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급외 정치는 백성과 옳고 그름을 다투는 정치입니다.
‘5욕을 얻을 때는 잠깐 즐겁다가 잃을 때는 몹시 괴롭나니, 마치 꿀을 바른 칼날을 핥으면 단맛에 빠져 혀가 상하는 줄은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불교명언중 하나입니다. 눈, 귀, 코, 혀, 몸의 대상인 색, 소리, 냄새, 맛, 촉감 하나하나에 휘둘리고 이끌리다 보면 낭패를 보게 되니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 위험을 알고 있어 욕망을 멀리 하나 마약, 바람, 도박, 술에 빠져 패가망신하는 것을 생각하면 딱 들어맞는 말입니다.
이는 개개인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조직에도, 국가에도 적용됩니다. 예전에 모셨던 K사장님은 저녁식사로 우렁쌈밥, 고등어김치찜 같이 서민적인 것을 즐겨하셨습니다. 막소주 한잔, 맞담배도 허락한 소박한 자리에서 시행하는 간부들과의 공개대화는 진솔했습니다. 물론 그 당시 사장님이면 1인분에 수십만 원짜리 식사도 가능하셨고 field에 나갈 수도 있었지만 오욕의 즐거움을 경계하셨던 분이셨습니다.
조직에서 우두머리가 올바르고 믿음직스러우면 단숨에 많은 것이 변화됩니다. 사장님께서 청렴을 솔선수범하고 계시니 자연스럽게 처, 실장과 사업소장들이 부정 유혹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직원들과 회사를 사랑하는 믿음을 주니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해 거리낌 없는 토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신뢰받는 리더가 조직 기강을 바로 세웁니다. 직급이 높고 낮음과 무관하게 리더 자격 중 ‘신뢰’는 처음과 끝입니다.
* ‘오욕’을 이야기하다 ‘신뢰’로 옮겨갔으나 어색하지 않은 것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서입니다. 오욕에 빠진 사람을 존경하거나 믿을 수 없습니다. 자기 통제도 못하고 사욕과 탐욕에 빠진 사람을 보면 존경보다는 혐오하게 되지요. 오욕을 절제하고 관리하는 사람은 당연히 믿음직합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권력과 직위에 취해 꿀 빨다보면 판단력이 흐려져 사리분별을 못하게 됩니다. 위정자들이 국민 뜻을 따르지 않고 국민을 가르치려 한다면 벌써 오만방자해 진겁니다. 더 나아가 국민들을 개, 돼지처럼 보는 순간 그 정권은 이미 몰락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징조들이 나타나면 ‘레임덕’이 온 것을 감지해야 하는데 몰락하는 정권에 빌붙어 꿀 빨고 있는 자들은 달콤함에 정신 팔려 혀에서 피가 솟는 것은 둘째 치고 혀가 끊어지고 있는데도 꿀 빠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위정자들은 당시 초기 상황을 돌이켜 봐야 합니다. 촛불시위에 슬그머니 숟가락을 올려놓은 것이지 본인들이 주도하고 잘해서 정권을 가져온 것은 아닙니다. 탄핵 주장하다 역풍을 맞을 수 있어 광화문광장에 앉는 것조차 조심하던 세력에게 국민들이 정권을 빼앗아 준 것이고 아무 준비 없이 얼떨결에 받은 겁니다. 대선과 총선에서 대승을 하고나니 政靑이 기고만장하여 국민들을 개, 돼지로 보기 시작한 것 아닐까요?
하지만 이 나라 개, 돼지들은 그렇게 무식하지 않고 깨어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잘, 잘못을 판별할 줄 알며, 미래를 바라보는 통찰도 있고. 내 것이 아니면 취하지 않는 도덕성과 꿀 바른 칼날을 핥지 않는 지혜도 있습니다. 전문성이요? 한줌도 안 되는 위정자들이 어떻게 오천만 국민들의 집단지성과 전문성을 뛰어 넘을 수 있습니까?
전문성 없는 일반 국민들 수준에서도 집값상승의 부작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정치 아마추어들이 시험해본 24번째 부동산대책은 실패했고, 반성을 모르는 오만한 정부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믿음과 신뢰를 상실’한 정권은 이미 종말을 고한 겁니다. 옛날부터 그랬습니다.
정치, 외교전문가인 자공이 공자에게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물으니 양식을 풍족하게 하고 군비를 충족하게 하여 군대를 튼튼하게 하며 백성들의 신망을 얻어 믿고 따르게 해야 한다. 말했다. 자공이 물었다. 부득이 하게 셋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득이 하게 줄여야 한다면 군대를 줄여야 하고 그 다음은 먹고 사는 것을 줄여야 한다. 마지막은 신망으로 백성들이 정치를 믿지 못하면 나라가 존립하지 못한다.
무식하지 않고 깨어 있는 이 나라의 개, 돼지들은 民無信不立을 알고 있습니다.
요즈음 젊은 친구들 은어 중에 ‘꿀 빤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는 ‘(군대)꿀 보직’이란 은어가 있었는데 모두 쉽고 편한 일을 할 때 사용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꿀을 잘 빨아야 합니다. 꿀 빨고 있으면 십중팔구 나태해지기 십상입니다. 군대에서 고생해보지 못하고 꿀만 빨다 제대한 사람은 경험해본 역경 한계치가 낮습니다. 군대가 아니면 언제 어디서 극한 상황과 마주하겠습니까? 긴 시간을 사회와 격리되어 썩는다고 비하 하지만 사실 군대에서 배우는 것은 죽을 때까지 필요한 인내입니다. 고난과 인내를 통해 사람이 더욱 단단해 지는 것이지요.
회사 내에서도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리더와 그렇지 않은 리더와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웬만한 어려움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는 진중함과 인내심은 ‘산전수전’과정의 산물입니다. 특히 이들의 장점중 하나는 ‘民無信不立’ 이치를 자연스레 터득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보직을 담당했던 사람들은 끈끈한 인간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어려움과 맞닥뜨리면 조직원은 단합하려는 경향이 있기에, 이들에게 믿음을 준다면 조직원들은 더욱 탄탄하게 뭉쳐 어려움을 헤쳐 나가게 됩니다. 이들은 헤어져도 돕게 되며 같이 했던 동료와의 관계는 퇴직 후에도 이어집니다.
하지만 ‘꿀 빠는 시절’을 같이 했던 동료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꿀 빠느라 혀가 베이는 아픔을 느끼지 못할 정도인데 동료들이 눈에 들어올 리 없습니다. 서로 많이 빨아야 하는 경쟁자 위치이므로 화합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사마천은 정치를 등급으로 나눴습니다.
1등급은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순리의 정치
2등급은 이익으로 백성을 이끌고 백성을 잘살게 하는 정치
3등급은 백성들이 깨우치도록 가르치는 훈계형 정치
4등급은 백성들을 일률적으로 바로 잡으려는 위압정치
등급외 정치는 백성과 옳고 그름을 다투는 정치입니다.
우리는 과연 몇 등급의 정치 세상을 맛보고 있나요? 예전 이건희 회장은 경제는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비판하여 김영삼 정부로 부터 상당한 곤란을 겪었다고 하는데, 작금의 현실은 어떤가요? 혹시 4등급에서 퇴보하여 등급외 정치를 맛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눈을 돌려 회사, 조직내부를 쳐다봅시다. 여야를 막론하고 불신 받는 정치권과는 달리 꿀 바른 칼날을 핥는 사람과 民無信不立의 이치를 모르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갓 승격하여 새로운 보직을 맡게 될 후배가 마음 자세를 물어보기에 ‘꿀 바른 칼날’이야기를 해줬습니다. 기쁘고 들뜬 상태를 너무 다운시킨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