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라는 단어와 이별하고 힘 빼서 흔들흔들거리며 세상을 살기로 했다.
前篇(전편) 마지막 문단: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과 비슷한 이야기가 이솝우화에 있기에 가져왔다.
손과 발과 胃(위)
손과 발이 胃에게 질투를 느꼈다. ‘우리가 고생해서 구해온 것들을 너 혼자서 다 차지하면 어떡하니? 우리는 고생만 하고 너는 가만히 놀기만 하지. 우리가 힘들게 구해오면 너는 받아먹기만 해. 그러니까 이제 둘 중 하나를 골라. 너도 일을 해서 네가 먹을 걸 해결하든지, 아니면 굶어 죽든지.’
그다음부터 손과 발은 胃를 모른 척했다. 胃는 먹을 것을 구할 줄 몰라 매우 겸손하게 손과 발에게 몇 번이고 도와달라고 사정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몇 날 며칠 아무것도 먹지 못하자 胃의 열기가 사그라지면서 목이 바짝 타들어가고 정신이 몽롱해졌다. 손과 발은 그제야 몸 전체와 함께 자기도 죽어간다는 것을 깨닫고 많은 음식을 구해왔지만, 이미 胃는 아무것도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었다. 이렇게 손과 발은 胃와 함께 죽어갔다. - 정본 이솝우화 (권미선譯, 창비刊) -
혈기 왕성했던 젊은 시절, 더불어 살아가질 못했다. 가치관에 맞지 않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벽창호에 고집불통 같았다.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평가받곤 했지만 ‘아니’라고 판단한 사안에 대해서는 얼굴표정과 태도, 말투까지 경직되어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포커페이스가 아니어서 표출된 경직된 표정은 겉모습이 아닌 속마음이었는지 모른다. 또한 강인하고 태연하고 대범한 척했지만 내면은 복잡했다. 상대방에게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하는 수컷 본능도 있었지만 마음이 약해져 흔들릴까 봐 조바심 내며 힘들게 버둥거렸었다. ‘가치관’이 흔들리는 나를 굳건하게 지탱해 줄 것이란 믿음이 있었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더욱 가혹했다.
입사 3년밖에 되지 않았으나 직책이 주임이라 오지랖 넓게도 직원들 고충사항에 대해 총대를 멨다.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부장님 지시사항은 업무와 크게 관련 없다고 생각했다. 시급성과 중요도를 따져 봐도 아무것도 아닌 일에 대해 부장님 잔소리는 끝이 없었다. 부서 화단 꽃씨 뿌리기, 업무용 자전거 페달 고치기... 그리고 사보타주와 부장님만 모르게 추진된 은밀한 본사 전출공작.
물론 부서 업무이기는 하지만 우선순위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본사 전근 인사발령지가 송부되고 부장님 눈이 동그래졌다. 시간이 없어 그날 저녁 송별식을 하는 날임에도 2차 노래방에서 부장님과 세게 붙었다. 시간 지나고 철들어서야 ‘부서 화단 꽃씨 뿌리기, 업무용 자전거 페달 고치기’가 당연히 처리해야 할 부서업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세게 붙었던 부장님과는 본사에서 다시 만나 어깨동무하고 술집을 누볐었다. 술 한 잔에 흔들리는 어깨와 흔들리는 부장님에 대한 생각. ‘내가 어렸고 식견이 짧았다.’
IMF사태로 인한 구조조정 광풍은 공기업에도 불어 닥쳤다. 신입직원 5명의 구조조정 명단을 받아 쥔 젊은 팀장 마음은 흔들림을 넘어 무너져 내렸다. 출근해서 젊은 그들 얼굴 보는 것이 죄스러웠다. 차라리 내가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으면 흔들림이 없을 듯했다. 퇴근 후 막걸리 한잔 나누면서도 차마 그들 이름을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한 명도 희생되지 않고 구조조정은 마무리되었지만 무엇이든 자신만만했던 젊은 팀장은 구조조정대상 직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당혹했었다.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자괴감과 무력감에 시달렸었다. 휘하 직원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팀장이 과연 리더일까?
승진하자 모회사이자 고객인 한전식구들이 같이 근무하자며 전화했고 흔쾌히 OK 했다. 울진시운전에서 같이 근무했던 고객들을 영광시운전에서 반갑게 만났으며 부서 식구들 모두 초청한 과한 환영식을 받았다. 소장이 껄끄럽게 생각하는 한전 간부와도 구면이라 소장 애로사항도 해결했건만 소장은 본인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내가 예뻐 보이지 않았는가 보다. 고객에게 대접받은 술자리가 과하다는 등 잔소리가 많았다. 김영란 법이 없는 시기였지만 환영식 받는 입장에서 1인당 3만 원 이하로 대접해 달라고 하지 못했으니 내게도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부정이 일정 부분 통용되었던 시기였지만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부정은 눈감아주기 어렵다. 청렴을 강조하던 소장이 회사 돈을 부정하게 착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나에게 살갑게 대해줬으면 소장 비리에 대해 주저하고 고민도 했을 텐데 고민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아마도 보복하는 마음도 포함되었을 터이다.
소장과의 一戰(일전)을 위해 요점을 정리하고 각본을 만든 후 면담하자고 했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라 했더니 오전 2시간 정도 불만을 이야기하기에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주로 소장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불만이었다. 물론 내 태도가 좋은 것은 아니라고 자인하고 있으며 고쳐야 한다. 하지만 권위는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란 내 생각과 배치되는 부분이 많다.
점심 식사 후 벼르던 반격 시간이다. ‘직급으로 따지면 소장님이 사업소 No1이며, 제가 사업소 No2죠. 사업소 운영에 대해 저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소장님이 착복하고 있는 사안의 관리권한이 내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바이패스했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소장은 당황했으며 각본에 따라 말이 조금 거칠어졌다. ‘나는 당신과 같이 일 못한다. 매번 청렴을 강조했으나 부패한 사람과 어떻게 같은 길을 가겠나? 나를 다른 곳으로 발령 내라. 고리나 울진 등 어느 곳이나 상관없다. 당장 본사 연락해라. 근무태도가 불량해 날리겠다고.’
다른 사업장 발령은 본사권한이라 소장이 조치할 수 없으며, 본인비리가 드러날 사안이니 꼼짝 못 할 카드였다. 낯빛이 변한 소장에게 조속히 조치하라고 큰소리치며 소장실을 박차고 나왔다. 소장은 다음날 나를 조용히 부르더니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팀장님도 아시다시피 다른 곳으로의 전근은 불가하고 원하는 사항을 말해봐요.’
소장의 비굴한 표정과 목소리가 더욱 싫었다.
‘정 그렇다면 당신하고 부딪칠 일이 없는 현장부서를 맡겠다.’
오래전 일이지만 내 잣대가 맞았는지 미심쩍다. 고객 돈이지만 환영식에 소요된 비용은 ‘청렴’했고 소장 주머니로 들어간 공금은 ‘비리’였는가?
직급이 올라가며 싸우는 상대 직급도 인플레 되었다. 지난 시간을 되짚어보니 벽창호에 고집불통’뿐 아니라 ‘호전적인 성격’도 갖고 있는지 모른다. 공기업 임원 임기는 3년이니 임원과 등을 질 경우, 3년만 피해 보면 된다. 승진누락과 평가불량에 의한 약간의 금전적 손실뿐이다. 근무지를 옮겨 다니는 것은 불이익도 아니다. 원래 간부직원들 전근이 잦은 회사이니 울진 가서 대게, 영광 가면 홍어 먹으며 지역문화 탐방차 잠시 놀러 왔다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또한 그렇게 살아왔다. 그리고 필요한 한 가지, ‘나는 좌천이 아니라는 영전이라는 정신 승리’
무용담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느 누가 강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돌이켜보면 피곤한 삶이었다. 어설픈 가치관과 견고하지 못한 삶의 기준으로 인해 좌충우돌하며 지내온 세월 속에 가장 부족했던 것은 세상 공부였을 것이다.
이제는 ‘절대 흔들리지 않을 거야!’, ‘절대 청렴’, ‘절대적인 삶의 기준’에서 ‘절대’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있는 중이다. 시대도, 환경도 바뀌고 있으며 내 주관이 절대 옳은 것은 아닌데도 이상한 논리에 사로잡혀 자신을 괴롭혔던 것은 아닌지?
이제는 ‘절대’라는 단어와 이별하고 힘 빼서 흔들흔들거리며 세상을 살기로 했다. ‘너도 맞아, 나도 맞고’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By 고미숙(고전평론가)
동양적 관점에서 보면 공부한다는 것은 몸에 힘을 빼는 것입니다. 긴장해서는 절대로 고수가 될 수 없어요. 몸의 경직성이 커지면 세상과 소통할 수 없기 때문에 배운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천지와 소통한다는 의미이고 여러분이 릴랙스 된다는 뜻입니다. 깨달음은 유동하는 마음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 생각 수업 (박웅현 등 9명著, 알키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