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멀리서 빈다
누이의 세 번째 수필집 ‘자카란다 꽃잎이 날리던 날’은 詩人 나태주선생님께서 편집하고 교정하고 揷畵(삽화)를 넣어주셨습니다. 누이가 병원을 전전하고 있어 출판사에서 보낸 책이 우리 집으로 배송되었을 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어쩌면 누이의 마지막 책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병이 깊었기에 누이가 책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어서 나태주시인께서 직접 나서서 책을 묶어주셨습니다.
선천적으로 신장이 약한 누이가 신장이식을 받기 위해 한국에 머무는 몇 개월 동안, 나태주시인은 본인 책을 50권 이상 발간하신 실력으로 누이 원고를 정리하고 편집하고 삽화를 그려주시는 고생을 감당하셨습니다. 시인은 평소에도 자손들이 갖고 있어야 한다며 선친의 시와 시집을 챙겨주시고, 명절이 되면 공주 특산품인 밤, 묵말랭이 등을 잊지 않고 챙겨주십니다. 자그마하신 체구에 시도 쓰시며 공주문화원 원장님으로 활동하고 계신 나태주선생님은 이렇게 정감 많으신 분이십니다.
시인의 자손이지만 詩集(시집)에는 좀처럼 손이 가지 않습니다. 중, 고등학생시절 시험공부 하느라 ‘이육사의 광야’, ‘김소월의 진달래꽃’에 대한 해석을 신물 나게 외었던 트라우마 때문일까요? 詩는 기계적으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읽고, 받아들이는 사람의 주관적 해석에 맡기는 교육이 필요할 듯합니다.
오늘은 나태주시인의 시 두 편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가끔은 마음속 영혼도 배고프지 않게 양식을 주어야 하니 말입니다.
아래 ‘풀꽃’이란 제목의 시는 2006년 ‘이야기가 있는 시집’, 2009년에 발간된 시집 ‘너도 그렇다’에 소개되었으나 2012년 봄 광화문/강남 등 교보문고 빌딩에 커다란 플래카드로 걸어 놓아서 더욱 유명해진 詩입니다. 달랑 3줄짜리 詩로 처음 보시는 분들은 ‘뭐야? 끝이야?’하셨겠지만 들판의 이름 모를 풀꽃에 대한 표현임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길게 늘여 쓰고 치장하면 소박한 풀꽃이 아닌 화려한 관상화에 대한 詩겠지요. 수줍게 피어난 풀꽃이니 소담스럽지도 않고, 눈에 잘 보이지도 않으며 촌티 나는 시골 꽃이지만 자세히 보면 올망졸망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냉이꽃 같은 풀꽃은 정겹기까지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자세히 보면 예쁘고 정겨우며, 오래 보면 사랑스럽습니다.
풀꽃
- 나태주 -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또 다른 한 편의 시를 소개드리는데 이번에는 주절이 주절이 설명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또박또박 두 번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멀리서 빈다
- 나태주 -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으로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위의 시에서도 잔잔한 사랑이 묻어납니다.
어딘가에 살고 있는 당신으로 인해 세상의 아침이 있고
멀리 있는 나로 인해 저녁이 고요하다.
시간은 많이 흘러 어느덧 가을이다.
소중한 이여
다시 만날 때까지 아프지 말고 편안하시게.
상대가 연인일 수도, 친구일 수도 또는 가족일 수도 있으나
가수 백지영이 부른 ‘총 맞은 것처럼’ 가사같이 직설적이고 화려하지 않지만 또한, 가슴이 뚫리지도 않았는데도 사랑이 절로 묻어나옵니다. 제가 느낀 감정이 누이를 통해 시인에게 건너간 후, 해석을 잘못했다고 나태주시인께서 흉 보셔도 무방합니다. 詩人의 손을 떠난 詩語는 더 이상 시인의 소유가 아닌 독자 소유이기에
PS) 2013.01.02 매형 신장을 성공리에 이식받은 누이는 몸을 추스르고 계시고, 꽃 피는 봄이 오면 미국으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