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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Apr 01. 2024

17.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될까?

술잔을 기울이는 마음들은 십수 년 전의 좋았던 기억

 울진원자력발전소 시운전을 하면서 만난 식구들은 대부분 신입직원이었는데 이제는 시간이 흘러 입사한 지 10년이 넘는 중견사원들이 되었습니다. 신입사원 때 만나 아직도 그들이 어리다고 착각하여 요즘도 만나면 ‘OO야'하는 무례를 범하지만 아직도 연락하면서 사는 그네들과의 감정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습니다. 다시 만난 그들과는 아직도 ‘OO야 밥 먹었냐?' 물어보고 그들보다 후배인 대리에게는 '‘OO대리 식사했어요?' 하니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나 첫 만남의 기억은 오래가는 일이니 오해 없기 바랍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날 많은 문상객 중 여럿은 내가 어렸을 때 연희옥에서 약주를 거나하게 드시고 음식 시중드는 나에게 과자 사 먹으라고 용돈을 주셨던 분들입니다.(우리 집은 항상 술손님이 넘쳐 술집 같다고 손님들이 붙여주신 별호가 연희옥입니다) 그분들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면 만나고 헤어졌을 때의 감정과 기억을 바탕으로 한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만난 지 아주 오래되시는 분은 ‘국장님께서 주신 낚싯대를 아직도 쓰고 있는데...’

만난 지 오래되시는 분은 ‘위원님과 재작년 만났을 때는 건강하셨는데...’

요즘도 만나시는 분들은 ‘林公, 먼저 가면 어떻게 해 날 풀리면 낚시 가자고 해놓고...’

전부 백발로 변하신 분들인데 교분을 쌓고 같이 일했던 당시의 기억으로 호칭을 쓰면서 옛일을 더듬으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될지 궁금합니다. 누구와는 친하지 않았으니 길에서 마주칠까 사주경계 대상이 될 수도 있는데, 혹시 만나게 될까 걱정되어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하면 바쁜 선약이 있어서 곤란하다는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누구는 다시 만나게 되면 예전같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술잔을 기울이게 될 것이며 다시 만나 술잔을 기울일 때의 감정은 예전에 쌓아놓은 자신의 내공 깊이에 따라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십수 년 후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때, 서로의 머리에 서리가 내려 백발이 성성하고 굵은 주름이 많이 생겨 외모는 많이 변했어도 만나서 술잔을 기울이는 마음들은 십수 년 전의 좋았던 기억일 테고 추억을 안주삼아 밤을 새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부장님은 왜 그때 저만 미워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남들만큼 열심히 일 했는데’

‘너는 막걸리 안삿잖아.’

‘저희 큰 놈이 이번에 대학 들어갑니다.’

‘그래 세월 많이 흘렀다. 돌잔치 때 참석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우리 집은 광주로 이사 갔습니다. 49평이라 널찍합니다.’

‘오늘 만난 김에 집들이 겸 2차 하자. 집들이 비용은 아직도 1인당 만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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