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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이심전심

전통 없는 조직에서는 이심전심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마음이 잘 맞을 때 ‘눈빛으로 말한다.’,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일할 때도 마찬가지로 조장이 하나하나 지시하지 않아도 조원들이 다음 스텝을 척척 진행해 나갈 때 호흡이 잘 맞는다고 합니다. 무언의 대화는 고도의 숙련과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발전기로터 무게가 158톤인데 주어진 절차를 무시하는 사람이 있거나 동료 간 신뢰가 없다면 로터하부에서 일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345Kv 변압기 위에서 작업한다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


영광원자력발전소 근무할 때, 우리 팀은 팀워크가 좋다고 했습니다. 타 팀에서 하는 이야기가 ‘놀 때도 전기팀은 못해보겠다.’ 합니다. 계약직원과 협력직원들까지 눈빛은 빛나고 열심히 하는 모습은 타 부서 정식직원들 보다도 낫다고 합니다. 일할 때도 즐겁고 질서 정연하고 놀 때도 너무 열심히 논다고 합니다. 이는 대다수 직원들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통하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남들 놀 때는 술 먹고, 술 먹으려 하면 공 차는 직원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심전심’은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이야기되고 양보의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독불장군에게는 이심전심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물론 모두가 Yes를 할 때 혼자서 No를 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합니다만 이것은 명확히 틀린 것을 놓고 이야기할 때 또는 분명한 Fact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회사생활 대부분(업무가 아니고 생활입니다)은 명확히 틀린 경우 또는 명확히 맞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이 합의와 동의 과정을 거칩니다. 거수하여 다수결로 정하는 경우도 있고 사회규범에 따라 또는 팀의 전통에 따라 묵시적 합의와 동의를 거칩니다.


제가 서빙고에 근무할 때 그곳 전통은 기간병이던 방위던 신참은 주방 일을 했습니다. 그때는 간첩이 잡히지 않을 때라 고문할 일도 보초 설 일도 별로 없었으므로 주방 일까지 없었으면 지루한 기간이 되었을 테고 덕분에 칼 쓰는 법도 배우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본사 근무할 때는 부서원끼리 합의하여 출장을 다녀오면 점심 사는 것으로 규율을 만들었고 전통이 되었습니다. 발전소에 내려와서는 집에 애경사가 있을 때 떡 해오는 것이 상례화 되어있던데 좋은 전통이라고 생각됩니다. 해오는 사람도 큰 부담 되지 않고 먹는 사람도 다음에 해오면 되는 것이니까요. ‘이심전심’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옆길로 샌 것 같지만 옆길로 샌 것은 아니고 모든 것이 연관성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전통 없는 조직에서는 이심전심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서로가 생판 모르는 신설조직이거나 노가다들이 모인 임시조직일 테니 이런 조직에서는 ‘이심전심’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욕 해가며 악 쓰면서 일해야 사고도 없고 팀워크를 맞춰나갈 수 있습니다.

양보와 희생이 없는 조직에서의 생활은 매우 피곤하고 ‘모래알조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참은 좋은 것만 취하고 편한 일만 하려 하고(당연히 나쁜 것은 신참 몫이고 어렵고 더러운 일만 돌아오겠죠.), 신참은 나는 모르니까 하고 뒷짐 지고 신세대니까 땡 하면 퇴근합니다. (당연히 고참은 늦게까지 남아 일해야 되겠지요.)

조직력이 이 정도면 누군가는 메스를 들이대야 합니다. 전부가 공멸의 길로 갈 수는 없으니까요. 이때 부서 내에서 자정능력이 없거나 관리자가 메스를 들이댈 자신이 없다면 문제 범위가 더욱 확대됩니다. 능력 없는 관리자를 교체함과 동시에 문제의 핵심이 되는 반대그룹의 리더도 적출해야 하는 작업이 착수되니까요.


저한테 소주 한잔 하자고 하는 분은 새벽 2-3시까지 제 넋두리를 들어줄 각오를 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고, 제가 가는 술집도 밤새도록 영업하는 주점입니다. 술집주인을 포함한 3명 모두 이심전심으로 마음이 맞는 것입니다.

지렁이 만지기를 싫어하는 제가 낚시 가자고 할 때 상대편이 OK 하는 것은 떡밥낚시가 잘되는 곳인지 알고 오는 것이니 서로가 이심전심입니다. 보신탕 먹으러 가자고 저에게 의향을 물어보시는 분은 식당에 가면 삼계탕도 있으니 먹으러 가자는 소리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으니 ‘그 식당에 닭도 합니까?’하고 물어보는 것은 이심전심이 아닙니다. 서로가 양보와 희생하지 않고 자기 실속과 손익계산만 따진다면 각박하고 재미없습니다. 아니 같이 어울리지 못하겠지요.


다른 사람은 2만 원짜리 보신탕을 먹고 나는 1만 원짜리 삼계탕을 먹으나 소주는 내가 많이 먹으니 따지고 보면 똑같이 돈을 내는 것이 맞습니다. 또 삼계탕 먹고 몸에 좋지도 않은 소주를 적게 먹으면 어떻습니까. 술 많이 먹은 사람은 다음날 속이 부대껴 고생할 테고 나는 속이 편안하니 돈은 똑같이 냈지만 술 적게 먹은 사람이 이익이지요. 계산법이 틀렸나요?

넋두리를 들어주느라 새벽 2-3시까지 고생했지만 다음에 내가 미치도록 밤새워가며 술 먹고 싶을 때를 위한 보험이라고 생각하면 손해 보는 일만은 아닙니다. 미치도록 밤새워 술 먹고 싶을 때 나를 불러내면 된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익을 본 술자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심전심’은 남을 먼저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담당 설비가 아닌데 밤에 불려 들어와 문제를 해결해 준 사람은 담당자가 피치 못하게 들어오지 못할 사유가 있겠지 하고 이해해 줘야 합니다. 설비담당자는 문제를 해결해 준 동료에게 고마워하고 나도 반대 입장이 되었을 때는 원수(?)를 갚아야지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머지 제삼자들도 두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둘로 인해 지난밤 편 한잠을 잘 수 있었구나 하는 감사의 마음도 가져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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