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나. 副캐, 本캐
전편의 마지막 문단: 소유하지 않고 검소하셨던 법정스님과 김수환 추기경님이 옷이 남루해서, 오래된 중형승용차를 타고 다닌다고 잘 살지 못했다거나 행복하지 않았다고 평가할 수 없다. 돈 많은 이병철, 정주영 회장과 권력을 움켜쥐었던 박정희, 노무현대통령이 거리낄 것 없이 잘 살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그분들이 생각한 ‘잘 살기’는 무엇이었을까? 결국 자신이 옳다고 믿은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하다가 생을 마친 분들이었기에 후대사람들이 잘 살았다고 평가하는 것이 아닐까? 사실 그분들은 후대의 평가조차 신경 쓰지 않고 본인이 옳다고 믿은 본인의 삶을 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분들이 아니었을까?
‘잘 살고 있는지?’, ‘나의 길을 가고 있는지?’ 가끔 나 자신에게 물어보는 질문이다. 물가에 가면 또 다른 내가 앉아 있다. 멍하게 앉아 또 다른 나에게 독백하듯 물어본다. ‘어이, 잘 살고 있어?’,
미친놈 같아도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고 자신을 돌아보곤 한다. 타인의 평가에 기분이 업 되거나 의기소침하게 될 수는 있지만 일희일비하게 되면 자아를 잃고 타인에 대한 의존성만 높일 뿐이다. 결국 정답은 내 마음속에 있다.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기 위한 방법으로 ‘부캐(副character)’를 만들어 ‘본캐(本character)’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자주 하다 보니 몸을 이탈한 ‘副캐’가 아닌 ‘本캐’가 되고 낚시의자에 멍청하게 앉아있는 ‘本캐’가 ‘副캐’가 되는 부작용도 있다. (혼동이 심해지면 정신분열이라 하던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자신을 돌아보는지 몰라도 ‘本캐’, ‘副캐’ 만들기는 독창적 방법이 아니다. 회사에서 업무 하며 배운 방법이기도 하고, 古典(고전)에 소개된 방법이기도 하다.
장기 계획을 수립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각개 부서에서 수립 추진 중인 세부계획을 조합하여 장기 계획을 만드는 방법이 있다. 두 번째는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단기, 중기, 장기 등 단계별 마일스톤, 플로우차트 등으로 프레임을 설정한 후 단계별 세부계획을 만드는 방법이다. 전자가 bottom up방식이라 한다면 후자는 top down방식이다. 후자는 계획 수립 효율이 높고 방향성이 뚜렷한 장점이 있으나 프레임 설정이 현실을 도외시했다면 추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전자는 해당부서의 고유계획이니 실행력이 높을 수 있지만 전사적 역량결집에는 다소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경험상으로는 적절히 혼합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bottom up, top down과 무관하게 장기계획을 기획하는 사람은 세부계획을 수립하는 부서 또는 사람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봐야 한다. 송골매가 하늘 높은 곳에서 매의 눈으로 鳥瞰(조감)하여 먹잇감을 찾듯, 부처님이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는 손오공 바라보듯 해야 한다는 것이다. 눈높이를 내리게 되면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리느라 커다란 줄기를 바로잡지 못할 수 있다. 企劃(기획)하는 사람들이 이른바 big picture를 그리려 한다면 항상 높은 곳에서 봐야 한다. 그렇게 해야 객관적 시각과 판단력을 갖게 되며 길을 잃지 않는다. 낮은 곳에서, 세부사항에 매달리기 시작하면 길을 잃게 된다. 같이 기획업무를 했던 후배들은 높은 곳에서 보는 것에 익숙하다.
副캐, 本캐와 관련된 대표적 고전으로 ‘이솝우화’와 ‘莊子(장자)’를 꼽을 수 있다. 이솝우화는 주로 동물을 의인화하여 표현했지만, 莊子는 스케일이 블록버스터 급으로 공상과학 또는 만화영화 같은 비유가 많다.
‘촉만지쟁(觸蠻之爭)’ 또는 ‘와각지쟁(蛙角之争)’은 달팽이 뿔 위의 전쟁을 人間事(인간사)와 비유한 것이다. 달팽이 왼쪽 뿔 위에 觸나라, 오른쪽 뿔에는 蠻나라가 있다. 서로 땅을 빼앗기 위해 수시로 전쟁을 벌였고 치열하게 싸우다 보니 죽어 널브러진 시체가 수만에 달했다. 도주하는 패잔병을 쫓아 나서면 보름 후에나 돌아왔다. 달팽이를 지구, 점 하나에 지나지 않는 달팽이 뿔을 나라로 비유한 것이니 인간은 바이러스나 대장균정도에도 지나지 않을까 한다. 人間事가 아무리 처절하고 절박해도 우주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달팽이 뿔 위의 바이러스 정도로 하찮은 것이다.
미시적으로 들어가 보자. 전쟁에 참전해 싸우는 군사는 對敵(대적)하고 있는 상황에 몰입되어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한다. 적군의 창, 칼을 받아내기에도 버겁다. 널브러진 수만의 시체와 매캐하고 자욱한 연기로 천지분간이 어려우니 우리가 이기고 있는지, 내가 싸우고 있는 곳이 우리 진영인지 아니면 적군의 한복판인지 조차 분간하기 어렵다. 용감히 싸우고 있지만 현재 처한 상황이 두렵고 당혹스럽기만 하다. 이렇게 사는 것이 人間事다.
거시적으로 보자. 북쪽 바다에 살고 있는 鯤(곤)이라는 물고기가 어느 날 鵬(붕)이 되어 하늘을 날았다. 한번 날아오르면 육 개월을 날았고 구만리까지 올라간다. 鵬새의 관점에서 내려다보자. 구만리 높은 곳에서 본 두 나라의 전쟁터는 달팽이 뿔의 까만 점에 지나지 않아 존재조차 없는듯하다.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지만 조금 근접해서 보면 커다란 싸움이 벌어져 시체가 즐비하고 불과 연기로 자욱한 아비규환이다. 鵬새가 땅으로 내려와 더욱 근접하여 전쟁 속으로 들어가면 치열하게 싸우는 군사 중의 한 명이 된다. 싸우는 군사도 나 자신이고 鵬새가 되어 조망했던 사람도 나 자신이다. 장자는 副캐, 本캐를 자유자재로 표현했으며 시공간을 초월했다.
내 삶도 여느 인간사와 마찬가지로 업무에 몰두해 있거나 물결에 휩쓸려 있으면 시야가 좁아지고 잘, 잘못을 분간하기 어렵다. 10대 때는 질풍노도의 시기였기에 나 자신을 보지 못했다 치더라도 20대, 30대 때는 무엇을 하느라 나 자신을 쳐다보지 못했는지 조차도 기억나지 않는다. 남들보다 한 발이라도 앞서기 위해 내달렸고 남들이 달리니 영문도 모르면서 내달렸을 가능성이 많다.
鵬새와 같이 현안에서 빠져나와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잘 되고 잘못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무리 골치 아픈 문제가 있더라도, 도저히 풀지 못할 난제에 부딪쳤더라도, 헤어 나올 수 없는 절망감에 빠졌더라도 잠시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本캐와 副캐를 분리시킨 후 높은 곳에서 쳐다보면 많은 것이 보인다.
낚시의자에 멍하니 앉아있는 本캐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어이, 잘 살고 있어?’, ‘그동안 고생했어.’, ‘이제 어떻게 할 거야?’
本캐가 피곤한지 말이 없다.
‘힘들면 잠시 한숨 돌려도 괜찮아.’ ‘그간 고생했어. 쉬엄쉬엄해.’
本캐와 副캐를 분리시켜 놀고 있는 나를 보고 미쳤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살아가면서 가끔씩은 높게 올라 삶을 조망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 살았던, 잘 살지 못했던,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와 鵬새처럼 높게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처음에는 쉽지 않을 수 있지만 눈을 감고 달팽이 뿔에서 높게 올라가 세상을 내려 본다고 상상하면 손톱만 한 지구가 보인다. 눈 뜨면 상상했던 그림들이 사라질 수 있으니 눈뜨지 말고 즐기면 된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다 보니 本캐와 副캐를 만들어 물어보는 대목이 나온다. 많은 사람이 비슷하게 또 다른 나를 갖고 있는 듯하다..
나 어디로 가고 있나?
마음공부에 첩경이 있다는 투의 유혹이 간간이 보입니다.
마음공부에 지름길이 어디 있나요?
과외 수업, 족집게 과외 따위가 있을 턱이 없습니다.
자고, 먹고, 입고하는 일하느라 숨이 가쁘고 마음 허덕이게 되는
나 자신이 가련해 보이면 거기서 시작이지요.
내 문제라 남이 대신할 수 없습니다.
가을로 접어드는 길에 - 나 어디로 가고 있나? 한번 해보시지요!
- 자고 깨어나면 늘 아침 (이철수著, 삼인刊) -
2023.07.16 임순형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