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가 좋아하는 것이 옳은 것 또는 진리가 되는 사회’
얼마 전 ‘특정인의 주관이 앞서는 사회’와 ‘객관이 주관을 앞서는 사회’에 대해 짧게 이야기 했다.
특정인의 주관이 앞서는 사회, 소위 팬덤정치의 문제점과 위험성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특정인의 주관에 팬덤이 맹목적으로 따르고, 목소리 큰 팬덤이 반대하면 침묵하는 다수를 보려하지 않는 기이한 사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주관이 뚜렷한 개인들이 논쟁을 거쳐 다수가 인정하는 객관을 만들어 내는 사회를 의회민주주의가 만들어가야 하나 21대 국회는 시작부터 폭망해 주관이 객관을 앞서는 비상식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객관이 주관을 앞서는 사회’는 개인주의를 배격하고 집단주의적인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No'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다수가 모여 치열한 논쟁을 거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Yes'를 만들어가는 사회와 조직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평소 생각이다. 퇴직하며 후배들에게 남긴 잔소리 중 일부 내용도 그런 뜻이었다.
세상은 지극히 객관적인데 내 눈은 항상 주관적입니다.
주관적 눈으로 해석하니 세상이 내 뜻 같지 않습니다.
주관적인 눈으로 세상을 꿰뚫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바로 공부지요. 공부는 패러다임도 바꿉니다.
패러다임이 하루아침에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패러다임을 바꿔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기술도 패러다임을 바꿔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기술 패러다임, 중요합니다.
우리를 지탱해온 문화적 패러다임이었던
근면과 성실을 바탕으로
회사는 창의와 상상,
조직은 양보와 배려의 문화가 있어야 합니다.
제일 중요하고 근간인 여러분들은
자유와 자존을 중시해야 합니다.
사고의 틀 속에 자신을 가두지 말아야 하며,
나를 존중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사랑해 줍니까?
자유와 자존을 바탕으로
개인이 발전해야, 조직과 회사가 발전합니다.
문화 패러다임, 더욱 중요합니다.
스티브 잡스, 노무현, 알리바바의 마윈…. 공자
그들도 주관적인 인간이지만,
주관의 눈을 감고 객관의 눈을 열어
고객의 눈으로, 국민의 눈으로, 인간의 눈으로
상품과 시장과 국민과 국가를 봤습니다.
세상은 지극히 객관적인데 내 눈은 항상 주관적입니다.
주관적 눈으로 세상을 꿰뚫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어떻게? 공부해야지요.
나부터, 오늘이 아닌 지금부터
스티브 잡스, 노무현, 알리바바의 마윈…. 공자의 세상을 꿰뚫는 능력을 어떻게 설명할까요?
장자의 蝸角之爭(와각지쟁), 달팽이 뿔 위에서 촉나라와 만나라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하고 시체가 즐비합니다. 치열한 자기의 삶, 세상사를 제3자 입장에서 내려다본다면 세상을 꿰뚫어 보는 것 아닐까요? 손오공이 근두운을 타고 아무리 날아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만화영화 같은 장면 말입니다.
떠나는 날, 잔소리, 죄송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참여 민주주의가 시작된 것은 노무현 정부부터 인듯하다. 경제발전과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이 희생을 감내하고, 국가 이익과 발전을 위해 민주주의 정신이 훼손되는 것도 묵인했던 시기가 지나서 였다.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 문재인 정부 들어와 참여 민주주의가 본격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Digital과 ICT기술 발전으로 의회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한 참여민주주의를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청와대 국민청원시스템은 Digital과 ICT기술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다. 참여민주주의 장점은 풀뿌리 민주주의가 가능한 것이나 단점은 국민들의 시간과 정열을 너무 많이 빼앗아 간다. 이것은 제 주장이 아니라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 1900)의 말이다. ‘사회주의의 문제는 참여와 토론을 한답시고 당원들의 저녁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아간다는 것이다.’
국민 참여로 제도개선, 억울함을 풀기위한 시스템이었으나 ‘팬덤’을 모으는 역할도 했고, ‘진인 조은산의 시무십조’를 기점으로 정부정책에 반대하고 이를 다시 역공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시간과 정열을 너무 많이 빼앗아 간다. 오스카 와일드가 이야기한 것은 ‘사회주의의 병폐’이므로 적절치 않은 예시라는 분께 조금 더 자세한 반론을 소개해 드린다.
민주주의의 원형이라는 아테네의 직접 민주제도는 문제가 많았다. 첫째가 노예제도로 노예는 겉모습만 인간일 뿐 비인격적 존재였다. 둘째는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공평한 기회를 부여한다는 개인적 善이 과연 사회적으로도 선인가 하는 문제다. 아테네에서는 전쟁에 나가 국가를 구할 장수도 투표로 뽑기도 했는데, 국가 안위보다 시민에게 동등한 기회를 부여한다는 경직된 민주주의 원칙이다. 셋째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염려했던 다수의 어리석은 민중이 이끄는 衆愚政治(중우정치)로의 타락이었다. 다수가 좋아하는 것이 옳은 것 또는 진리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시민이 양식이 있고 지혜롭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건강한 양식보다는 눈앞의 이익을 탐하고 지혜보다는 소피스트와 같은 말재주를 더 사랑한다. 플라톤이 염려했던 대로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인류 역사상가장 올바른 시민으로 칭송받는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동양에서는 평화롭고 살기 좋은 세상을 ‘堯舜(요순)시대’에 비유했다. 요순시대의 정치핵심은 ‘왕이 존재하되 군림하지 않는 것’이었고, 왕은 백성과 같은 집에 살면서 손발이 닳도록 무한대 봉사를 하는 자리였기에 대단한 각오 없이 함부로 왕이 될 수 없었다. 변수와 무광은 왕 자리를 권유받고 강물에 빠져죽었으며 허유는 도망갔다.
요즘 정치인들이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는 대통령’ ‘국민의 뜻을 받드는 국회의원’같은 수사를 내뱉지만 ‘뽑아놓고 보니 아니네.' 하는 식의 발등을 찍는 일이 다반사다.
요순시대에는 ‘禪讓(선양)’이라는 형식으로 후계자를 결정했다. 왕이 후계자를 선발할 때는 여러 사람의 천거를 받아 사람 됨됨이를 오랜 기간 관찰하게 했다. 이것이 확인되면 쉬운 직책부터 어려운 직책까지 일을 맡겨 실무능력을 확인하고, 국정운영을 대행하는 단계가 진행되었다. 순임금은 28년 간 후계자 수업을 받은 다음 대권을 물려받았다. 20여 년간 살피고 훈련 시켜 왕을 정하다보니 衆愚政治에 빠져 왕이 잘못 정해질 가능성이 매우 낮았다.
- 아주 낯익은 지식들로 시작하는 인문학 공부 (신동기著, 아틀라스 북스刊) -
‘다수가 좋아하는 것이 옳은 것 또는 진리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시민이 양식이 있고 지혜롭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이 전제가 없다면 아마도 플라톤이 이상국가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주장한 哲人政治(철인정치)도 실현 불가능하다. 또한, 제가 말씀드리는 ‘객관이 주관을 앞서는 사회’도 대중이 양식 있고 지혜롭다는 전제가 깔려야 한다.
철인정치에서 哲人이란 ‘장자의 蝸角之爭’ 수준으로, 세상사를 제3자 입장에서 내려다보고 세상을 꿰뚫어 보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哲人이나 賢者(현자)라도 신이 아닌 이상 인기와 영합할 수 있기에 대중이 양식 있고 지혜롭다는 전제가 없다면 衆愚政治로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
* ‘다수가 좋아하는 것이 옳은 것 또는 진리가 되는 사회’와 ‘객관이 주관을 앞서는 사회’는 표현만 다를 뿐 같은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