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가에 앉는 마음 Apr 03. 2024

19. 오래된 친구들

벌써 35년이 흘렀다.

 까까머리 때 만난 친구들이 반백이 되었으니 벌써 35년이 흘렀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너무 즐거워 입대도 졸업 후로 미루고 결혼도 늦게 하여 삐약삐약을 갓 넘긴 중병아리 정도의 자녀를 갖고 있는 친구도 있다.

 제일 활동적이라 싸움도 많이 했고, 사나이는 해병대를 나와야 한다며 해병대 장교가 되었던 친구는 꿈결에 하나님을 영접하여 잘 나가던 사업을 접고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으니 싸움꾼이고 바람쟁이로만 여겼던 친구들의 생각을 뒤바꿔 놓았다. 학창 시절 유난히 짤짤이를 좋아하던 친구는 성실히 일해 차곡차곡 모은 재산을 노름으로 탕진 후 가정파탄을 간신히 면하여 숨죽이고 살고 있다. 전문대학을 졸업하여 제일 처졌다고 위축되었던 친구는 치열한 직장생활 덕에 중소기업 이사를 하고 있고, 드럼과 기타와 음악에 심취해 청계천 불법음반시장을 기웃거리며 공부는 뒷전이었던 친구는 뒤늦게 열공하여 박사가 되어 강단에 서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나는 엉덩이 무겁게 술 먹으며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엉뚱한 구석이 있었다. 내 졸업식장에는 술집 웨이트리스들이 축하꽃다발을 들고 왔다. 이 친구들 옷차림은 조금 달랐다. 어머님의 의심에 찬 눈초리를 받았으며 엄숙했던 졸업식장 분위기를 불빛세계 분위기로 만들어 놓았던 나는 지극히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는 친구덕에 오래된 친구들이 자주 모이게 되었다. 개척교회를 열기 전, 내가 교회를 세우게 되면 친구들이 자리를 채워줄 것이냐는 물음에 당연히 그래야지하고 한 목소리를 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목사님의 사기(?)에 얹힌 것이 분명하다. 목사님은 이미 개척교회를 오픈할 준비를 하고 있었면서도 친구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아 우리들은 그렇게 빨리 교회로 불려 갈지 모르고 있었다. 아무튼 목사님 전도에 의한 것이든 사기에 얹힌 것이든 일주일에 한 번씩 친구도 만날 겸 교회를 나가고 있는데 목사님 前歷(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우리들은 아직까지도 하나님의 부름이나 전도보다는 사기 내지는 현란한 말재주에 현혹되었다고 의심하고 있다.

 월급 많이 준다는 유혹에 빠져 우리 회사에 입사하여 25년이 되었으니 회사 또한 오래된 친구나 다름이 없다. 입사초기에는 젊은 혈기에 상사의 꾸중이 있을 때마다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는지 알아’ 하는 객기와 타업체 유혹으로 고민도 했었지만 이제는 어느 곳보다도 편안한 직장이다. 내 삶을 책임져주는 터전이자 오랜 친구가 되어 버린 회사는  말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알아서 해주었으니 말이다.


 오래된 친구들과는 서로가 집안사정을 잘 알고 있으니 감출 것도 없고 감추려 하지 않아서 좋다. 설령 속이는 경우가 있다 해도 알고 넘어갈 아량도 있으니 알고도 속아주는 것이 오래된 친구들의 푸근함이다. 정신적으로 힘들 때에는 카운슬러 역할을 해주며 어떤 경우에는 속내를 보여주며 이야기하니 형제보다도 가까울 수 있다. 시골마을 흙담집에 저녁때가 되면 평화롭게 연기가 피어오르는 풍경을 좋아하여 넋 놓고 쳐다보곤 했는데 오래된 친구와의 만남도 그와 비슷하게 평화롭고 마음의 안정을 주는 느낌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로, 직장 동료들이란 표현보다는 친구라는 표현이 더 적합한 표현일 듯하다 직급은 다르고 나이도 다르지만 땀 흘리고 밤을 새우며 나누었던 이야기의 깊이는 결코 오래된 친구사이의 이야기보다 깊을 것 같다. 현장경험 없는 내게 현장업무 컨트롤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주었던 영광의 신 주임과 이 주임은 상하 간의 사이를 떠난 친구관계이며 사택 앞 포장마차에서 밤새워 술 먹으면서 서로의 고민거리를 이야기했던 정 대리와 김 대리도 나이는 어리지만 친구임에 분명하다.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집사람과의 관계인 것 같다. 보통의 부부들이 오빠관계에서 연인이 되고 사랑이 싹터 부부가 되며 같이 살아가는 친구가 된다. 오랜 친구인 목사님 사촌동생이며, 오빠로 만나 연인이 되었고 한 이불을 쓰게 되었다. 만난 지 30년, 결혼 20년이 되어가는 집사람과도 오래된 친구라 할 수 있는데 신혼초반의 사랑스럽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지속되지 않고 날이 갈수록 專制主義者(전제주의자)가 되어가는 집사람과의 전쟁은 언제쯤 끝이 날까. 아니 이러다가 남은 평생을 억압과 속박의 굴레에서 살다가 끝나게 되는 것은 아닐지 하는 걱정이 드는 것은 왜일까.    

작가의 이전글 18. 점쟁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