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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곰탱이네 집들이

곰탱이 3대가 모두 모인 셈입니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얼마 전까지 같이 근무했던 이 주임은 영광 1사업소에 근무하다 영광 3에 신설사업장이 생긴다고 하여 발전기를 담당하는 주임 밑에서의 조수생활을 접고 발전기조장이 되기 위해 영광 3시운전사업소를 지원한 직원입니다.

이 주임은 영광 3으로 전입 온 이유만큼이나 적극적인 사고를 갖고 있고 전기쟁이면서도 기계적으로 뛰어난 손재주가 많아 안 될 것 같은 정비작업도 척척해내는 유능한 직원이지만 이주임 별명은 ‘곰탱이’입니다. 업무 몰입도가 뛰어나 일하러 나가 설비에 문제가 생기면 문제가 풀릴 때까지 사무실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붙여진 별명입니다. 이 주임의 사부였던 영광 1사업소 주임이 파견 와서 일하는 모습을 보니 곰탱이란 별명의 유래는 전해 내려온 별명 같았습니다.


영광원자력발전소를 떠날 즈음 곰탱이가 가족들 건강을 위해 황토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아이 방에 들어갔더니 결로현상으로 벽이 썩는 것을 몰라 아버지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자책했다는 말에 이주임에게 일을 너무 많이 시킨 것 같아 제 마음도 아팠습니다.

주위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짓겠다고 하여 한편으로 무모해 보였으나 컴퓨터 그래픽 책을 보면서 설계하고 황토 집을 짓는 장인을 찾아가 자문을 구하는 등 평소 정비작업 하듯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곤 훌륭한 작품이 나올 것으로 기대되었고 곰탱이 이 주임이니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광에서의 5년여 근무를 마치고 본사로 전근 가는 송별식 자리에서 ‘집들이하면 불러라. 다른 사람 집들이는 가지 못해도 이주임 집들이는 필히 참석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간 혹독하게 일을 부려먹은 것에 대한 사죄의 표현이며 곰탱이에게 마지막으로 제가 해줄 수 있는 사랑의 약속입니다.

건축업자를 부르지 않고 집을 짓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겁니다. 속도도 더디고 전문기술도 부족하니 애를 많이 먹었으리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이 갑니다.

2년여에 걸친 대역사가 끝났다는 소문은 들리는데 집들이 초청이 없어 예전의 약속을 잊었구나 하고 약간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심 집들이 초대를 받으면 사용하려고 여름휴가도 가지 않고 아껴놓고 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이 주임에게서 집들이를 하겠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참석을 해주셨으면 고맙겠다고...’ 기쁜 마음으로 영광에 다녀왔습니다. 예전의 반가운 얼굴들도 볼 겸 혼자서 지은 집이 얼마나 훌륭하게 지어졌는지도 확인해야 하지만 오래된 약속이라도 지켜야 하니 필히 다녀와야 할 자리입니다.


초보자가 지은 집치고는 수준급이었습니다. 아니 회사를 그만두고 건축업자로 나서도 될 만한 수준입니다. 전통 한옥이 아닌 개량 한옥으로 높은 천장과 죽부인으로 만든 조명등이 이채롭습니다. 붙박이 책꽂이까지 손수 만들고 페치카도 만들었으니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곰탱이표 황토집이 근사하게 완성되었습니다. 집안 구석구석 세밀하게 마무리한 것을 보니 아이들에게 미안했던 마음을 어느 정도 갚았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집들이에는 120여 명이나 참석을 했습니다. 한수원 전기부식구들과 영광 1,2,3의 알만한 식구들이 모두 참석했습니다. 곰탱이 이주임의 사부였던 원조곰탱이도 왔습니다. 곰탱이에게서 일을 배운 새끼곰탱이인 함대리는 교육으로 불참하고 새끼곰탱이 부인이 참석했으니 곰탱이 3대가 모두 모인 셈입니다. 곰탱이 이 주임 집들이는 밤늦도록 계속되었고 영광파출소에 민원이 들어갈 정도로 왁자지껄한 사업소 잔치였습니다. 저는 멀리서 온 손님이라고 황토집에서 하룻밤 자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예전에 집들이 선물로 양초와 성냥을 사갔는데 요즘은 쓰지 않으니 요즘 유행하고 있는 캔들 벽걸이를 구입하려 했으나 목조주택이라 화재사고가 우려되어 평범한 선물인 벽걸이 시계를 선택했습니다. 시계는 평범하지만 의미는 범상치 않습니다. 시간과 시계는 永遠(영원)을 뜻한다고 합니다.

시간같이 영원토록

회사를 사랑하고

후배를 사랑하고

곰탱이들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영원토록 지속되기를 기원하면서

황토집에서 단잠에 빠져들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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