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철著, 21세기북스刊
서양학자 이름이 자주 등장해 머리를 어지럽게 만드는 이론에 가까운 심리학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김정운, 황상민, 곽금주교수 등 심리학교수 등이 풀어쓴 책은 즐겨 읽는다. 물론 조직관리, 인간관계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 알아야 할 내용으로 가득하다. 이 책을 만든 최인철교수도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다.
심리학은 본인심리도, 상대방 심리도 알아야 하는 세상살이에 유용한 학문이다. ‘철학이 밥 먹여주니?’와 비슷하게 천시되었던 심리학이 핫 해진 이유는 물론 ‘돈벌이’하고도 관련되어 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어도 소비자의 심리를 모르면 팔리지 않는다. ‘소비심리학’, ‘마케팅’..., 등도 심리학에서 발전, 파생되었으며 제품 기획 단계부터 소비자 심리를 알아야 한다. 물론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돈벌이’가 아니라 ‘행복’이다.
행복 천재들의 비밀 병기 ‘그냥’
예상할 수 있는 날에 예상할 수 있는 선물을 하는 사람보다는 아무 날도 아닌 날에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선물하는 사람이 더 고마운 법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유를 물었을 때 이런저런 이유를 대는 사람보다 ‘그냥 좋아’라고 답하는 사람에게서 더 깊은 사랑을 느끼는 것처럼
행복한 천재들은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뜻밖의 시간에 뜻밖의 선물을 한다. 우리가 달력을 볼 때 행복의 천재들은 자기 마음을 본다. 우리가 몇 안 되는 기념일을 챙기느라 많은 날을 그냥 흘려보낼 때 그들은 자기 마음속 감사의 감정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우리가 다수의 비 기념일을 평범하게 만들 때 그들은 모든 날을 비범하게 만든다. 행복한 천재들은 기념일 프레임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 때나 그냥 선물한다. 천재들의 선물은 예상을 뛰어넘어 밸런타인 초콜릿 대신 여러 장의 손 편지를 보내며 서명한 연하장 대신 전화로 덕담을 건넨다. 그냥 하는 선물이라지만 즉흥적이거나 충동적이지 않고 오히려 숙성된 와인의 향기가 난다. 그들의 선물은 철저하게 준비된 우연으로 상대방의 취향을 흘려보내지 않고 상대방을 잊지 않는다. 계획된 우연이며 ‘그냥’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심지어 오다 주웠다고 말한다고 해서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된다.
행복한 천재들에게는 특별한 4대 보험이 있다.
인생의 모든 고통과 궁핍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은 우리를 보호해 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다. 천재 등의 특별한 4대 보험은 좋은 인간관계(Intimacy), 자율성 (Autonomy), 의미와 목적 (Meaning & Purpose), 재미있는 일 (Interesting Job)이다. 좋은 인간관계(Intimacy) 고통은 사랑하는 사람이 잡아주는 손길에 줄어들고 기쁨은 사랑하는 사람이 건네는 축하로 배가된다. 친밀한 인간관계는 부정정서를 줄여주고 긍정 정서를 키워준다. 직장인의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는 급여나 노동 강도가 아니라 인간관계다. 그중에서도 상사와의 관계가 핵심이었다. 무엇이 되었든 외부로부터 강요되지 않는 삶이 행복한 삶으로 자율성 (Autonomy)이다. 직장 내 자율근무제도 포함된다.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면 급여가 적어도 감수하겠다는 의견이 많다. 의미와 목적 (Meaning & Purpose)이 있다면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여행이 행복한 이유는 재미있는 것들이 가득하기 때문인데 재미가 일상인 직장에서 재미있는 일 (Interesting Job)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복이다.
내성적인 사람이 온다.
내성적인 사람은 침묵이 무능으로 비칠까 전전긍긍한다. 인문학 열풍에 편승해 생겨난 각종 조찬모임은 새벽 댓바람부터 내성적인 사람을 괴롭힌다. 외향적인 사람에게는 축제지만 내성적인 사람에게는 고통이자 고역이다. 내성적인 사람은 주장과 주장이 맞서는 웅변의 영역보다는 숫자, 글 또는 기술로 승패가 갈리는 사유의 영역에 삶의 터전을 잡는다. 언변과 사교가 중요하지 않은 영역에서 기술적 전문성을 극대화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거리 두기로 외향성의 제국에 붕괴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기울어진 운동장은 반대로 기울고 있다. 내성적인 사람이 외향적인 사람인척 연기할 이유가 사라졌다. 사람 사는 재미란 서로 부대끼는 것이라며 회의, 회식이라는 고전적 무기를 들이댈 때, 사람 사는 재미란 꼭 필요한 사람과 서로 부대끼며 지내는 것이라고 당당히 맞서라.
열린 마음은 깊고 넓고 독보적이다.
마음의 기원을 찾으려는 연구 중 최근 들어 주목받는 연구가 전염병과 마음의 관계다. 코로나19를 통해 체험하고 있듯 대규모 전염병은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통째로 바꿔 놓는다. 소비, 사교패턴을 바꾸고 빙하는 방식, 수업과 미사의 형식, 축하와 애도의 방식까지 바꾼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감염위험을 줄이려는 예방행동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문화와 의식까지 바꿔 놓을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공통점은 이동의 제한이다. 개인이 활동하는 공간의 범위가 축소되고 국가는 국경을 닫는다. 가족 아닌 사람들을 경계하고 집이 아닌 공간들을 회피하게 된다. 이동성의 쇠퇴는 물리적 폐쇄성을 유발하고 이는 의식의 폐쇄성을 가져온다. 외집단에 대한 경계가 강화되고 내집단에 대한 응집은 공고해진다. 강력한 규범을 지배원리로 하는 집단주의 문화가 생기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집단의 생존을 위해 제한되고 침해된다. 개성보다는 생존이 개방보다는 폐쇄성이 의식의 지배원리로 자리한다. 이런 것들이 심화되면 외집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정당화되며 개인과 사회는 모두 마음의 문을 닫기 시작한다.
역사적으로 대규모 전염병이 창궐했던 지역과 아닌 지역을 비교해 보면 이런 생각이 소설 같은지 아니면 나름의 근거가 있는지 알 수 있다. 뎅기열, 결핵 같은 질병이 어느 지역, 어느 수준에서 창궐했는지 추정한 기록을 기초로 심리학자들이 세계 230 지역의 병원균 창궐정도를 점수화했다. 이 점수들을 바탕으로 각 지역의 심리특성을 분석한 결과 마음의 기원이 전염병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내성적이고 폐쇄적이었다. 대규모 전염병으로 생존이 위협받는 지역에서는 외향성과 개방성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결과다. 또한 창의성이 낮고 민주주의 정도가 약하며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낮았다. 열린 마음이 창의성의 핵심임을 감안할 때 그리 놀랄만한 결과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