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3. 멜라민 遺憾(유감)

아! 고달프고 위험한 삶이여

by 물가에 앉는 마음

아이들이 먹는 과자에서 멜라민(melamine)이 검출되었다고 시끄럽던 9월 말이었습니다. 수안보에서 있었던 안전교육을 마치고 귀경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맛나게 자판기 커피를 사 먹었습니다. 교육진행팀은 인원점검하고 강사도착 여부를 확인하고 숙소배정과 식사준비 등으로 오고 가는 길에 커피 한잔 먹는 여유밖에는 없습니다. 교육을 마쳤으니 기분 좋게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겼습니다. '역시 우리 입맛에는 스타벅스보다는 다방커피가 입맛에 딱이야' 하면서...

집에 들어와 저녁뉴스를 보니 휴게소에서 우리가 먹은 커피에도 멜라민이 포함된 커피크림이 들어간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특히 고속도로 자판기 대부분은 중국산 커피프림을 쓴다니 저는 오늘 멜라민커피를 사 먹은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멜라민은 그릇이나 수저 등 합성수지제품을 만드는 공업용 화학물질인데 그것을 맛있다고 먹었으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날아다니는 놈 중에 비행기 빼고 다 먹고, 물속에 있는 놈은 잠수함 빼고 다 먹고, 땅 위에 있는 놈은 책, 걸상 빼고 다 먹는다 하니 멜라민도 먹는 음식 중의 하나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입에는 맞는 것이 아닌데 그것을 돈 내고 사 먹을 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벌건 대낮에 돈 내고 빰맞고 욕먹고 희롱당한 격이니 미국산 소고기보다 더욱 화나는 일입니다.


미국산 소고기파동이 전국을 강타하고 촛불집회로 인해 신정부가 식물인간처럼 변해가는 시점에서 뉴스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리나라가 많이 발전했구나. 예전 꿀꿀이죽을 먹고 양조장의 술지게미를 먹으며 힘들게 보릿고개를 넘기던 시절을 지나 안전한 먹거리를 찾는 시기가 되었으니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가까워졌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런 생각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머슬로의 욕구단계론을 보면 첫 번째 단계가 생리적 욕구로 인간은 숨을 쉬고 허기를 채우는데 주력합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숨을 쉬어야 하고 우선 허기를 채워야 하니 음식의 질을 따지기 이전 동물적인 삶을 영위하는데 주력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입니다.

두 번째 단계가 안전욕구로 첫 번째 단계인 생리적 욕구가 충분히 충족되고 나면 살고 있는 집도 안전해야 하고 먹는 음식도 안전해야 한다는 안전욕구가 자연스럽게 생긴다는 것입니다. 양보다는 질을 찾게 되고 인간다운 삶을 갈망하는 것이 두 번째 단계입니다.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해결되었으니 안전한 삶을 누리기 위한 욕구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 웃어른들께 아침저녁으로 드리는 문안인사가 ‘밤새 안녕하셨습니까?’였고 동네 어르신들과 길거리에서 마주쳤을 때는 ‘진지 드셨습니까?’였습니다. 먹거리도 풍성해지고 의료기술도 발달되어 밤새안녕, 식사해결 같은 것은 이미 걱정거리가 아니니 ‘건강해 보이십니다.’ ‘20대 청춘 같습니다.’라는 인사말이 보편화되었습니다.

요즘은 TV 프로그램마다 전국의 유명한 먹거리집이 소개가 되고 전국을 유람하며 식도락을 즐기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었다는 증거이며 자연스러운 사회적 현상이지만 질적 측면에서 음식문화의 단편만 볼 경우에는 소고기와 멜라민 파동으로 인해 중진국 아니면 후진국으로 후퇴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아침에는 화학약품으로 처리된 찐쌀로 만든 김밥을 먹었고 입가심으로는 멜라민이 함유된 커피와 과자를 먹었으며, 점심에는 광우병 위험이 있는 내장탕을 먹었고 저녁에는 친구와 약속이 있어 멜라카이트 그린이 함유된 생선회를 먹었습니다.

아! 고달프고 위험한 삶이여

언제나 식탁의 안전이 확보되어 머슬로 욕구단계론의 3번째인 사회적 욕구의 단계에서 살게 될 것인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