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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May 06. 2024

-6. 初心(초심)

 이곳은 전라남도 영광, 전국 유일의 원자력발전소 시운전사업장입니다. 6호기는 아직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지만 지난 9월 16일 최초 계통병입에 성공하여 오랜만에 한시름 덜고 여유를 찾아 글 쓰는 호사를 즐기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드리려 하는 것은 계통병입직후 직원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했던 신입사원 시절의 마음가짐, 즉 초심에 대해서입니다.


 몇 번의 미역국을 먹고 재수 후 후기대학에 겨우 입학할 당시의 초심은 ‘어렵게 합격했으니 열심히 공부해 장학금 타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하고는 애당초 번지수가 틀렸습니다. 재수생시절 충분히 놀지 못했으니 조금만 더 놀자 하는 것이 입학 당시의 초심이었습니다.

 신입생의 잘못된 초심은 매우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강의실보다 술집으로 출근하는 날이 많았고, 학교 친구들보다 종로통 친구들이 더 많았습니다. 3년 동안 지속된 잘못된 초심은 졸업반 1년 동안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만들었습니다. 달라진 모습에 학교 친구들은 뒤에서 수군대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남자에게 또 다른 인생의 전환점은 군생활이 아닐까 합니다. 입대해서 도를 닦아야겠다는 초심도 없었으며 훈련병생활을 마치고 자대생활을 시작할 때 중대장에게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했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훈련소에서 충실히 배웠던 위장의 기본수칙인 엄폐와 은폐를 반복하며 틈 날 때마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쉬었습니다.

 돈 내고 배우는 학생이나 군인들의 초심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직장인의 초심은 대동소이할 것입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상사에게 인정받고 동기들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유능한 직원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을 것입니다.


 초심과는 무관하게 해당분야의 전문가가 되고자 했던 차장초임시절, 전공과 무관한 교육훈련업무를 담당하게 되어 교육개론, 교육심리학 등을 독학해 열정과 뚝심으로 업무를 추진했던 것 같습니다.

 입사 18년이 지나 제 자신을 되돌아봅니다. 직원들에게 영어공부해라, 자격증취득하라고 독려하면서 정작 자신은 어떤지?

 시간 나면 가족을 만나러 서울에 올라가던지, 머리를 식힌다는 구실로 낚시터로 달려가는 나태한 생활을 반복하는 것은 아닌지?

 정비할 때 장인정신을 갖고 자기 일처럼 열과 성을 다해야 한다고 다그치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대충대충 처리하고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은 아닌지?

 부임 첫날 일등부서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으면서도 웬만큼 의도한 것같이 운영되니 목표가 달성된 듯 착각하여 부서운영과 관리에 소홀해진 것은 아닌지?


 수많은 의문부호들이 어른대며 신입사원, 차장, 부장 시절의 초심을 아직도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드린 것은 제 자화상입니다. 여러분의 초심은 어떤 것이고 자신들이 그려 놓은 자화상은 과연 어떤 모습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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