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청탁이 들어옵니다.
청탁, 부탁, 추천은 같은 의미로 사용되나 청탁은 인사청탁, 공사청탁 등 부정적인 이미지로 사용되지만 추천은 클린(clean)한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예전, 사촌형님 친구 분이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전무님께 청탁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전무님은 청탁이 통하지 않는다는 꼿꼿한 분으로 定評(정평)이 나있어 껄끄러운 면이 있었으나 양주 한병 사들고 가서 청탁을 드렸습니다. ‘차장 중에 쓸 만한 사람이 있는데 승격을 부탁드립니다. 진급할 시기가 충분히 되었고 실력도 있으며 현장 통솔이나 고객과의 관계가 원만하니 材木(재목)입니다.’
전무님은 입맛을 다시며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리시는 폼이 청탁을 들어주실 기미가 없으신 것 같았습니다. 30분 정도 이런저런 閑談(한담)을 하고 돌아 서려는데 ‘임 부장은 본인이 승격할 생각을 해야지 왜 다른 사람 청탁을 하고 다니냐? 그런데 그 친구 이름이 뭐라고 했나?’ 태어나 처음으로 해본 인사청탁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 같아 섭섭했으나 전무님의 마지막 한마디에 一抹(일말)의 희망을 걸어 봅니다.
청탁을 넣은 차장은 그해 승격되지 않았고 전무님이 퇴직하신 다음 해에 승격 되었습니다. 청탁이 무위에 그쳐 아쉽기는 했지만 시간이 흐른 후 돌이켜보면 약이 된 것 같았습니다. 물론 해당 차장은 제가 청탁을 하는지 조차 몰랐으나 만약 승격되었다면 내 덕으로 승격했다는 말이 입에서 나왔을 수도 있고 당사자는 능력도 없는데 승격 했구나 라는 自愧心(자괴심)으로 힘들어했을 테니 서로에게 잘된 일 인 듯합니다.
편지 쓴 지 2년이 되어가니 답장을 보내주시는 분들에게서 가끔 청탁이 들어옵니다.
‘보내주신 편지를 잘 읽고 있으며 아침 조회 시 또는 안전교육 시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많은 직원들이 안전팀장이 보내주는 편지이니 편지 내용이 안전과 무관해도 안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신 것 같으니 앞으로는 리더십이나 어떻게 하면 출근이 기다려지는 직장을 만들 것인가 등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써주시면 많은 보탬이 될 것 같습니다.’
이제는 안전에 대해 잔소리 그만하라는 이야기 같기도 하고 2년 동안 편지를 보내 어느 정도 안전마인드가 자리 잡혔으니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충고해 주고 싶은 이야기를 해달라는 청탁인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편지 쓰기 시작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 같아 뿌듯합니다. 별 볼일 없는 내용이지만 98편의 편지를 써 내려갔으니 웬만한 사람들은 귀찮아서라도 ‘알았어. 알았다고 안전하게 작업할게.’라는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낼만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잔소리를 해대는 선배들이 줄었으니 욕쟁이집 할머니 같이 후배들이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욕을 대신해 달라는 청탁인지 헷갈리는 부분도 있습니다.
사실 욕쟁이집 할머니는 깊은 내공을 바탕으로 이야기 하시는 것이니 ‘밥 쳐무긋냐?’ ‘술좀 작작 쳐무그래이.’ 하는 말씀이 정겨울 수 있지만 저는 아직 내공이 깊지 않아 사람 사는 이야기를 시작하면 금방 바닥을 보이게 될 것이니 쉽지 않은 일입니다. 또한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내야 하는 성격으로 열 편 정도 보내다가 밑천이 바닥나 그만하겠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낯 뜨거워지니 청탁을 쉽게 받아들일 일은 아닙니다.
인사추천과 관련된 고사 한 토막. 진(秦) 나라 여불위가 지은 <여씨춘추>에 소개된 진(晋) 나라 기황양(祁黃羊)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왕(平公)이 기황양에게 말했다. ‘남양에 현령이 한 사람 필요한데, 누가 적당하겠소?’ 기황양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 자리에는 해호(解狐)라는 사람이 가장 적합합니다.’ 기황양과 해호가 서로 원수지간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던 왕은 뜻하지 않은 대답에 깜짝 놀랐다. ‘아니, 해호는 그대의 원수가 아닌가?’ 기황양은 조금 언짢은 듯 말했다. ‘왕께서 물으신 것은 누가 현령자리에 적당하겠는가 였지, 저의 원수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왕은 해호를 남양 현령으로 발령했다.
한번은, 군대에서 유능한 지휘관이 필요하게 되었다. 왕은 기황양에게 다시 물었다. ‘그대가 보기에는 누가 군대의 지휘를 맡아야 할 것 같소?’ 기황양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였다. ‘기오(祁午)가 적임자입니다.’ 왕은 놀라 다시 물었다. ‘아니, 기오는 그대의 아들이 아니오?’ 기황양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왕께서는 저에게 군대를 지휘할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물으셨지 기오가 저의 자식인지를 묻지는 않으셨습니다.’ 왕은 기오를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대신들은 왕의 사람을 등용하는 기술에 대해 더욱 탄복했다고 합니다. 大公無私(매우 공평하여 사사로움이 없다)라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