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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껍데기만 보고 판단하지 않고 속마음을 읽어준

by 물가에 앉는 마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단지 껍데기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어떤 것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건

오직 마음으로 볼 때이다. - 생 텍쥐페리의《어린 왕자》중에서 -


생 텍쥐베리의 어린 왕자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입니다. 어릴 적 읽었던 이솝우화나 탈무드와 같이 지금 꺼내어 읽어 봐도 깨우침을 받을 수 있으니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이자 인생지침서이기도 합니다.


98년 울진 3,4호기 시운전사업소 전기팀장시절 이야기이니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입니다. 지금은 회사의 주축으로 성장했지만 95~97년 입사해서 코 흘리는 신입직원들과 시운전할 때니 매일매일을 안전사고와 설비사고에 대한 스트레스로 엄청 시달렸습니다. 꿈자리가 뒤숭숭하던 날 대기근무자에게 변고가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새벽 네 시에 발전소 문을 열어달라고 청원경찰을 깨웠던 기억이 납니다.

울진 3,4호기 시운전사업소 현장업무를 이끌었던 사람들은 간부를 포함한 8명의 경력 직원이었으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8명이 모여 현장업무를 처리하는 방안과 한편으로는 신입직원들 교육시키는 문제를 놓고 회의했습니다. 신입직원들은 8명의 회의를 경로당회의라고 불렀고... 그때 제 나이가 만으로 39세였으며... 나이 40도 되지 않은 경력직원들은 신입직원들로부터 노인 취급을 받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니나 시간이 흐르자 경력직원들도 자연스럽게 ‘경로당 모입시다.’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 제가 울진을 떠날 때 경력직원들은 안쪽에 ‘경로당’이라고 음각되어 있는 금반지를 선물로 주었다.


경로당 멤버 중 하나였고 지금은 울진 3 발전소에서 근무하는 김 과장은 참으로 독특한 캐릭터를 갖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찼지만 결혼도 안 하고 스킨스쿠버 다이빙, 윈드서핑을 즐기고 퇴근 후에는 술집에서 그를 찾는 것이 쉬운 주당 중의 주당이었으며 생각이나 행동이 자유분방했습니다. 하루는 자가용을 경차에서 중형차로 바꾸면서 퇴근 후 회사사택 뒤 후정해수욕장에서 ‘차들이’를 하며 주색제공을 하겠다고 公知(공지)했기에 그를 불렀습니다. 술과 음식을 제공하겠다면 酒色提供(주색제공)이 아니라 酒食提供(주식제공)이라 표현해야 맞는다고 했더니 ‘팀장님, 酒食이 아니고 酒色이 맞습니다. 저녁에 와보시면 압니다.’

퇴근 후 팀원들이 해수욕장에 모이자 음식과 막걸리가 차려졌고 조금 후 티켓다방 아가씨들이 술을 따라주는 이벤트가 벌어졌습니다. 보통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할 기발한 측면이 있는 경로당멤버가 김 과장이었습니다.


좋게 봐주면 영혼이 자유로운 보헤미언 같지만 껍데기만으로 평가한다면 우리 회사와 같은 공기업적 업무풍토에는 어울리지 않는 규칙위반자였습니다. 출근 시간은 지켰으나 전날 마신 술의 酒毒(주독)으로 현장사무실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사무실소파에 누워 자기도 하니 처음 보는 사람 눈에는 불량직원 중 한 명으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전기회로 해석분야에 남다른 재능을 보유하고 있으나 규칙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고, 총각이라 퇴근시간 부담이 없는 그에게 행동반경 울타리를 크게 쳐주었습니다.

‘김대리는 업무를 늦게 시작해도 된다. 술 먹고 피곤하면 업무시간에 쉬어도 좋다. 소파에 기대어 잘 수도 있다. 하지만 주어진 기간 내에 업무를 끝내야 한다.’

김대리에게 단시간 내에 결론을 내는 업무대신 해결하는데 1~2달이 소요되는 업무를 담당케 했습니다. 도면을 수십~수백 장 해독해야 전기적 trouble 원인을 찾아낼 수 있어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장기적인 일이라 모두가 기피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했습니다.

김대리 능력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주어진 기한을 지킨 것은 물론 酒毒이 풀린 후에는 놀랄만한 집중력을 보이며 예상보다 빠르게 일을 처리했습니다. 껍데기만 보고 ‘라면 먹지 마라, 근무시간에 소파에 눕지 마라...’ 잔소리 해댔으면 사람도 잃고 업무도 지연되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가 얼마 전 본사로 ERP교육을 왔기에 퇴근 후 막걸리 집에 갔습니다.

‘실장님 댁 집들이할 때 제가 안아주었던 작은 애가 몇 살이 되었습니까?’”

‘벌써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지요. 시간이 참으로 빨리 가지요?’

‘김 과장님은 어떻게 사십니까?’

‘사택에 살지 않고 죽변에 자그마한 집을 마련했습니다. 나이 드니까 걱정되는 것도 있고요.’

‘잘 생각했습니다. 이제 우리들도 노후를 준비해야 할 나이지요.’


껍데기만 보고 판단하지 않고 속마음을 읽어준 옛날 팀장과

속마음을 읽어준 팀장의 마음을 알고 있는 옛날 김대리 등 경로당 두 멤버는 그날 모두 술에 취했습니다. 마음이 통했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나누는 막걸리 맛이 너무나 달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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