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830. 겪으면서 배우고

PS 벌써 2년이 되었다. 잘 계시겠지.

by 물가에 앉는 마음

평소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래서인지 냉정하다고 평가받는 성격이지만 소천을 앞둔 어머님 앞에서는 평정심을 지키기 어려웠다. 또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막막하다. 분명 학교와 책에서 배우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럴 때 먼저 경험했던 선배님들 조언은 매우 유효하다.

선배님들 조언에 따라 장례에 필요한 내용들을 노트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장례식장, 승화원, 납골묘, 상조, 은행거래, 유산, 연명치료여부..., 정리하는 마음이 무겁고 혼란스럽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해야 하고 이성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어머님은 지병이 많으셨다. 旣往症(기왕증)은 당뇨, 갑상선항진, 고혈압, 뇌출혈에 의한 우측 반신의 경미한 마비가 있다. 척추 압박골절, 고관절골절, 외상성 뇌출혈, 폐렴은 낙상으로 이번에 새로 생긴 병이다.

종합병동인 어머니 병환이 위중해 형제들과도 의논할 사항이 많아지고 준비할 사항도 많았다. 묫자리부터 병세가 악화될 경우 연명치료를 할 것인가 여부도 미리 준비, 협의해 놓아야 하나 형제 중 누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도 어렵고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이기에 경황 있을 때 미리 협의해 두는 것이 좋을 듯했다. 형제들과 의논 덕에 어머니 가묘를 납골묘로 만들었으니 훗날 내가 들어갈 묫자리도 준비했고 코로나 상황이 풀리면 연명치료거부 신청서도 작성해 놓으려 한다. 옆에서 조언해 주시는 분들 덕분이다.


상황을 알고 있는 선후배님을 만나면 첫 번째 화두는 어머님 병세다. 평소 소소한 일상에 대해서도 알고 계신 분들이니 솔직한 조언을 해주시고 그런 분들이 옆에 계신 것을 복이라 생각한다. 책에서 읽고 인터넷을 뒤져 알게 된 지식보다 먼저 상을 치렀던 선후배님들의 여러 가지 조언은 현실적이며 느낌이 다르다. 내 상황을 감안해 들려주는 실전적 경험들은 책에서 보기 어려운 산지식이며 직계가족들이 결론 내리기 어려운 주제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선후배님들 조언은 하나같이 ‘쉽지 않겠지만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시다. 솔직히 쉽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어렵다. 겪어보지 않은 일을 그것도 부모남 생사에 관련된 결정을 이성적으로 판단하라는 조언은 조언이 아닐 수도 있다. 제3자에 대한 생사에 대한 결정도 쉬운 일이 아니거늘 어떻게 부모님 생사에 대한 결정을 함부로 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이성적으로 판단한다 해도 보호자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인 의사 판단이 우선이며 종속적인 것이 보호자 판단이지만 마음의 준비차원에서는 훌륭한 조언이라 생각한다.


물론 반대되는 조언도 있다. 오랜만에 찾아오신 산전수전까지 겪으신 백전노장, 거의 띠 동갑에 해당하는 선배님들이 점심식사 하고 가시며 그러셨다. ‘작년에 어머님이 가셨는데 묘지문제도 그렇고 자네가 겪는 그 과정과 다를 바 없는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어. 요양보호사가 있지만 형제들이 3년 동안 누워계신 부모님을 봉양했고 임종을 지켰는데 어려워도 결정해야 하지. 하지만 모든 것을 형제들끼리 미리 이야기하는 것도 쉽지는 않아. 그리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려 해도 어머님이 생전 동의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는 이성적 판단보다는 어머님의 생전 생각이 우선일 수밖에 없지. 그러니 이성적 판단을 해야겠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어. 닥치면 합리적이고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가면 되지.’ 세대를 넘나드는 조언에 도움도 되고 많은 위안이 된다.


중환자실에 들어가신 지 한 달이 넘었기에 어머님이 두 발로 걸어 나오실 수 있다는 희망적 기대는 접었다. 고관절과 척추수술이 잘되었다고 하지만 재활훈련이 늦으니 수술효과는 거의 없을듯하다. 첫 번째 뇌출혈로 약간의 장애가 있는 상태에서 두 번째 뇌출혈이 생겼으므로 더욱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뇌수술 후 걱정이 수술이 잘되어 깨어나실 수 있을까 하는 것도 있지만 신체적 장애보다는 정신적 장애로 혹시 인간 존엄을 잃을 수 있는 것이 더 걱정되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돌아가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불경스러운 생각도 했었다. 솔직한 마음이다.

노인 환자 병세는 매일 기복이 있으니 좋아졌다고 안심할 수도 없고 악화되었다고 비관할 일은 아니다. 뇌수술 후 거의 코마상태까지 가셨다가도 며칠 지나면 의식이 좋아져 노래도 부르신다고 하는데 면회가 안 되는 상황이다 보니 정확한 상황을 가늠하는 것은 쉽지 않고 2~3달 후를 걱정하는 것은 어리석을 수 있다.


씩씩하신 어머님은 중환자실에서 40일 넘게 버텨내셨다. 카스텔라가 드시고 싶다고 하실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어 재활치료가 가능한 요양병원으로 전원 했다. 고관절수술을 하면 2주 내에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는데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 씩씩하신 어머님이 이겨내리라 생각된다. 이것은 약간 근거 있는 희망사항이다.

요양병원에서 조금 안정을 찾으셨던 어머님이 거울을 처음 보시고는 충격을 받으셨나 보다. 전화기 넘어 들리는 목소리에 당황과 충격이 담겨있었다.

‘애 둘째야. 머리가 전부 빠졌어. 형편없게 됐어.’

‘빠진 게 아니고 뇌수술 하느라 깎은 거예요.’

‘그러니? 하여간 형편없게 됐어. 그런데 이 병원에는 언제까지 있어야 되는 거야?’

‘혼자 걸으실 수 있을 때까지 계셔야 하니 식사도 잘하셔야 하고 걷는 훈련도 하셔야 돼요.’

뇌수술 전 기억이 흐려 왜 사고가 났는지도 정확히 모르시고 가끔 기억이 뒤엉킨 듯 이상한 말씀도 하시나 그나마 희망적이고 다행인 것은 큰 아이 전화를 받으시고는 농담도 하시는 거다.

‘할머니, 식사 잘하고 계세요?’

‘입은 살아서 잘 먹는다 얘’

‘머리도 짧으시다면서요?’

‘퇴원하려면 오래 걸린다더라. 너희 아빠가 나를 병원에 오래 두려고 머리도 깎아 놓고 그랬나 보다. 뭐 다 나으라고 하는 거겠지만’


요양병원 입원 후 면회도 못했다. 코로나 여파다. 3개월 정도 지나고 추석특별면회가 이루어졌으나 말도 못 하시고 알아보시는 듯 하지만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신다. 기력이 떨어지셔서 매일매일 컨디션이 다르시단다. 어떤 날은 사람도 알아보고 말도 하시는데 어떤 날은 코마상태와 같단다. 알부민 등 영양제로 겨우 지탱하고 계신 것이나 마찬가지다.

4개월 차 되니 혈액도 노화되어 산소를 나르지 못한다고 한다. 수혈로 상태를 좋게 할 수는 있어도 효과는 지속되지 않았다. 주치의 의사는 이제 중대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어머니의 평소소신을 감안해 가족들이 신중한 협의 하세요.‘

연명치료는 받지 않기로 했다. 이미 수차례 사선을 넘나드는 수술을 하셨고 연명치료 의미를 찾을만한 체력도 되지 않으셨다. 다행스러운 것은 극심한 고통 없이 코마상태에 접어들어 생을 다하셨다는 것이다.


PS 벌써 2년이 되었다. 잘 계시겠지.

2021년 6월 9일 쓰러지셔서 날 좋고 단풍 예쁜 11월 16일 召天(소천) 하셔서 원하셨던 하나님 곁으로 가셨다.

‘오늘따라 유달리 편해 보이신다.’는 간호사와 통화 후 2시간 만에 간호사가 전화했다.

‘병원 오시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세요?’

‘혈압과 맥박이 갑자기 좋지 않으세요.’

‘심장 마사지 할까요?’

의료진 간식을 보내줘서 고맙다는 말이겠지 생각하며 간호사 전화를 받았기에 당황했다. 간호사도 당황했는지 3 질문을 연달아 던졌다.

‘회사에 있습니다. 한 시간은 걸립니다.’

‘아..... 그래요?’

‘심장 마사지 하지 마세요. 편하게 가셔야지요.’

간호사 목소리는 떨렸고 내 목소리는 허공을 딛는 것처럼 허둥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