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있는지?(9): 월급이 차고 넘쳤던 적이 있었는가?
전편의 마지막 문단: 이제는 ‘절대 흔들리지 않을 거야!’, ‘절대 청렴’, ‘절대적인 삶의 기준’에서 ‘절대’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있는 중이다. 시대도, 환경도 바뀌고 있으며 내 주관이 절대 옳은 것은 아닌데도 이상한 논리에 사로잡혀 자신을 괴롭게 한 것은 아닌지?
이제는 ‘절대’라는 단어와 이별하고 힘을 빼서 흔들흔들거리며 세상을 살기로 했다. ‘너도 맞아, 나도 맞고’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By 고미숙(고전평론가)
동양적 관점에서 보면 공부한다는 것은 몸에 힘을 빼는 것입니다. 긴장해서는 절대로 고수가 될 수 없어요. 몸의 경직성이 커지면 세상과 소통할 수 없기 때문에 배운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천지와 소통한다는 의미이고 여러분이 릴랙스 된다는 뜻입니다. 깨달음은 유동하는 마음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 생각 수업(1) (박웅현 등 9명著, 알키刊) -
injury time?, 두 번째 직장에서 한 달 정도 퇴직이 늦춰졌다. 축구경기는 아니지만 약속된 시간이 지나고 추가시간이 주어졌다. 의도치 않은 시간이며 계획에도 없었던 시간이다. 오랜 시간 계획을 만들고 계획에 따라 생활해 왔기에 무계획과 궤도이탈은 조금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이곳에 재직할 동안 계획했던 일을 마무리했기에 현상관리와 인수인계만 신경 쓰면 될듯하다.
물론 퇴직이 늦춰짐으로 인한 여러 장점이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루틴이 강제적으로 지켜지는 것이다. 전 직장에서 정년퇴직하며 가장 걱정되었던 것이 루틴이 깨지며 나태해지는 것이었다. 재취업하기까지 반년정도 시간이 흘렀다. 병석에 눕기 전까지는 나태해지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워 하루 일과표를 만들어 책 읽고 끄적거렸었다. 자청해서 한 치의 오차 없이 톱니바퀴 물고 돌아가는 듯한 조금 피곤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교통이 편리한 강남 한복판에 사무실이 있어 회사 인근으로 찾아오는 선, 후배님들과도 당분간 편리하게 만날 수 있다. 물론 세계 경기가 불확실한데 월급도 계속 나오니 경제적으로 도움 된다. 아직 경제력 있는 남편이라는 허세를 부릴 수 있으며 찾아오는 손님들 순댓국 한 그릇 대접할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계획이 어긋나니 불편함도 생겼다. 퇴직 후 잡아 놓았던 계획들이 순연되었다. 작게는 병원 진료예약도 변경해야 하고, 南道에서 지겨워질 때까지 낚시하기로 한 釣友와의 약속도 연기시켜야 한다. 봄철 붕어낚시시즌과 퇴직시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해가 바뀌기 전부터 가슴 두근거렸는데 아쉽게 되었다.
회사 다니는 것이 지겹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다녔던 고교동창은 내가 퇴직하는 시기에 맞춰 같이 놀러 다니겠다며 퇴직준비를 했다. 친구는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바로 전직했으며 휴식년 없이 근 40년을 계속 일했기에 지겨울 만도 하다. 내 퇴직계획이 어긋나자 고교동창도 퇴직대신 주 3일 근무를 택했다.
35년 근무했던 직장을 떠나며 재취업하게 된다면 월급에는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었다. 물론 나를 필요로 하는 기업이 없을 수 있으나 풀타임은 아니고 일주일에 2~3일 정도 출근하며 도움 줄 수 있는 일을 생각했었다. 해왔던 업무와는 무관하지만 ‘도서관 책 정리’ 같은 일은 일주일 계속 출근해도 매력 있는 일자리일 것 같아 산책 코스에 있는 공원도서관을 눈여겨봤었다.
퇴직한 선, 후배들과 이야기해 보면 ‘월급의 적정선’은 들쭉날쭉하다. 전 직장 월급 보다 더 높은 월급을 받는 사람도 있고 일주일에 1~2일 출근하며 1/10 정도 받는 사람도 있다. 두 번째 직장에서 예전의 1/3 수준을 받았지만 적지 않은 월급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물론 예전에도 능력에 비해 많은 월급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1억 원 받으면 1억 원어치 고민이 있으며, 1천만 원 받으면 1천만 원어치 고민이 뒤따른다. 세상에는 공짜 점심이란 없다. 물론 월급에 비해 작은 고민거리를 주거나, 고민거리를 주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곳은 평생직장이 되지 못한다. 몇 년 되지 않아 필히 망하기 때문이다.
월급이 적다고 원망할 필요 없다. 적다고 느낀다면 많이 주는 곳으로 이직하면 될 것이고 월급을 많이 받는다면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고민을 감당하면 될 일이다. 능력에 따라 대우받고, 대가를 받는 만큼 고민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합당한 이치다.
선호하는 직업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한국전쟁 전후 일자리가 없을 때 은행원과 공무원밖에 변변한 일자리가 없었으며 PX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미군부대 군무원도 인기직업이었다고 한다. 이후 월급 많은 대기업에서 안정된 공기업으로, 반도체와 IT기업으로, 다시 워라밸이 중요하니 월급보다는 개인을 존중하고 마음이 편한 자유로운 기업으로 선호도가 변화했다.
결국 월급의 적정선은 본인 마음에 그어져 있다.
하지만 월급이 차고 넘쳤던 적이 있었는가? 월급은 많이 받아도 모자라고 적게 받아도 모자랐다. 신입사원 연봉이 아파트 2채 였지만 그때도 월급 타면 외상 술값 결재하고 술 마시다 보면 또 외상 술값이 새로 생겼다. 신용카드 없을 때니 그나마 주머니가 두둑했다.
20년 전 ‘신용카드 대란’을 기억하고 계신지 모르겠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수백만 명을 신용불량자로 만든 사건이다. 학생과 소득도 없는 사람에게까지 신용카드를 발급하여 발생한 경제 위기다. IMF사태를 극복하고 경기 회복기에 접어든 대한민국을 다시 위기에 빠트린 사건이다. 카드가 외상 소비를 부추겨 ‘가불 공화국’을 만들었다. 물론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소비자 책임도 크다.
월급 받자마자 가불 사용한 신용카드대금이 번개처럼 빠져나가서 빈 통장이 되고 다시 가불인생이 된다. 남을 만큼 받아보지 못해서 항상 적을 수도 있으나 신용카드 등장 전후를 비교해 보면 신용카드 등장 전 생활이 훨씬 여유로웠던 것 같다.
1/3 수준으로 줄어든 급여를 받았어도 같은 현상이 반복된다. 신기한 일이기는 하지만 대폭 줄어든 수입으로 생활의 곤란을 받는 적은 없다. ‘급여는 많이 받아도 모자라고 적게 받아도 모자란다.’는 셈법이 맞아 들어가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급여 관련해 신기한 현상이 또 있다. 보너스 타는 달은 그만큼 씀씀이가 생기는데 이는 신기함을 넘어 불가사의 중 하나다.
매번 빈 통장을 바라보고 많이 받으나 적게 받으나 항상 모자란다 하니 엉뚱하게도 조계종 총무원장이셨던 법장스님 涅槃頌(열반송)이 생각난다.
‘나에게 바랑이 하나 있는데/ 입도 없고 밑도 없다./ 담아도 담아도 넘치지 않고/ 주어도 주어도 비지 않는다.’ (我有一鉢囊, 無口亦無底, 受受而不濫, 出出而不空: 아유일발낭 무구역무저 수수이불람 출출이불공)
실제 법장스님은 돈을 초탈했고 통장이 없었다. 돈이 생기면 바랑 아닌 장삼 소매에 넣고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소매에서 돈을 꺼내 줬으나 장삼소매에 돈이 마를 날이 없었다고 한다.
결국 급여의 적정선은 본인 마음에 그어져 있으며, 월급통장은 담아도 담아도 넘치지 않는 스님의 장삼자락이나 바랑을 닮았다.
월급 많은 곳보다 마음과 영혼 편한 곳을 찾는 것이 좋은 직장을 찾는 것이며 잘 사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