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빨리 걸었다. 그래서 우리 영혼이 따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웨스턴스타일 영화를 보면 백전백패, 미개한 야만인으로 등장해서 문명이 없거나 생각 없이 살 것 같은 아메리카 인디언 이야기를 드려보고자 합니다.
아메리카 인디언 속담에 ‘다른 사람 모카신을 신고 십리를 걸어가 보기 전에는 그 사람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민족의 이야기지만 우리나라 정서에 맞는 단어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易地思之(역지사지)가 적합할 듯합니다. 상대방 입장을 헤아리는 정신은 세계 어느 곳에나 있고 어느 곳에서든 통하나 봅니다. 속담은 아니지만 미국에 가면 ‘After You’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출입문을 들어서거나 나설 때 타인에게 양보하는 정신과 태도가 몸에 배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출근길 대중교통이 ‘지옥철’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혼잡하여 ‘After You’ 정신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용서할 때도 역지사지와 배려가 필요합니다. 용서는 내 처지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하는 것이며 그래야만 진정한 용서이며 상대 마음까지 치유됨은 물론 굳게 닫힌 내 마음의 문도 활짝 열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참 전 기획처 전략투자팀 주관 회의가 있었습니다. PRM(Project Risk Management) 위원회와 관련된 회의라 사전에 자료검색을 했습니다. PRM위원회는 사업 착수 전 프로젝트에 어떠한 위험이 있고 어떻게 회피할 것인가 논의하여 안전하게 수익을 창출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위원회입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대우건설과 포항제철의 사례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회사는 껍데기만 위원회이나 두 회사는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소개되었는데 바탕에 깔려 있는 주제는 疏通(소통)이었습니다. 절차와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관련자 전원이 참여하여 진솔하게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 이야기하는 것보다 좋은 제도가 없다는 결론인데 우리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간과하면서 살아갑니다.
또 회의하나? 어떻게 오늘은 출근부터 퇴근 때까지 회의만 하지? 기술개발실은 작년에 밀려있던 2년간 과제를 심의하느라 기술개발 심의위원회를 20번 개최했습니다. 저희 실에서 주관하는 회의인데도 회의가 많은 날에는 퇴근 무렵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온종일 회의만 했는데 월급을 받아가도 되는가 하고 자문해 봅니다.
중지를 모으고 경험을 나누어 회사가 잘 되자고 하는 것이 회의인데 타 부서 회의가 길어지면 시간을 빼앗는 일로 치부합니다. 이때도 소통과 역지사지가 필요하겠지요.
아메리카 인디언 이야기가 나왔으니 또 다른 이야기 한 꼭지.
탐험가들을 안내하던 인디언들이 갑자기 멈춰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탐험가들이 총과 칼로 윽박질렀지만 인디언들이 꼼짝하지 않다가 이틀 후 목적지에 도착 후 멈춘 이유를 물었다.
‘너무 빨리 걸었다. 그래서 우리 영혼이 따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우리나라속담에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에 매어 쓰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쁘다고 해도 바늘허리에다 실을 매어 쓸 수 없는 것같이 아무리 급하다 할지라도 순서와 격식을 어기고 할 수 없다는 속뜻이 담겨 있습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도 있듯 삶에도 여유가 필요합니다. 굼뜨다고 나쁘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 선조들은 한가로이 자신을 성찰했고 갈 길은 바빠도 풍광이 좋은 곳에서는 詩 한수 읊조리는 삶의 여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너무 빨리 걸었기에 쉬어야 한다는 인디언 이야기는 허둥대다가 더욱 늦게 가고 다른 길로 가기 쉬우니 급할수록 빠른 길보다는 정확한 길로 가라. 즉 차분하게 일처리를 하라는 말씀이지요. 느리지만 정확한 길로 가기 위해 아랫글을 읽으면서 5분간 휴식하며 기지개를 켜보겠습니다.
쉬어가라
쉬어가라.
나는 왜 이렇게
빨리 달려가는 것일까?
나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일까?
충분히 쉬도록 하라.
그리고 나면 계획했던 길을
더 힘차게 나아갈 수 있다.
- 안젤름 그륀의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