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9. 잘 살고 있는지?(6): 천국과 지옥은 마음속

카페오레 반점,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

by 물가에 앉는 마음

전편의 마지막 문단: 과다분비 되는 것도 문제지만 도파민이 부족하면 우울증이 생기며, 기억력이 저하되고 집중력을 잃게 되어 무기력해질 수 있다. 잠자리날개가 얇아지기 전 도파민을 분비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나서야 할 것 같다.


‘마음’이란 단어는 어렵다. 생물학적으로는 심장을 가리키지만 심리학적으로는 뇌를 지칭한다. 따라서 ‘마음’은 뇌와 심장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소제목에 있는 ‘마음’이란 단어는 ‘뇌’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돌도 지나지 않은 손녀 다리 뒤에 희미한 밀크커피(카페오레) 반점이 있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색이 흐리지만 시간이 흐르며 짙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의료 전문가는 어릴수록 치료효과가 높으나 부위가 넓어 50~100회 정도 레이저 치료를 받아야 한단다. 주 1회 치료를 받아야 하니 1~2년간 병원에 다녀야 하지만 다행인 것은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면 육아 전문가인 엄마들은 성장하면 카페오레 반점이 흐려져 흔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니 치료할 필요가 없단다. 비전문가인 부모는 전문가 의견을 따라야 하나 의견이 상이해 고민이 깊을듯하다.

큰 아이와 통화한 아내가 잠을 설쳤단다. 아내는 신경이 예민해 조그만 일에도 잠을 설친다. 내게 잠을 잘 잤냐고 묻기에 아무 생각 없이 잠을 잘 잤다고 했다. 강철 멘털이 부럽다고 하는 대목까지는 칭찬인데, 공감능력이 떨어져서 잠을 잘 잔 것 같다고 하는 것을 보니 아내의 의도는 뒤쪽에 방점이 찍혔을 것이다.

‘카페오레 반점의 색이 짙어 치료가 불가능하다면 걱정했겠지. 치료 가능하니 얼마나 다행이야.’

‘치료는 가능하지만 레이저 치료가 고통스럽다면 걱정했겠지. 한 살도 안 된 아이가 트라우마도 생길 테니 걱정했겠지만 그리 아프지 않다니 얼마나 다행이야.’

‘주 1회 치료면 1~2년인데 일이 있으면 다음 주로 미루고 기간을 늘리면 되는 것이고, 여유를 갖고 치료하면 되니 걱정할 것 없지. 시간을 다투는 병이 아니니 얼마나 다행이야.’

‘치료가능하고 고통이 적다니 얼마나 다행이야?’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남편의 낙관적이며 희망적인 이야기를 듣고 아내는 마음이 놓인단다.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카페오레 반점과 1~2년간 병원에 다녀야 하는 것도 그대로이나 걱정스러운 마음에서 안도하는 마음으로 변했다.


이미 벌어져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냉정하거나 낙관적으로 접근한다. 아마도 후천적으로 생긴 기질일 수도 있다. 좀처럼 놀라지도 않고 화를 내야 정상인 상황에서도 일이 수습되기 전에는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직장 생활하면서도 그랬기에 같이 일했던 식구들은 화를 내지 않는 것에 대해 더욱 어려워했었다. 물론 일이 수습된 뒤에는 경중에 따라 책임을 물었다.

리더가 냉정함을 잃었을 때 조직이 허둥댈 수도 있으며, 벌어진 일이 수습되기 전 화를 내면 팀워크가 깨져 일을 그르칠 수 있다. 엄밀히 따지면 조직 내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은 결국 리더의 책임인데 책임져야 할 사람이 화를 내는 것도 우습기는 하다. 사안에 따라 지휘 책임과 관리 책임의 범위가 모호한 지점이 있겠지만 결국 책임의 종착지는 조직의 리더이다. 화내면 평정심이 흐트러져 진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 리더는 책임 없는 것처럼 행동하게 되며 징계에 감정이 실릴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낙천적인 사람이 별로 없어요. 뇌에는 아난다마이드(Anandnmide)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있는데 이것이 스트레스받지 않고 쉽게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능력, 즉 낙천성을 결정하는데 극동아시아 국가가 전 세계에서 제일 떨어져요. 그래서 행복을 느끼는데 불리한 뇌를 가지고 있다는 연구도 있어요. 하지만 낙관성에서는 추월할 수 있어요. 낙천적 사람보다 낙관적인 사람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행복감의 총량이 훨씬 큽니다. 김경일의 지혜로운 인간생활 (김경일著, 저녁달刊)


20여 년 전 원자력발전소 팀장시절, 팀원 50명은 형제처럼 우애가 깊었다. 사무실분위기는 웃고 떠들고 자유로우나 사무실에서 큰소리 내는 것은 몇 안 되는 금기사항 중 하나였다. 물론 사무실 밖에서 직원들끼리 다투는 것도 금기사항이었다. 어느 날, 細作(세작)이 팀 식구들이 술 먹다 다퉜다고 정보를 흘리고 갔다. 細作이 가자마자 관련 직원들을 불러 야단치면 細作의 정체가 드러나니 뜸 들이고 앉아있어야 한다. 아무 이야기하지 않고 자수하기를 기다렸더니 두 명이 찾아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어제 술 먹다가 싸웠습니다.’

‘그래, 다친 데 없어 다행이다. 기분 좋으라고 술 먹어놓고 같은 식구끼리 왜 싸워.’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어?’

‘---’

‘자네들이 말해봐.’

‘한 달 동안 금주하겠습니다.’

‘전체 회식자리는 참석하지 못하고, 저녁식사자리에서도 술을 못 먹는다. 마시고 싶으면 집에서 먹어야 한다. 한 달 동안 지킬 수 있겠니?’

‘네’

팀 회식에도 참석 못하고, 시간 외 근무할 때마다 밥과 반주를 사주는 우리 팀에서 금주 한 달이면 重刑(중형)이다.


싸웠다는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당사자들을 불러 야단치고 重刑을 내렸다면 속이 시원해지고 일시적으로 규율이 잡혔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관리범위를 벗어난 시간과 장소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개인적 감정을 실어 私刑(사형)에 처했다면 상황은 순조롭지 않았을지 모른다.

술 먹고 싸운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만 화내며 私刑에 처했다면 금주 한 달이라는 重刑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당사자들은 불만을 품었을 테고 팀 동료들도 거부감을 느꼈을 수 있다. 하지만 동료들에 미안한 마음으로 본인들이 정한 벌칙이니 받아들이기 쉬웠을 것이다. 물론 한 달 지나 수고했다며 당사자들에게 막걸리를 사줬다.


원효대사의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 이야기는 너무 유명한 이야기다. 해골에 고인 물은 변함이 없으나 ‘깨끗하고 시원한 물’과 ‘더럽고 역겨운 물’은 마음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살다 보면 내 마음에 따라 걱정이 되기도 하고 위안이 되기도 한다. 같은 상황을 놓고도 내가 정한 것이냐? 아니면 타의에 의해 정해진 것이냐에 따라서도 피부에 와닿는 감정이 판이하다.

세상사 모든 일이 마음먹기에 달렸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은 모두 마음속에 존재한다고 하나보다. 손녀 다리에 있는 카페오레 반점으로 잠을 설친 아내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으나, 낙관적인 내 말을 듣고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강아지 엄마 모임에서 자녀나 손주의 카페오레 반점을 레이저치료로 제거했다는 이야기보다 자연치료 했다는 여러 이야기에 천국 같은 시간을 맞이했다. 손녀 다리 뒤에 있는 희미한 카페오레 반점은 그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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