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연은 칠천 겁, 부모와 자식은 팔천 겁
佛家(불가)에서 부부간 인연은 칠천 겁, 부모와 자식 간에는 팔천 겁 인연이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소중한 인연이니 서로 아끼고 보살펴 나가야 할 사이라는 말씀이겠지요.
옷깃만 스쳐도 五百劫(오백겁)의 인연이라는데 劫(겁)이란 셀 수 없는 무한한 시간을 佛家(불가)에서 표현한 것입니다. 수치적으로는 사방 40리의 성에 겨자씨를 가득 넣고 백 년에 한 알씩 꺼내어 겨자씨가 없어지는 시간, 백 년에 한 번씩 내려오는 선녀의 옷자락이 사방 40리의 바위를 닳아 없어지게 하는 시간, 천년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숫물이 집체만 한 바위를 없애는데 필요한 시간을 겁이라고 표현 겁이라 하고 속세의 시간으로는 4억 3200만 년이 된다고 합니다.
o 같은 나라에 태어나는 인연은 천 겁
o 하루길을 동행하는 인연은 이천 겁
o 하룻밤을 한집에서 자는 것은 삼천 겁
o 같은 민족으로 태어나는 것은 사천 겁
o 한 마을에 사는 것은 오천 겁
o 하룻밤의 동침은 육천 겁
o 부부의 연은 칠천 겁
o 부모와 자식은 팔천 겁
o 형제의 연은 구천 겁
o 스승과 제자 사이는 만 겁
같은 불가의 이야기이지만 諷刺的(풍자적)이랄까, 諧謔的(해학적)이랄까 쉬운 해석도 있습니다. 부부는 전생에서 원수지간이었던 사람들이 만난다고 합니다. 부부는 전생에서 제일 크게 원수진 사람과 맺어지게 인연이 정해져 있고 業(업)의 굴레, 輪廻(윤회)의 굴레에서 필연적으로 만나게 해서 전생의 업을 풀고 살을 섞으며 화해시키기 위해서랍니다.
필연적으로 만난 인연끼리 서로 화해하며 한 생을 살지 못하고 헤어져 업을 풀지 못한다면 다음 생에서 또다시 만나 부부의 연을 맺는다고 합니다. (부인과 다시 결혼하게 된다니 벌써부터 驚氣(경기) 일으키는 남자들이 있을듯 합니다. 부인에게 잘하셔서 다음 생에 만나지 않으면 됩니다.) 남편이건 아내건 미울수록 상대방을 부처님이나 하나님 모시듯 귀히 해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불교도는 아니지만 ‘부부는 전생의 원수지간’ 이란 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재미있는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결혼하는 부부에게 百年偕老(백년해로: 부부가 한평생 서로 사이좋고 화목하게 같이 늙으라는...) 하라고 하는데 백 년을 사는 동안 싸움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삽니까? 하지만 알콩달콩한 사랑싸움이나 철천지원수가 된 것처럼 동네를 시끄럽게 하면서 싸워도 헤어지지는 말라는 이야기 같습니다. 백 년을 같이 살았는데도 다시 태어나서 같은 사람과 결혼해 백 년을 또다시 살라고 하면 얼마나 재미없는 일입니까?
같이 사는 부인과 혹은 남편과 매일 싸우더라도 한 이불을 덮고 살라는 말씀이겠지요. 현재 이불을 같이 쓰는 부부가 다시 살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남편이 술 먹고 들어와도, 부인이 명품가방을 사도 시비 걸지 말고 '여보 잘했어!'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가끔씩 잉꼬부부로 소개되는 커플들이 다시 결혼한다면 누구와 결혼하겠느냐는 질문에 지금의 남편/아내라고 대답할 때 입에 침을 바르지 않았다면 그들은 아직까지 전생에 원수진 업을 풀지 못해서 인지 모릅니다.
배우자와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면 현 배우자에게 지극정성을 쏟아 전생의 업을 없애야 합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집사람이 ‘나하고 다시 살지 않으려고 잘하는 거지’하면서 모질게 패도 ‘여보 잘했어!’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불가에는 ‘부모에게 자식은 전생의 빚쟁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평생 빚진 사람처럼 자식 일이라면 눈먼 사람같이 물, 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게 부모님 삶이라고 하며 자식들은 받지 못한 빚을 받기 위해 부모님에게 끊임없이 바란다고 합니다.
빚진 부모님들은 소 팔아 학비를 댔기에 대학은 象牙塔(상아탑)이 아니라 牛骨塔(우골탑)이라는 눈물 나는 신조어가 1970년대에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부모님 전 재산이었던 논을 팔아 장가를 보내줘도 당연하게 더 달라고 하는 게 자식이고 보면 전생에서 억대이상 빚을 주었던 사람들이 자식이 되는 듯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 인연은 팔천겁으로 부부간 인연인 칠천 겁보다 깊어 ‘부모 자식 사이는 천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부의 연은 끊어도 부자간의 연을 끊지 못하는 것도 天倫(천륜) 때문입니다. 요즈음 길 가다 보면 이런 현수막 있지 않습니까? ‘떼인 돈 받아줍니다.’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받아옵니다.’ 원수지간의 연인 칠천 겁보다 끊기 힘든 것이 채권 채무자인 팔천 겁의 부자관계라는 것을 수천 년 전 부처님께서 어떻게 아셨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휴일에 홀로 계신 어머님을 뵈러 가면 연로하신 어머님은 아직 빚을 갚지 못한 것이 많이 남으셨는지 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시고 배불리 먹인 다음 집에 가서 먹으라고 싸주시기도 합니다. 키우고, 가르치고, 장가까지 보내주신 어머님 밥상을 아직도 받아먹고 있으니 저도 전생에 커다란 빚을 준 고리대금업자였는지 모릅니다. 말로는 효도해야지 하면서 구부정하신 어머님 신세를 아직도 지고 있으니... 이제는 전생에서 어머님께 받아 놓은 차용증을 불살라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