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명절음식은 단연 빈대떡으로 선친 고향이 북한 진남포이니 평양식 일게다. 지짐이로 불렸던 녹두빈대떡은 어렸을 때부터 먹던 음식으로 광장시장 빈대떡이나 南道(남도)의 肉煎(육전) 등 어느 煎보다 익숙하고 맛있다. 게다가 어머니 손맛이 들어갔으니 명절 때마다 생각나는 그리운 맛이기도 하다.
어머님은 손이 크셔서 명절이면 산더미처럼 전을 만드셨다. 늙은 아들들 무릎이 성치 않다면 수십 년간 빈대떡 부쳐내느라 무릎이 썩은 것이리라.. 빈대떡, 동태전, 고추전, 산적 등은 아파트 경비아저씨부터 교회 신도들과 멀리 살고 계신 원로목사님에게까지 배달된다. 이제는 조금만 하자고, 가짓수도 줄이자 해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어머니 고집을 꺾지 못했다.
시장 보고 다듬고 절이고 불리고 반죽해서 부쳐내는 빈대떡은 준비과정부터 손이 많이 간다. 어머님께서 연로해 지신 다음부터 아내가 준비과정을 맡았으며, 낙상으로 병원에 입원하신 후에야 빈대떡 부치는 노동에서 해방되었다. 돌아가신 지 2년 되는 2023년 추석, 아내가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빈대떡 조금만 할까요?’
아내 역시 빈대떡 재료를 준비하고 부치는 노동에 시달렸던 장본인이라 의외였다. 작은아이가 재택근무를 하고 있으며 사위도 와서 밥을 먹어야 하니 빈대떡, 잡채, 아롱사태수육, 전복과 왕새우 편백찜 등으로 명절음식메뉴를 정했다. 가지 수가 여러 개 같아도 사실 빈대떡을 제외하면 나머지 음식들은 일도 아니다.
빈대떡은 어머님께서 하시던 분량의 1/5 수준으로 준비했다. 녹두 500g, 쌀 100g, 돼지고기 앞다리 살 간 것 600g, 숙주나물 300g, 고사리 말린 것 불려서 500g, 파 반단, 배추 큰 것 1/4통, 계란 3개가 필요하다.
녹두를 물에 불리고 껍질을 제거하고 쌀도 불린다.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씻으면 맛이 떨어지니 껍질과 이물질을 걸러내는 수준으로 씻는다. 녹두와 쌀 불린 것을 믹서로 간다. 되직할 정도로 물을 조금 넣고 갈되 맷돌로 간 것처럼 거칠게 갈아야 식감이 좋다. 미리 갈아놓으면 물이 생기니 조금씩 소분해 가는 것이 좋으며 이번에는 세 번에 나눠 갈았다.
파는 사방 1센티 정도로 작게 썬다. 숙주나물은 삶은 후 손으로 물을 짠다. 먹기 좋은 크기인 2센티 정도로 자른다. 고사리도 충분히 물에 불리고 물을 짠 후 2센티 크기로 자른다. 배추는 깨끗하게 세척 후 가로세로 1센티 정도로 잘라 절인다. 김치 담글 정도로 절여지면 세척하고 물을 짜낸다. 돼지고기 간 것에는 다진 마늘, 간 생강 조금 넣고 버무린다. 아마도 아내는 돼지고기 누린내 제거용 맛술을 세 스푼 정도 넣었을 것이다.
녹두 간 것에 준비된 재료와 계란, 맛소금, 혼다시(가다랑어 가루, 혼다시가 출시되기 이전에는 무엇을 넣으셨을까?) 혼합한다. 양념장 찍어 먹어야 하니 싱겁게 간을 한다. 여기까지가 아내의 노하우이자 숨겨둔 비법이다.
이제부터는 50년 이상 빈대떡을 부쳤기에 암묵지 같은 내 기술이 들어가야 한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고 빈대떡을 부친다. 빈대떡 한 개에 한 국자 분량으로 두툼하게 부쳐야 식감이 좋다. 28Cm 프라이팬 한판에 4개 정도 부치는 것이 뒤집기도 수월하고 바삭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다.
다른 煎도 마찬가지겠지만 빈대떡은 불 조절이 관건이다. 빈대떡 껍데기가 타지 않게 바삭하게 부쳐내는 것이 불 조절 기술이다. 인덕션레인지를 기준으로 하면 최고 10일 때 6.5 정도 세기이나 프라이팬에 녹두전이 많이 올라갈 때는 7 정도, 적게 올라갈 때는 6 정도로 해야 한다. 남은 빈대떡은 냉동하고 추후 다시 프라이팬에 부쳐야 하니 옅은 갈색빛으로 노릇할 정도로만 구워내는 것이 좋다.
빈대떡은 기름에 부쳐내는 음식이므로 양념장으로 느끼함을 이겨야 한다. 장아찌 간장과 청양고추와 양파 장아찌로 양념장을 만든다. 간장이 짜다면 물을 타서 짜지 않게 하는 것이 煎의 풍미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기호에 따라 식초와 와사비를 곁들여도 된다.
청양고추를 얇게 슬라이스 치고 양파장아찌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청양고추와 양파 장아찌를 녹두전위에 올려놓고 먹으면 된다.
돌을 갓 넘긴 손녀가 오물거리면서 빈대떡을 꽤 잘 먹는다. 반찬가게에서 사 먹으면 될 것을 엄마는 사서 고생한다며 불평하던 작은 아이도 아무 말 없이 잘만 먹는다. 어려서부터 먹던 익숙한 맛이니 작은 아이에게도 그리웠던 맛이었을 터이다.
만들기 번거롭다 해도 손녀가 잘 먹으니 앞으로 아내의 명절음식 목록에 빈대떡이 등장할 듯하다. 돌아가신 어머님도 손주들 잘 먹는다고 계속 만드셨던 것일까?
어른 손바닥 반절 크기의 빈대떡 50장을 만들었다. 큰 아이와 동네 지인에게 10장씩 주고, 연휴기간 먹다 보니 조금 부족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