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일著, 저녁달刊
저자는 인지심리학자다. 인지심리학은 실험심리학의 영역 중 하나로, 행동의 주관적인 측면을 중시하여 지식 획득과 심리적 발달 등 연관된 정신적 과정을 탐구하는 심리학 분야이자 정보처리 관점에서의 인지활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프롤로그: 능력보다 상황이다.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물리학적인 시각으로 들여다보는 인지심리학자들은 오랜 연구와 실험을 통해 방대한 데이터를 모았습니다. 놀라운 실험결과들이 담겨있지만 그래프와 표가 난무하는 인지심리학 학술서에 사람들이 쉽게 다가가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인지심리학은 세상 속으로 사람들과 만나지 못했습니다.
인지심리학자로 30년을 지내다 보니 약간은 통찰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언제인가부터는 인지심리학이 뭔지 물어보시는 분들께 이런 답을 드립니다. ‘인지심리학은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을 구분해 주는 학문입니다.
인지심리학을 전공하는 연구진이 실험을 통해 데이터를 얻고, 반복된 연구를 통해 수많은 데이터를 축적하면, 상수와 변수에 대한 안목이 생깁니다. 어떤 것은 잘 변하지 않고 어떤 것은 쉽게 변한다는 것을 분별하는 견식이 생긴다는 겁니다. 인지심리학을 공부하는 묘미 중 하나가 바로 이 상수와 변수에 대해 알아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왜 중요할까요?
인생에서 가장 쉽고 빠르게 불행해지는 방법 중 하나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고 하는 것’입니다. 공감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리고 인생을 허망하게 보내는 방법 중 하나가 ‘바꿀 수 있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격과 지능지수의 상당 부분은 타고납니다. 그러니 상수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성품과 지혜는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변수입니다. 그렇다면 상수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변수를 가지고 무언가를 시도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상수보다는 변수가 당연히 더 힘이 셉니다.
창의성은 상수처럼 보이지만 변수입니다. 타고 나는 게 아니라 창의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상황’으로 바꿀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나의 창의성이 달라집니다. 타인과 적정한 거리를 두면서 잘 지내는 능력도 타고난 성격이나 기질이 아니라 ‘상황’에 달려 있습니다. 이 책은 타인과 나 사이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바꿀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타인과 나 그리고 삶’이라는 주제로 수많은 상황 바꾸기 방법을 소개합니다. 이 책이 전가의 보도와 같이 강력한 해결책은 되지 못하겠지만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밤잠을 설칠 때 조금이라도 그 고통을 덜어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더 이상 타인이 나를 지배하는 것을 방치하지 말고 내가 바꿀 수 없는 것 때문에 좌절하지 않기 바랍니다.
에필로그: 타인, 나 그리고 삶으로서의 일
인간은 사회적 존재입니다. 늘 누군가와 관계 속에서 나를 생각하고 자아를 발견하며 보람과 좌절을 경험합니다. 우리나라는 그 사회성과 관계성을 유독 중요하게 생각해 천국과 지옥도 관계 속에서 경험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리는 타인과 나 그리고 삶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정말 모릅니다. 세탁기를 아무리 오랫동안 사용했어도 고장 나거나 말썽 부리면 고칠 능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저 많이 보고 들었기 때문에 알고 있다고 착각할 뿐입니다. 한 번도 작동원리나 구조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지인 중 TV, 냉장고를 사면 모든 기능을 숙지하고 잘 사용하고 고장도 잘 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장 나면 손수 고칠 것인지 A/S센터에 가야 하는지도 잘 판단합니다. 그렇게 살면 불편함과 짜증을 줄일 수 있습니다.
비결을 물으니 간단합니다. ‘제품을 구입하면 매뉴얼을 읽고 매뉴얼을 언제든 찾을 수 있게 한 곳에 정리해 놔요.’ 비결은 사용설명서에 있습니다. 트러블슈팅(trouble shooting)이란 문제가 생긴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찾는 일을 말합니다. 좋은 매뉴얼일수록 트러블슈팅 사례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주 묻는 질문, 많이 저지르는 실수 등이 빠짐없이 실려 있습니다.
이 책은 이론서도 아니고 에세이집도 아닙니다. 일종의 트러블 슈팅이죠. 쉬운 말로 썼지만 표현 하나하나에 고심했고 이론적 근거를 확인했습니다. 앞으로 독자, 청중들이 질문도 하고 고민에 대한 답을 듣고 싶어 하실 겁니다. 그러면 저는 심리학자로서 답을 찾으려 애쓰고, 비슷한 문제를 겪으며 어떤 경험을 했는지 솔직히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이 책은 그 첫걸음입니다.
PS1 김경일교수 에필로그는 무언가 한 문장이 빠진 느낌이다. 혹시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김홍신 작가의 책에 간결하게 표현된 글이 있어 갖고 왔다.
하물며 가전제품 하나에도 사용설명서가 있는데 우리 삶에는 설명서나 지침서가 왜 없을까? 세상이 참 어렵고 복잡해졌다고 생각하고 있던 어느 날 김홍신 씨에게 깨달음을 주신 스승이 물었습니다. 세상이 복잡한가. 머릿속이 복잡한가?
- 김홍신의 인생사용 설명서(김홍신著, 해냄출판사刊) -
PS2 한국만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삶이 힘들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학교에서 배운 것은 무엇일까요?
저를 삼킬 듯 떠오르는 어두운 감정을 다스릴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정말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이상하지 않아? 16년 동안 온갖 교육을 받았는데, 삶이 힘들 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배운 건 하나도 없다니!’
- I may be wrong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著, 다산초당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