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을 튀길 때면 일탈행위를 해볼까 하는 충동이 올라온다.
백수가 과로사할 정도로 바쁜 날도 있지만 대부분은 여유 있다. 시장보고 주방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니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하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라도 하루 세끼를 준비하다 보면 과연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을 정도로 먹고 뒤돌아서면 다음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솔직히 직장 일보다 집안일이 더 어렵고 힘들다.
배우 차승원, 유해진 씨가 출연했던 예능프로그램 ‘삼시 세끼’를 재미있게 봤었다. 부식을 직접 조달하느라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먹고 돌아서면 다음 끼를 준비하는 그들을 보고 예능이니 조금 과장된 연출이거니 했었지만 겪어보니 과장이 아니었다. 적확한 표현은 아니겠지만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세상사나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 보면 비극이다. 가까이 보고 겪어보니 삼식이가 되려면 중노동을 감내해야 한다.
아침은 주로 빵으로 해결한다. 식빵이나 치아바타같이 밍밍한 맛의 빵을 올리브오일과 발사믹 식초에 찍어먹는 것을 좋아하니 과일만 곁들이면 제일 간단한 아침식사다. 커피 한 잔 후 반려견 산책을 다녀오면 점심식사 준비를 해야 한다. 주재료는 택배로 주문하지만 산책길에 간단하게 장을 본다. 점심 후 책을 보거나 끄적거리다 보면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다. 굳이 시계를 보지 않아도 반려견은 시계를 먹었는지 정확하다. 밥시간이 가까워오면 문 앞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해 5시 되기 전부터 밥 달라고 낑낑거린다. 4시 30분부터 주방에서 메뉴를 정하고 칼질을 시작한다. 메뉴에 따라 무, 당근, 양파, 버섯, 청양고추. 마늘, 양배추 등을 다듬고 필요하면 소스를 만든다.
하루 세끼 음식 만들며 설거지하는 일 량을 따지면 대한민국 모든 주부들은 슈퍼우먼이다. 전업주부도 힘든데 워킹 맘들은 슈퍼 울트라 우먼이다. 여성해방과 가사노동에서의 탈출은 주방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 주방일 뿐 아니라 청소, 빨래도 해야 한다. 빨래는 세탁기, 건조기가 있으니 일도 아니라는 이야기는 거짓이다. 세탁물을 분류해 손상되는 세탁물은 세탁망에 넣어야 하며 엉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셔츠류 소매는 몸통 단추에 채워야 한다. (셔츠가 세탁기 안에서 회전하며 저절로 단추가 채워지는 줄 알았다.) 빨래가 완료되면 건조기에 넣어야 하며 건조기 필터를 매번 청소해도 먼지를 합쳐보면 작은 쥐만큼의 분량이 나온다.
건조 후에는 옷, 내의, 양말을 구분하고 짝 맞춰 개어 놓아야 한다. 개어 놓는 것까지 완전 자동화되기 전에는, 빨래는 일도 아닌 것이 아니라 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청소는 반려견 산책시간에 맞춰 로봇청소기가 열심히 청소한다. 일 량을 상당히 줄여주나 로봇청소기 손이 닿지 않는 식탁, 테이블 위의 먼지들은 주부 손길이 닿아야 한다.
예전 냉장고, 청소기, 세탁기, 건조기 없던 시절에 비해 일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옷을 자주 빨아 입고 신선한 음식을 먹는 등 생활수준 향상에 기여한 것이지 노동량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키지는 않은 듯하다.
가사노동에 시달리며 하루 세끼를 먹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자연스럽게 두식이가 되었으며 체중도 줄었다. 사실 의도된 다이어트는 아니었다. 통풍으로 아팠던 10일 동안 4Kg이 빠졌다. 식욕이 떨어졌고 小食(소식), 그리고 식단을 변경한 덕분이다. 이렇게 쉬운 다이어트를 그동안 하지 못한 것은 결국 식탐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먹는 것에도 인생총량의 법칙이 적용되는지 나이 들며 먹을 수 있는 음식종류가 줄어든다. 통풍의 주범으로 꼽히는 음식들이 기름진 고기와 酒類(주류)였으니 어쩌면 평생 먹을 고기와 술을 미리 먹었기에 발병한 것일 수 있다. 기름진 고기는 불확실하나 술은 평생 먹을 양을 초과한 것이 확실하다.
아내가 만든 식단은 섬유질 일색이다. 요산을 만드는 퓨린이 많은 식재료, 신장에 좋지 않은 칼륨이 많은 식재료, 고혈압에 좋지 않은 염분은 가급적 피해서 조리한다. 게다가 모든 야채는 물에 담가 칼륨을 빼낸 후 조리한다. 통풍에는 당분도 좋지 않아 비스킷, 과일주스 등 간식도 끊었다.
기름 잘잘 흐르는 소고기, 돼지고기도 제한하고, 튀기면 신발까지 맛있다는 튀긴 음식도 제한하니 후라이드치킨은 구경한 지 오래며 야채 볶을 때도 식용유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참치, 고등어, 멸치와 같은 등 푸른 생선과 頭足類(두족류)와 貝類(패류), 甲殼類(갑각류)도 좋지 않으니 흰 살 생선을 먹어야 한다. 이마저도 단백질은 1일 150g 정도로 제한한다.
염분섭취를 줄이기 위해 국물음식은 만들지 않는다. 국물요리는 염분이 많기에 국과 찌개를 끓이지 않는다. 거의 매끼, 밥 반공기는 국에 말아먹었으나 이제는 불가능하다. 기껏해야 양념 없이 조리하는 샤부샤부 정도다. 사실 먹을 것이 거의 없다. 대신 신맛과 매운맛으로 미각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달고 짠맛을 대체한다.
조식은 사과 반 개와 삶은 계란 한 개, 중식은 야채비빔밥, 석식은 밥과 구운 채소를 마늘과 청양고추를 넣은 초간장에 찍어 먹는다. 단백질은 두부, 계란, 흰 살 생선으로 충당한다. 식탁 위에 지방은 없고 탄수화물은 줄였다. 山寺(산사)의 식단과 비슷하다.
감량속도는 늦춰졌으나 신기하게도 발병 3주 차에 5Kg, 4주 차에 6Kg을 감량했다. 피골이 상접했냐고? 체중의 10%도 되지 않는다. 허리 살이 많이 빠졌으나 아직도 뱃살이 두툼하다. 자주 입는 청바지가 헐렁해졌으며 몸도 가벼워진 것을 느낀다. 부작용은 덩달아 아내 체중이 줄어드는 것이다. 수십 년간 40Kg 중후반대로 결혼 전 체중을 유지하고 있는 아내도 무려 2Kg이나 체중이 줄었다.
아침이면 당연하게 복용했던 고혈압약도 끊었다. 어느 날부터 앉았다 일어나면 어지러운 저혈압증세가 있어 혈압을 측정하니 90/70mmHg 이하였다. 혈압 내려간 것이 좋은 징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혈압약 복용을 보름간 중단하고 혈압변동추이를 기록했다.
의사는 다이어트로 혈압의 5~10%를 낮출 수 있으나 3개월 정도 지나면 다시 올라갈 가능성이 많단다. 110mmHg 이하로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2종의 혈압약에서 1종으로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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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 데리고 산책 나가면 프랜차이즈 빵집 앞을 지나야 한다. 그 집 빵을 선호하지 않지만 빵 굽는 냄새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빵 굽는 냄새까지는 참을만하나 도넛을 튀길 때면 발길을 돌리기 너무 아쉽다. 기름, 설탕, 크림..., 일탈행위를 해볼까 하는 충동이 올라온다. 산책 경로를 변경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