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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남은 인생은 감사해하며 살아가야 하는 기적이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寸數(촌수)를 따지자면 매우 복잡한 관계인 사람의 自敍傳(자서전)을 읽어 볼일이 있었습니다. 아내 同窓(동창)의 시어머니가 되실 뻔한 분이니 사돈의 팔촌보다 먼 거리에 있는 분의 자서전 초안이었습니다. 되실 뻔한 분이 자서전을 쓰시고 아내 동창이 정리하는 과정에서 도저히 정리되지 않는다면서 아내에게 하소연을 했고 오지랖 넓은 아내는 내게 어떻게 정리했으면 좋을지 봐줬으면 했습니다. 소주 한 병과 광어회 한 접시를 사주겠다는 아내 제의에 혹해 30페이지 정도 읽어본 후 독후감을 말해줬습니다.

‘자서전이라면 성장과정부터의 年代順(연대순)과 살아온 장소 등으로 정리되어 커다란 프레임이 구성된 후, 살아가면서 겪은 에피소드나 순간을 바라보는 視覺(시각)과 思想(사상)등이 살이 되어 완성되어야 할 것이다. 시어머니가 되실 뻔한 분이 쓰신 자서전은 時空(시공)을 超越(초월)해서 써 내려갔기 때문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다시 등장하고 유년시절과 장년시절이 오버랩되는 등 정리가 어렵겠다.

굳이 자서전을 써서 후손들에게 남겨주시려면 傳記作家(전기작가)를 사서 정리하시는 것이 좋을듯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특히, 정리하기 어려운 점은 口語體(구어체)로 작성되어 마침표도 없고 단락 정리가 되지 않아 숨 짧은 사람은 읽지 못한다는 것이니 전기작가를 구하더라도 숨이 긴 젊은 작가를 구하는 것이 좋을듯하다는 助言(조언)도 잊지 않았습니다.

(독후감의 내용이 너무 비판적이어서 그런지 아내는 아직까지 소주 한 병, 광어 한 접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누구나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 大河小說(대하소설) 분량이며 기적 같은 삶을 살아왔다고 이야기하듯 시어머니가 되실 뻔한 분도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라고 早失父母(조실부모)하여 미국으로 건너갔고 결혼을 앞둔 아들이 아내의 동창과 결혼직전 사고로 인해 기억이 상실되는 등 기적 같은 인생을 살아온 분이셨고 앞으로 살아갈 인생도 기적같이 펼쳐지실만한 분이라 하실 이야기가 많은 듯했습니다.


베스트셀러가 된 장영희교수의 수필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속에는 바다가 갈라지거나 天地開闢(천지개벽)에 해당하는 기적은 없었습니다. 에필로그에서 이야기했듯 죽을 확률이 큰 암에 걸렸지만 살아날 기적을 所願(소원)했던 작가가 정한 수필집 제목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기나긴 암투병을 기적적으로 이기고 살아나 살아갈 기적을 소망했던 그는 결국 57세의 짧은 나이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개개인에 따라 波瀾萬丈(파란만장)한 桎梏(질곡)의 차이는 있겠으나 우리 모두의 삶 자체가 잔잔한 기적이라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障碍(장애)를 갖고 있는 장영희교수가 말하고자 하는 기적은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적, 항암치료를 받는 힘든 투병생활을 희망으로 이겨내는 기적이 아닌가 합니다. 劇的(극적)인 反轉(반전)도 없고 順理(순리)대로 담담히 살아가고 보통사람들처럼 좌절하고 절망하면서도 희망을 그려가는 것이야 말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라고 장교수는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허황된 꿈을 꾸며 대박의 기적을 바라는 僥倖心(요행심)에 사로 잡혀 살아가는 사람들 말로는 대부분 허망하게 끝나고 맙니다. 힘들게 살아가면서도 좌절하지 아니하고 희망을 그리며 살아가는 것이 살아온 기적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희망의 바이러스를 주변에 전파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살아갈 기적이며 살아가는 의미이자 숨을 거두기 전 기적과 같은 삶을 살았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조용한 물가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면서 주위의 자그마한 기적들을 찾아봅니다.

길가의 민들레 홀씨가 나는 것도 기적이다.

밟히고 밟혀도 죽지 않고 살아나는 질경이의 새싹 돋움도 기적이다.

외딴 시골집 저녁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평화를 보는 것도 기적 같은 일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어느새 자라 걷고, 말을 하고, 학교를 가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 자체가 기적같이 살아온 것이며 남은 인생은 감사해하며 살아가야 하는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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