을 낫게 하는 의술도 익혀야 한다는 스승의 말에 의술도 익혔다.

백동수의 집 사랑방에는 樵漁亭(초어정)이란 현판이 있다. 나무꾼과 어부의 집이란 뜻인데 박제가가 써준 것이다. 사랑방에는 늘 손님들로 북적거리는데 연암선생과 말 타고 활 쏘는 사람은 물론이고 장안의 왈패들도 건들거리며 찾아오며 樂工(악공)과 畵員(화원)도 드나들었다. 백동수는 장사꾼이 살아가는 방법, 농민들의 어려움, 뛰어난 물건을 만드는 장인이나 푸대접을 받는 사람들을 초어정에서 만나 세상공부를 했다.

#백동수(1743~1816) 조선시대 무인으로 학문에도 힘썼다.


어렸을 때는 아버님께 글을 배우고 익혔지만 그 후부터는 혼자 책을 보며 뜻을 깨우쳤다. 이해되지 않는 구절이 있을 때는 앞에서 이끌어줄 스승생각이 간절했다. 드디어 스승을 만났다. 담헌 홍대용선생과 연암 박지원선생이다. 두 분은 조선의 현실을 똑바로 보고 조선 사람들의 생활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학문을 하는 분들이다. 담헌선생은 우리들에게 ‘우리가 밟고 있는 땅,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네. 세상은 드넓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자연에도 저마다의 법칙이 있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려면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네.’

연암선생이 옆에서 거들었다.

‘그러면 이제까지 지니고 있던 선입견은 버려야 할 게야. 특히 우리는 작은 나라에 산다고 해서 너무 스스로를 낮추어 보는 버릇이 있어. 큰 나라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려 하지. 하지만 우리는 조선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게나. 조선 사람의 눈으로, 조선 사람에게 이로운 것을 보고 배워야 할 것이야.’

#홍대용(1731~1783) 지구 자전설을 주장한 실학자

#박지원(1737~1805) 열하일기로 유명한 문장가, 실학자, 개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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