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치열한 전쟁터, 기술개발 심의위원회

조금 더 사납게 으르렁 거리면서 싸워야 합니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올해는 유난히 기술개발 심의위원회가 많이 개최되었습니다. 2011년도 연구과제를 봄철에 심의했고, 내년도 연구예산 확정을 위해 2012년도 연구과제를 가을철부터 심의를 했으니 2년 치 연구과제를 올 한 해에 심의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제가 기술개발실에 부임한 이후 일이 부쩍 늘었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립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심의위원회 횟수가 반으로 줄어들 테니 저도 마음의 부담이 적어집니다. 그간 바쁜 시간을 쪼개어 심의에 참여해 주신 심의위원님들과 이를 허락해 주신 처, 실장님께도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인사위원회, 자산처리위원회... 회사 내에는 여러 가지 위원회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또는 치열하게 의견이 교환되는 것 중 하나는 기술개발 심의위원회가 아닐까 합니다. 얼마 전 위원장님을 맡으신 정비사업본부장님께서 오늘은 왜 이리 치열하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심의위원회는 오늘뿐 아니라 매번 치열합니다. 그래도 전무님께서 주관하시는 본위원회는 점잖은 편이고 기술개발실에서 주관하는 실무위원회는 욕만 하지 않을 뿐 전쟁터나 마찬가지입니다.’

과제를 기획한 제안자는 과제를 통과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심의위원들은 제안된 내용의 허점을 찾기 위해서 눈에 불을 켭니다. 어찌 보면 심의위원 6명과 제안자 1명의 싸움이니 일방적인 게임인 것 같으나 제안자는 오랜 기간 집중적인 연구를 해왔기에 자칫 잘못하면 제안자의 술수(?)에 휘말릴 수가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심의위원들도 일반적으로 20년~30년 정도 정비 업무에 종사한 전문가들이니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제안자는 심의위원들이 쳐놓은 덫(?)에 걸리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특히 제안내용이 참신하다는 발언에 주의해야 합니다. 복선을 깔고 있거나 아니면 행간에 숨은 뜻이 있기에 우호적인 심의위원이라고 섣불리 판단한다면 큰코다칩니다. 이렇듯 심의위원회는 총성 없는 전쟁터이자 집요한 청문회장입니다.


하지만 심의위원 6명을 기본계획서의 논리성을 보강하는 조언자로 생각하면 심의가 순조롭지만 흠결을 내기 위한 심의로 생각하면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 됩니다.

제안자가 연구과제에 대한 기본계획을 제출하려면

국내, 외 기술현황이 어떤지

내가 개발하고자 하는 기술이 무엇이며

어떠한 방법으로 연구목적을 달성할 것인지

개발된 기술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지

개발 후 어떻게 판매해야 하며

개발 후 매출과 수익구조를 분석해야 하므로

이미 연구의 50%를 수행했다고 보면 됩니다.


심의위원들도 이러한 점을 알고 있기에 많이 공부하고 심의에 임하게 됩니다. 때로는 심의위원이 연구과제 제안자가 될 수도 있으니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그간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연구방향과 접근방법에 대한 논리를 제공하여 기본계획을 가다듬어 갑니다. 요즈음은 연구과제 규모가 커서 정부로부터 연구의뢰를 받는 수탁과제의 경우에는 100억 원이 초과하는 과제도 있는 만큼 심의위원회는 매우 중요한 자리입니다.


만약 심의위원들이 공부하지 않고 위원회에 대충 참석한다면

- 심봉사 코끼리 만지듯 대충 심의하고

- 돼지불알 옭아매듯 대충 만든 장비와 기술을

- 연구원과 막걸리 친구라는 이유로 대충 ‘성공’으로 평가할 것이고

- 평가결과 ‘성공’이라고 했으니 사용하지도 못할 기술을 활용부서에 대충 떠다밀고

- 활용부서에서는 대충 창고에 처박아 놓아두었다가

-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 자산 처리위원회를 대충 열어

- 처삼촌 묘 벌초하듯 대충 심의하고

- 쓰지도 않는 장비이니 고철로 대충 처분해서

- 100억 원이 투자된 과제를 엿 몇 가락과 대충 바꾸고

- 이렇게 된다면 회사는 대충 망하는 길로 가게 되지 않을까?


현재도 불꽃 튀기는 舌戰(설전)을 하고 있지만 상기와 같이 되지 않으려면 제안자나 심의위원 모두 이빨을 드러내어 조금 더 사납게 으르렁 거리면서 싸워야 합니다.

- 치열하게 물어뜯고 논리싸움을 하여 될성부른 과제를 선정하고

- 연구부서에서는 쓸 만하다고 인정될 때까지 연구를 하고

- 활용부서는 고객에게 질 좋은 정비 서비스를 제공하고

- 고생하여 개발한 기술에 상당하는 정당한 가격을 받고

- 연구원들과 심의위원 모두 보람과 만족을 느껴야 합니다.


심의위원들에게 10만 원 정도 심사료를 지불하고 있습니다. 회사 근무시간 중 이루어지는 일이니 가욋돈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위원회를 주관하는 입장에서 보면 면목 없는 금액입니다. 또한, 밤늦도록 심의자료를 검토하고 파김치가 되도록 치열한 심의를 하는데도 따뜻한 저녁을 모신 적이 없습니다. 하루 종일 입씨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소홀했었던 것 같습니다.

심의위원들께서 치열하게 심의해 주신 과제들은 회사 경쟁력을 높이고 후배님들 먹거리가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으로 보답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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