難攻不落(난공불락)의 要塞(요새) 같은 기록
목사님 詐欺(사기)에 얹혀 우연하게 다시 시작한 신앙생활로 인해 그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안전팀에 와서는 말과 행동(言行)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생겼습니다. 흔히 징크스와 부정 탄다는 俗說(속설)로 인해 몸조심과 말조심을 하고 있어 사업소에 출장 가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 예전 영광원자력 3,4호기가 시운전할 때 제가 출장 가면 트립이 되는 바람에 출장용무를 보기 죄스러웠고 도망치듯 나왔던 기억 때문입니다.
기록이라는 단어도 입에 올리기 껄끄럽습니다. 기록 운운했다가 사고 나면 기록이 깨진 것이 제 책임 같고 죄스러워 죄책감에 시달릴까 봐 꺼리게 됩니다. 하지만, 알고 넘어가야 하니까 또 당연히 알려드려야 할 기쁜 소식이며 감사인사도 드려야 하니 오늘은 기록과 관련된 이야기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年(년)을 기준으로 한 우리 회사의 최소 안전사고건수의 기록은 10건이었습니다. 한 해 평균 20건의 사고가 발생되니 2000년도 수립된 10건은 대단한 기록이었으며 도저히 깰 수 없는 難攻不落(난공불락)의 要塞(요새) 같은 기록처럼 느껴졌습니다.
작년 상반기까지 5건의 안전사고가 발생하여 잘하면 작년보다는 사고건수가 줄어들어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8월 이후 사고가 없이 무재해가 지속되니 속으로 욕심이 생겼습니다. 어쩌면 創社(창사)이래 최초로 10건 미만의 안전사고를 기록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도 커져 갔습니다. 12월 31일 퇴근시간이 되었지만 새로운 기록이 달성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發說(발설)하기에는 조금 이르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오버홀을 수행하는 사업장도 있으니 24시 除夜(제야)의 종이 울릴 때까지는 전화가 오는지 귀를 쫑긋하여 기다려야 합니다.
‘09.01.01일 부로 우리 회사 안전사고의 기록을 다시 쓰려고 합니다. ‘08년도 안전사고건수 7건’은 쉽지 않은 기록이고 자랑스러운 기록입니다. 이는 전 직원들의 합심하여 이룩한 업적입니다. 현장에서 직접 정비작업을 수행하시는 선, 후배님들께서 노력하신 덕분이고 연초 사업소장님들께서 安全祈願祭(안전기원제)를 정성스럽게 준비하시고 제를 지내주셔서 하나님과 天地神明(천지신명)께서 응답을 해주신 덕분입니다. 본사차원에서도 각 사업처, 실마다 노사합동 워크샵을 여는 등 안전 관련 활동이 활발했던 것에 기인했다고 판단됩니다. 또한, 이러한 대기록을 달성하게 된 이면에는 안전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가시는 곳마다 ‘안전제일’을 강조하신 사장님의 功(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록은 언젠가는 깨어지기 위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 장대높이뛰기 선수인 세르게이 부브카는 新記錄製造機(신기록제조기)로 불리면서 한편으로 ‘미스터 센티’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프로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으나 세계적인 육상대회라 할지라도 부브카를 초대하기 위해서는 억대의 개런티를 지불해야 합니다. 최소한 다음 기록이 나올 때까지는 나라와 도시이름이 홍보되는 효과가 있으니까요.
부브카는 높은 개런티를 받고 참가해도 종전 본인이 수립했던 세계기록의 1센티만 넘는 기록을 경신할 뿐입니다. 컨디션이 아무리 좋아도 남은 대회와 높은 개런티를 위해서 1센티만 높게 뛰어 ‘미스터 센티’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비양심적인 사례지만 부브카의 세계기록도 언젠가는 깨어질 것입니다.
좋은 기록을 이어나가는데 ‘기록’을 운운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魔(마)가 낄 우려가 있다고 하시는 분도 계실 테지만 반대로 홍보하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창사이래 처음으로 10건 이하 안전사고 기록을 달성했으니 5건 이하 기록도 달성해 보고 전사업소 무재해달성이라는 기록을 수립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 이니까요.
영광원자력 5,6호기 정문을 들어서면 記念碑(기념비)가 있습니다. 영광 6호기 국내 최초 첫 주기 무고장운전이란 기념비가 있으며 당시 재직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陰刻(음각)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 저도 근무를 했으니 전기팀을 대표하여 제 이름도 새겨져 있습니다. 꿈을 꾸어봅니다. 아니 전 직원들이 같이 꾸어야 할 꿈이 있습니다. 평소에 꿈과 희망을 갖고 있다면 언젠가는 현실이 되고 꿈이 이루어지는 법 이니까요. 이번 달에도 기록을 깨보고 매달 기록을 경신해서 전 직원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비를 세워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이 記念碑는 지난 일 년간 전 직원이 합심하고 단결해서 이뤄낸 창사이래 최초의 기록인 無災害元年(무재해원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사장님부터 신입직원까지 사천육백여명의 이름을 남겨 영원히 기념하고자 합니다.’
* 추신입니다: 목사님 사기에 얹혀 다시 교회를 다니게 된 이야기의 解明(해명)입니다.
목사님 사기에 얹혀 다니고 있는 開拓敎會(개척교회)는 사십 명 정도 들어갈 만한 자그만 지하셋방이고 계단을 사이에 두고 룸 싸롱과 마주 보고 있을 정도로 규모도 작고 환경도 열악합니다. 목사님은 고교시절 단짝이었고 집사람의 사촌오빠이며 신도들은 친구들과 목사님 가족으로 좋게 말씀드리면 가족적인 분위기이고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구역예배 수준입니다.
개척교회 入堂(입당) 전 친구들에게 은밀하게 교회를 개척하면 친구들이 나와줄 수 있겠냐 물어봐서 그러마하고 대답했습니다. 잘 나가던 사업을 정리한 지 오래고 해외선교를 다녀와서 무일푼인 것을 뻔히 아는 친구들은 몇 년 후에나 입당하겠거니 하고 쉽게 대답했으나 친구는 치밀한 준비를 해서 입당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입당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면 深思熟考(심사숙고) 했을 텐데 목사님이 그 이야기는 안 하셨으니 친구들은 교회에 나가고 있으되 私席(사석)에서는 사기에 얹혀 교회에 나온다고 이야기합니다. 안부편지를 받으시는 기독교 신자님들께서는 목사님께 不敬(불경)스럽게 사기 운운했다는 오해가 없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