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는 교육을 많이 시키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연수원 교육뿐 아니라 현장에서는 자연스럽게 OJT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담당설비가 바뀌게 되면 매뉴얼과 절차서를 갖고 다니면서 자기 계발을 하므로 엄청난 양의 교육을 받거나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해당설비를 담당하기 전 몇 년간은 부조장 역할을 수행하게 하니 장비, 공기구, 자재를 챙기는 작업준비부터 정비수행과 작업결과 보고까지 시쳇말로 박박 기어야 담당설비 조장 역할을 할 수 있으니 매뉴얼 한 권 외었다고 설비전문가로 인정받기는 어려운 실정입니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행정요원들의 경우에는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보직이 바뀌면 제일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해당 직무에 대한 업무파악으로 과년도 업무 처리한 내역에 대한 검토가 효율적인 업무파악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모든 업무가 전산화되어 있어 과거보다는 편리해졌다고 할 수 있으므로 과년도 공문 처리한 내역을 일자별로 출력하여 점검해 나가면 업무도 놓치지 않을뿐더러 모범답안은 아닐지라도 유사답안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니 차근차근 공부해 나가면 행정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업무가 모방단계를 거쳐 창조단계에 접어들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예전과 달리 직장인들도 수험생은 아니지만 전공책과 참고서를 들고 다니며 공부해야 하니 고3수험생이 따로 없는 듯합니다. 개인적으로 조금 독특한 Career Path를 갖고 있어 골치를 썩이며 공부해야 하는 곤욕을 치렀지만 입사 후 전공과 관련 없는 업무를 담당하게 되어 상식의 폭을 넓힌 장점은 있습니다.
신입사원시절 품질관리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동료 하숙집 주인 딸의 도움이 많았습니다. 품질관리 개론부터 통계학까지의 전공책을 얻어 요긴하게 사용하였고 소주 한잔 하며 나누었던 이야기로 품질관리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게 되었습니다. 과장이 된 다음에는 교육훈련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술 먹고 노느라 남들 다하는 교직과목을 이수하지 않아 또 한 번의 곤욕을 치렀습니다. 교육개론, 교육심리, 교육평가론 등을 독학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으나 품질관리와는 달리 공학적인 내용이 아닌 새로운 용어와 이론들을 받아들이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안전관리를 담당하게 된 지금, 또다시 난관에 봉착을 하였는데 초임과장 시절만 해도 눈에도 잘 들어오고 머리에도 잘 들어오던 내용들이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눈도 침침해지니 현격한 효율저하 현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어설프게 알고 있던 내용들을 재정립하기도 바쁜데 강도율, 도수율, 천인율 등 공식은 왜 그리도 많고 사고유형, 사고분석기법등 외워야 할 것은 넘쳐나니 뻑뻑한 머릿속에 기름칠이라도 해야 할 지경입니다.
요즘 고3수험생을 데리고 있는 부모들은 말없는 죄인입니다. 아이가 공부한다고 하면 무엇이라도 대령해야 하며 비싼 사교육비를 감당해야 합니다. 저도 고3 학부형으로 죄인 처지라 얼마 전 아이가 공부하는데 덥다고 하여 이동형 에어컨을 구매하였습니다. 며칠을 사용해 본 결과 제품설명서보다 소음이 심한 것 같아 반품 요청을 했더니 전문가 진단결과 이상이 있어야만 반품이 가능하다 하여 전기쟁이지만 현장에서 배웠던 지식을 동원했습니다. 소음측정을 해서 자료를 취득해 놓고 제작사 전문가를 기다렸습니다. 전문가가 와서 제품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더니 이상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여 제가 점검한 내용을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볼 때는 압축기를 피스톤이 아닌 로터리방식으로 채택한 것 같다. 압축기는 정상적인 운전음을 내니 문제가 없고, 배기팬도 운전모드에 따라 소음이 강해지나 유체역학적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기계적으로는 일정음을 내고 있으니 제품에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없는듯하다. 그러나 측정한 소음 수준은 60dB로 상품 스펙인 49dB를 초과한다. 물론 제작사에서는 차음시설 내에서 측정했으니 우리 집에서 측정한 것보다는 낮은 수치가 측정될 수 있으나 소음은 로그 값으로 계산되므로 산술적인 더하기가 아니라는 것은 아실 것이다. 소음측정기는 고정밀기기였으며 측정당시 우리 집 베이스라인 소음값은 30dB였다.’
어설픈 전기쟁이의 설명을 들은 제작사 전문가는 바로 본사와 통화했습니다. ‘반품해야겠습니다. (통화내용이 들리지 않지만 본사 쪽 이야기는 제품에 이상이 없으면 반품치 말라는 이야기 같습니다). 구매하신 분이 이쪽 방면 연구소에 근무하고 계신 것 같은데 무조건 반품해야 합니다. 기계설계나 구조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시고 이미 소음측정까지 다하셨고 반품하겠습니다.’
반품절차가 끝나고 차 한잔하면서 제작사 전문가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어느 연구소에 근무하시는지요?’
‘저는 연구소에 근무하는 것이 아니고 안전관리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안전을 담당하면서 어떻게 기계에 대해 많이 알고 계시는지요?’
‘우리 회사 직원들은 이런 정도는 기본상식이고 아저씨와 마찬가지로 저도 전기쟁이입니다.’
‘전기전공을 하고 안전을 담당하고 계시다면서....?’
‘실은 발전소 정비를 담당하는 한전KPS 라는 회사에 다니는데 정비하려면 여러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전기는 전공이니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고 기계, 진동, 소음은 물론이며 지금 담당하는 업무가 안전이니 안전관리도 알아야 합니다. 저는 기술 수준으로 따지면 하급정도의 기술자이며 우리 회사 직원들은 모두가 전문가 수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