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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Apr 02. 2024

18. 점쟁이

미아리에 돗자리 깔고

 미래를 내다본다는 것은 神(신)만이 가능한 領域(영역)이며 神通(신통)한 능력이니 나약한 인간들은 미래를 알기 위해 점쟁이를 찾아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미신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으므로 점쟁이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는 당사자 간의 문제이겠지만 占(점)을 쳐서 희망적인 미래가 보인다면 열심히 살아갈 테니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합니다.

 男兒選好思想(남아선호사상)이 팽배했던 아주 오래전에 記事化(기사화)되었던 실화입니다. 서울 청운동에 태어날 아기의 性別을 기가 막히게 잘 맞춘다는 道士가 있었습니다. 손님이 찾아오면 사주와 관상을 보고 아들, 딸을 이야기해 주는데 면담카드에는 전부 여자아이로 기입해 놓았다고 합니다. 이 점쟁이는 남자아이를 출산한 부모들의 입소문으로 인해 많은 돈을 벌었는데, 남자아이를 출산한다고 했으나 여자아이를 출산하여 항의하러 온 손님들은 점쟁이가 내놓은 면담카드 앞에 반박도 못하고 고개만 갸웃거리면서 되돌아갔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요즘도 선거철, 입시철만 되면 용하다는 점집에는 번호표를 받고도 여러 날을 기다려야 할 정도이니 인간의 호기심과 앞날을 미리 알고자 하는 조바심이 있는 한 점집은 망하기 어려운 업종이라 판단됩니다.


 대학 떨어지고 재수할 때 공부하기 싫어 관상책을 열공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관상 보는 것에 심취했으면 주역도 공부하여 사주나 관상을 보면서 미아리에 돗자리 깔고 人生航路(인생항로)를 바꿨을 수도 있으나 그 당시 저의 알량한 한자실력으로는 주역책을 보기에 力不足이었기 때문에 중도 포기 했습니다.

 관상은 ‘수많은 통계에 따라 정립된 과학’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나 같은 돌팔이도 법령이 깊게 파이고... 이마의 천문이 뚜렷하니 선배나 부모의 덕을 볼 상이고... 이 정도만 읊어대도 관상을 잘 본다고 이야기하니 꽤나 신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만 내막을 알고 보면 돌팔이 관상쟁이의 어설픈 사기행각이었습니다.  

 주 고객은 단골술집의 웨이트리스들이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웨이트리스 대부분은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으므로, 어릴 적에는 고생할 팔자이지만 말년에 필 것이라고 이야기하면 십중팔구는 맞는다고 반응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성격이 원만하여 친구가 많다던지 하는 것은 평소에 봐왔던 아가씨 태도와 성격에 의한 것이니 누구라도 맞출 수 있는 사항이었습니다. 웨이트리스들 손을 떡주무르 듯하며 봐주는 손금도 생명선이 기니 장수할 것이고 재물운도 있다 하면 싫다 할 아가씨가 없으니 단골술집 아가씨들에게는 관상 잘 보는 손님대접을 받아 복채대신 공짜안주 여럿을 얻어먹은 적이 있는데 사이비 점쟁이의 詐術(사술)이 통하던 어수룩한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요즘은 다른 측면의 점쟁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신내림도 받지 않았고 사주역학을 공부한 점쟁이는 아니며 슈퍼컴퓨터 같은 첨단장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과거 사고사례를 분석한 자료를 기초로 점쟁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현장경력이 웬만큼 있으시고 분기별 또는 매년 발행되는 심사분석보고서를 보신 분들은 알고 계신 사항이겠지만 475명에 달하는 사고사례를 분석한 결과로 이야기하니 신뢰성은 높은 편입니다.

 ‘3월부터는 사고가 급격히 증가하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요일별로는 주초와 주말에 사고가 많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오버홀에 투입되는 일용직원과 하도급에 투입되는 협력직원은 산재위험성이 높은 그룹이니 철저히 관리해야 합니다. 말이 협력직원이지 공사수주 후 급조된 인력이므로 오버홀 인부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점쟁이가 주문 외우듯 반복되는 내용이지만 우리 회사 산재패턴은 25년간 동일했기에 신뢰도가 높은 편입니다. 예전에 잘 나가던 부채도사나 요즘 인기 상한가를 누리고 있는 무릎팍도사는 아니지만 오늘도 주문을 외우고 있습니다. ‘10시부터 12시까지 14시부터 16시까지는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시간이니 관리감독자는 안전순찰을 강화하고 작업자는 조심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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