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손으로 와이퍼를 없애는 것’
얼마 전 신문기사를 읽었습니다. 와이퍼 생산 세계 5위 ‘캐프’의 고병헌 회장 인터뷰기사인데, 고 회장님의 기술개발 최종목표는 ‘내손으로 와이퍼를 없애는 것’ 이랍니다. 언젠가 와이퍼가 필요 없는 차가 등장할 테니 우리가 개발하지 않으면 우리 회사는 앉아서 망할 것이니 와이퍼가 필요 없는 자동차를 우리가 개발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와이퍼를 만드는 업계에서 세계 제일은 아마도 ‘보쉬’ 일 것입니다. 웬만한 업체의 회장님들은 세계 제일의 기업을 벤치마킹하여 따라잡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니 ‘캐프’도 ‘보쉬’의 기술을 따라잡고 세계 제일의 와이퍼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 정상일 텐데 발상의 전환이 놀랍습니다. 고 회장님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캐프에서 근무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몰락한 김우중 회장님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캐치프레이즈에 감동된 적이 있어 회사를 옮기고 싶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대우 김 회장님 말씀도 충격을 주었던 한마디였는데 고 회장님 말씀이 무척이나 가슴에 와닿습니다.
마케팅(사업이나 장사를 한다고 해야 이해가 빠를 것 같습니다만 조금 어감이 다른 것 같아 마케팅이라고 썼습니다.)을 하기 전 상권과 경쟁구도를 분석해야 하고, 경쟁사가 누가 될 것인가? 저가전략으로 또는 고가전략으로 가야 하는지 분석해야 합니다.
스타벅스를 마시는 된장녀이야기가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누가 4천 원짜리 된장찌개를 먹고 5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겠냐고 했지만 스타벅스는 시장분석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두커피를 예전부터 팔았던 던킨도넛은 커피에서만큼은 실패하고 뒤늦게 뛰어든 스타벅스는 성공했습니다. 대부분은 던킨도넛이 스낵과 커피를 파는 시너지 효과로 인해 던킨의 성공을 점쳤지만 예상을 뒤엎고 커피만 파는 스타벅스가 성공했습니다.
한복 입은 마담이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커피 둘, 프림 둘을 넣어 진하게 제조한 봉천동커피를 팔던 기존의 별다방, 꽃다방 등 재래식 다방 또한 몰락했는데 태운 누룽지로 숭늉을 끓인 듯한 스타벅스의 밍밍한 커피 맛이 이기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입니다.
스타벅스의 성공요인은 맛과 서비스를 표준화하고 커피를 판 것이 아니라 커피문화를 판 것이라 하는데 이야기가 빗나가는 것 같으니 기회가 있으면 다음에 말씀드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또 다른 비유를 해보겠습니다. 코카콜라의 잠재적인 경쟁자는 누구입니까? 콜라를 파는 것이니 당연히 펩시콜라가 경쟁자 일 것이나 콜라만을 놓고 따지면 펩시이나 잠재적인 경쟁상대는 생수회사입니다. 콜라가 비만을 유발하고 몸속의 칼슘을 빼앗아간다고 하니 몸에도 좋고 갈증을 푸는 대체재는 생수이므로 에비앙 등 세계유수의 생수회사가 코카콜라의 잠재적인 경쟁자입니다. 콜라만으로 펩시를 이기려 했던 코카콜라가 요즘은 펩시에게 밀려 2위 업체가 되었답니다.
같은 음료시장에서의 경쟁관계분석이니 쉬울 수 있습니다. 대한항공의 잠재적인 경쟁자는 누구입니까? 서비스를 강화하여 고가정책을 쓰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저가정책을 쓰고 있어 가격경쟁력이 있는 제주항공, 한성항공도 위협적인 경쟁 상대이지만 좀 더 앞을 내다보면 인터넷, 화상전화 업체가 잠재적인 경쟁상대입니다. 동종의 항공사들은 일정한 고객그룹을 놓고 유치경쟁을 벌이는 관계이므로 한편으로는 적대관계이나 전체적인 항공고객을 늘리는 면에서는 협조적인 관계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화상전화 업체는 비즈니스출장 자체를 없애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가장 적대적인 경쟁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정비시장을 놓고 볼 때 우리 회사와 민간업체가 정비에 참여하고 있으니 당연히 경쟁관계가 형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기간적으로는 당연히 민간업체와 경쟁해야 합니다. 민간정비업체에 비해 가격경쟁력에서 뒤지니 우리 회사는 기술적 차별성을 갖고 품질우위정책으로 명품정비시장에 Positioning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후의 경쟁구도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합니다.
선도회사의 경우에는 후발업체와 경쟁해야 하지만 한발 더 멀리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소형전동기에 많이 사용되는 볼베어링 수명이 현재 십만 시간에서 백만 시간이 될 경우 전동기정비물량은 대폭 감소할 것이니 우리의 경쟁업체는 정비업체가 아니고 베어링제조업체가 될 것입니다. 물론 베어링제조업체의 기술개발속도를 능가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캐프’의 최종목표가 와이퍼를 없애는 것처럼 정비물량이 없어지는 극한 상황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죠.
선도회사의 고민은 후발업체가 끊임없이 따라붙는 것이지만 유리한 점은 멀리 내다보고 미래를 창출하는 여유를 갖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나라가 매년 늘어나는 대일무역적자를 줄이지 못하고 있으며 기술력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일본의 뒤통수만 보고 달려가기 때문이라면 일본의 뒤통수를 경쟁상대로 삼을 것이 아니라 앞꼭지를 경쟁상대화 하는 것이 맞을 듯합니다.
예전에 기술처 근무를 했었다고 기술개발 정책에 대한 훈수를 둔다거나 하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저보다 훌륭한 분들이 많은 업적을 만들고 계시니 훈수할 자격도 없고 저는 오직 안전 분야만 고민하고 있습니다. 안전 분야에서도 사후약방문식의 처방을 내놓기보다는 한 발 앞선 예방대책을 개발하여 사업소에 보급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自問(자문)을 해봅니다.
안전분야에서의 경쟁상대는 누구이며 경쟁상대는 외부 업체일까? 아니면 우리들 자신일까?
‘캐프’ 고 회장님 덕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