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가슴 아팠던 제주 출장

치열하고 열심히 삶을 살다 가신 사우의 명복을 빌면서...

by 물가에 앉는 마음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아픔을 알지 못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네 살배기 쌍둥이와 일곱 살배기 큰아이 재롱을 더 이상 볼 수 없습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아보자고 맹세했지만 사랑하는 부인의 애절한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또한, 사랑하는 가족들이 가장이 없음으로 인해 겪게 될 경제적, 사회적 고통과 아픔도 알 길 없습니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습니다. 공원묘지 양지바른 곳에 자식을 묻고 왔지만 어머니 가슴속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의 무덤이 생겼습니다.

가슴에 자식을 묻고 돌아가실 때까지 피눈물을 흘리실 노모의 가슴 저미는 고통을 재해자는 알 길 없습니다.

한솥밥을 먹으며 아찔하게 높은 철탑을 같이 타고 다니던 형제와 다름없었던 동료들의 구릿빛 얼굴도 볼 수 없으며 땀 내음도 맡을 수 없으며 형제애도 더 이상 느낄 수 없습니다.

고인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동료들의 비통함을 뒤로한 채 국화꽃 향기와 함께 한줄기 바람이 되어 가볍게 가볍게 근심 없는 세상으로 요단강을 건너갔습니다.


재해가 발생되었던 철탑에 가봤습니다. 재해가 발생했던 날의 날씨와 흡사하게 눈부시도록 화창했습니다. 그날의 참혹함은 이미 지워져 버렸고 유족들이 언제 다녀갔는지 빛바랜 과일 몇 개만이 덩그마니 놓여있어 재해의 기억을 되살려 줄 뿐 꽃도 피었고 나비도 날고 모든 것은 정상이었습니다.

현장을 확인하면서 재해 상황을 그려내는데 도움이 되었고 재해원인도 명확화 하였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날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가요?’

마음속으로 고인을 불러보고 물어봤지만 여전히 대답이 없었습니다.

‘왜 접근한계거리 내에 진입했습니까?’

‘왜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았습니까?’

‘왜 접근한계거리 내에서 상체를 일으켰습니까?’

재해자에게 많은 것을 물었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안전공학 교과서에는 Why에 대해 조사하기보다는 How에 대해 조사하라는 사고조사 방법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물론 사고조사는 How에 대해 묻고 답하고 객관적인 근거를 찾는데 주력했지만 인간이니 Why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은 왜 사랑하는 가족들과 동료들을 남겨두고 바쁘게 갈 수밖에 없었냐고 물었지만 님은 대답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제주사고도 잊히겠지요. 그러나 동료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되길 기원해 봅니다. 우리들은 평상시 안전을 염두에 두고 작업에 임하고 있으며 관리감독자들도 안전을 강조한다지만 사고가 발생되면 당연히 여러 가지 허점들이 발견되고 사전에 ‘이런 조치를 했었더라면’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이번 사고도 마찬가지로

‘TBM을 시행하여 접근한계거리를 유지하자고 지적을 했었더라면...’

‘유해 위험작업지시서를 발행하여 사전에 위험성을 경고했었더라면...’

‘접근한계거리로의 접근방지를 위한 위험경고판을 설치했었더라면...’

‘원격점검용 Tool을 만들어서 사용했었더라면...’

아쉬움이 남습니다.


실수나 착각해도 사고가 발생되지 않도록 interlock, fool-proof장치를 하거나 Fail-safe조치를 취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합니다. 그렇지 못한 경우 ‘... 했었더라면’ 하는 후회를 하지 못하도록 행정적으로 관리적으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선진화된 안전관리시스템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 했었더라면’과 관련된 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만 이러저러한 사유로 생략되어 재해가 발생됩니다. 선진화된 시스템을 갖고 있으되 운영 측면에서는 선진화되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시스템적으로 안전사고가 발생되지 않도록 여러 장치들이 보완되고 안전의식도 높아져 기본적인 원칙들이 지켜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제주사업소에서 시행하는 안전조회에도 참석했습니다. ‘나는 안전보건 11대 기본수칙을 철저히 이행함으로써 내 생명과 가족의 행복을 지키며, 회사의 발전을 위하여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제주사업소 직원들뿐 아니라 전사업소 직원들이 아침마다 다짐하는 말들이 허공 속의 메아리가 아니라 전 직원들 가슴속에 울려 퍼지길 희망해 봅니다.


송전전기원이면서 입사 후 산업안전기사 자격증은 물론 전기분야 전 종목 기사자격증을 취득할 정도로 치열하고 열심히 삶을 살다 가신 사우의 명복을 빌면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