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가든 독사처럼, 거머리처럼 일해야 한다.
선배들이 게으른 후배들을 평가할 때 '업무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고 열정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물론 후배가 선배를 두고 하는 뒷담화 내용도' 아는 것 없이 일도 못하면서 선배는 무슨...' 이 또한 업무에 대한 열정이 없음을 빗대어 이야기하는 것 이겠지요. 그러나 개인적으로 세련된 어감의 “열정”보다는 투박하고 野性的(야성적)이며 전투적이기까지 한 “치열”이라는 단어가 더욱 마음에 끌립니다.
아마추어에게 열정은 있으나 치열함이 있을까? 치열함 없이 프로가 될 수 있을까? 치열함 없이 1등을 할 수 있을까? 운동경기를 보면 프로에게서는 열정을 뛰어넘는 치열함이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골프를 치지 못하지만 쉬운 버디펏을 놓쳤을 때 프로골퍼들의 표정을 보면 허탈함, 자기에의 분노, 퍼터를 꺾어버리는 狂氣(광기)에서 치열함을 읽을 수 있습니다. 프로야구 롯데구단의 용병선수 가르시아도 삼진을 당할 때는 야구배트를 부러뜨리곤 하는데 그에게서도 프로의 진한 향기가 풍깁니다.
예전에 프로낚시꾼과 같이 낚시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바람이 어찌나 심하게 부는지 물결이 하얀 거품을 낼 정도라 평상시 같으면 낚시를 포기했을 텐데 프로와 낚시를 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 强行軍(강행군)을 하였습니다. 연신 낚시채비를 바꾸는 그를 보고 오늘은 아무리 프로라고 해도 찌의 움직임을 보기 어려우니 고기를 잡지 못할 텐데 헛고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는 프로였고 과연 프로다웠습니다. 채비를 1년에 한 번 바꿀까 말까 하는 아마추어는 붕어가 입질하기만을 기다렸으나, 프로는 치열하게 낚시에 임하고 있었습니다. 2번 3번 채비를 바꿔 결국에는 붕어를 뽑아내는 열정 그것은 치열함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붕어를 낚은 것이 아니라 치열함으로 붕어를 만들어 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았습니다.
아! 나이는 어리지만 프로가 다르기는 다르구나. 나같이 잡아도 그만, 못 잡아도 그만인 주말낚시꾼에 비해 붕어를 잡아야 상금을 타고 돈을 버는 프로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구나. 40년간의 낚시경력으로 자칭 프로급이라는 주말낚시꾼은 젊은 프로에게 붕어를 만들어 내는 치열함을 배웁니다.
개인적으로 치열함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쓰레기청소를 해도 치열함을 갖고 있는 사람
문서를 작성해도 치열함이 있는 사람
안전사고로 인해 목발을 집고 다니면서도 치열하게 사업을 하시는 김 선배...
발레리나 강수진이 사랑받는 이유는 발이 울퉁불퉁하게 될 정도로 치열하게 발레를 했기 때문이며 첼로를 켜느라 휘어버린 장한나의 손가락과 음악에 심취하여 신들린 듯한 얼굴표정은 敬畏(경외)의 대상입니다.
제가 원자력 특히 시운전사업소만 다니다 보니 같이 일할 사람들을 선발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새로 전입하려는 직원들에게 제일 먼저 물어보는 질문은 왜 우리 팀에 오려고 하냐는 것입니다. 만년 조원을 할 수 없어 조장을 해보기 위해 오고 싶다는 대답을 하면 두말 않고 선발했습니다. 치열함이 있는 鈍才(둔재)를 뽑는 것이 열정 없는 天才(천재)를 영입하는 것보다는 현명하니까요. 그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 치열함을 넘어 불꽃이 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떠밀려 와서 근무를 하는 직원들과는 업무의 질이나 완성도가 다릅니다.
담당설비에 문제가 있다면 새벽에도 달려 나와 일하는 것은 어느 사업소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일입니다만 같이 근무했던 치열한 둔재들은 뒷마무리까지 깔끔하여 일 한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타 발전소 사정은 모르겠으나 정비작업 후 바닥에 가루비누를 풀고 수세미로 닦아내는 것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제가 시켜서 바닥을 닦아내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이 자발적으로 비누를 풀고 수세미로 바닥을 청소합니다. 바닥이 우윳빛 속살을 드러낼 때 저는 생각합니다. “아! 이번 오버홀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가는구나.”
저는 치열함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선발하여 그들의 치열함을 사랑하고 존경만 하면 될 뿐 별로 할 일이 없었습니다. 전동기의 송조장, 변환기의 김조장, 발전기의 함조장, 차단기의 박조장, AVR의 박조장... 신주임, 이주임 등과 협력업체 직원이었지만 조명의 김조장 등 프로의 치열함을 갖고 있는 그들을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존경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다음은 ‘09.09.09 선배가 진정성을 갖고 후배들에게 강의한 내용(신문기사)을 발췌했습니다.**
"저도 연세대 출신이지만 연대 출신 안 뽑으려고 했습니다." 대선배의 충고는 거침없었지만 애정이 넘쳐났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신촌동 연세대 공학원 강당에서 열린 LG그룹 채용 설명회에 특강자로 나선 한상범 LG디스플레이 IT사업부장 부사장. 연세대 75학번인 한 부사장은 좀처럼 듣기 어려운 솔직 담백한 강연으로 아들, 딸뻘 되는 후배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룹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과 함께 입사했을 때의 장점 등을 늘어놓는 예의 채용 설명이 아닌, 산전수전을 겪은 인생 선배로서 예비 직장인들에 대한 허심탄회한 충고와 애정 어린 조언에 가까웠다. '나의 꿈 그리고 LG'라는 주제로 한 부사장은 최근 심각한 구직난에도 일이 힘들다며 입사하자마자 쉽게 직장을 관두는 최근 신세대의 행태를 개탄했다. 한 부사장은 "사원을 채용하는 것은 회사로서는 엄청난 투자인데 요즘 젊은 사원들은 조금 힘들다고 쉽게 그만둔다"며 "특히 연세대 출신들이 일찍 그만둬서 연대 출신 안 뽑으려 했다"라고 후배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한 부사장은 이어 "LG에 안 와도 좋고 경쟁사를 가도 좋지만 어디 가든 독사처럼, 거머리처럼 일해야 한다. 대충대충 하려면 안 하는 게 낫다"며 프로 정신을 강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