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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Apr 04. 2024

20. 옛사랑의 추억

옛사랑의 추억을 아직도 사랑합니다.

 ‘옛사랑의 추억’, 오늘 제목은 너무 멜랑꼴리 합니까? 사람마다 사랑에 대한 추억이 다르나 일반적으로 ‘옛사랑’하면 학창 시절 첫사랑이 연상됩니다. 저라고 가슴 두근거리는 첫사랑이 없었겠냐만 초등학교 때 일이라 잊은 지 오래고 집사람 눈치 보며 말씀드리는 것은 아니고 결혼 전까지 여자친구는 있으되 사랑은 없었습니다. 술집에 앉아서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마시는 것을 좋아하여 생겼던 여자친구들이 오래 붙어있지 않은 까닭입니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를 사랑해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술과 친구에 미쳐 살아 종로통에 오가는 모든 사람들이 친구였습니다. 


 쓰던 물건에 대한 애착이 강합니다. 다니던 술집에 대한 애착도 강합니다. 마시는 술도, 먹는 음식, 친구도... 이런 저를 두고 아내가 잔소리합니다. 다른 음식점도 가보자. 어떻게 색이 바랜 옷들을 아직까지 갖고 있냐. 같은 옷을 두벌씩이나 사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는 등 핀잔을 많이 듣지만 오래된 습관이고 고집이기도 합니다.

 술집도 마음이 푸근하고 편한 곳이 정해지면 그곳에만 갑니다. 공부 안 하던 학창 시절, 무교동 단골술집에는 제 지정석이 있었습니다. 다른 손님이 제 자리에 앉아있어도 제가 가면 웨이터가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여 자리를 내 줄정도였습니다. 옷도 마찬가지로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같은 색 두벌을 사고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할 때까지 색이 바래도 버리질 못합니다. 술도 30여 년을 한결같이 진로소주를 마시고, 아내와 장을 보러 가서 아이들 과자 살 때는 맛동산과 새우깡을 사서 아이들까지 불만의 목소리를 냅니다. 요즘 아이들은 고소한 맛동산과 바삭한 새우깡의 맛을 왜 모르는지?


 어쩌면 저의 이러한 행동들은 ‘옛사랑의 추억’인지 ‘옛 추억에 대한 사랑’인지 모르겠으나 지켜보는 아내는 집착증이 아니냐고 의심할 수 있습니다. 정신감정을 받아보지 않았으니 실제로 집착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울진에 근무할 때 기술은 없지만 패기로 일했던 95, 96 입사 신입사원들은 이제 중견직원들이 되었고 회사를 이끌고 나갈 핵심기술자들이 되었으며 애기아빠가 되었습니다. 같이 근무할 때 하나라도 배우려고 중요한 정비작업이 있다면 전부 다 몰려나와 고참들이 일하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훔쳐보던 그들을 사랑합니다.

 매끌매끌한 수질을 자랑하는 덕구온천과 세련되지 않고 투박한 시골의 맛을 간직한 옹심이 칼국수, 항상 친절했던 강릉횟집 처녀사장님 모두 옛사랑의 기억이자 추억입니다.

 본사로 전근 와서도 하계휴가를 울진으로 가서 옛사랑의 추억을 더듬느라 덕구온천에서 목욕하고, 옹심이칼국수로 점심 먹고, 강릉횟집에서 저녁을 먹었으며 아직도 울진이란 이야기가 나오면 귀가 솔깃해집니다. 

 영광에서의 옛 추억도 사랑합니다. 우리 팀은 유별나다고 소문났었죠. 일할 때는 협력업체직원이나 계약직원의 눈에서도 광채가 나오고 규율이 해병대보다 더하다고 주위에서 무척이나 부러워했습니다. 물론 놀 때는 광채가 아닌 광기가 나오니 유별나기는 했으나 일 잘하고 잘 노는 직원들과는 형제 같았고 한 가족이었습니다.

 일을 무서워하지 않아 급한 일이면 2-3일 밤을 새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어울려 다닐 때는 북어 한 마리 놓고 먹는 술도 달게 마실 줄 아는 오래된 친구 같고 피를 나눈 가족들이나 다름없었던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0년이나 지난 울진과 영광에서 있었던 옛사랑의 추억을 아직도 사랑합니다. 안전재난관리팀을 떠나게 된 다음에도 전사업소 선, 후배님들께 안부편지도 보냈고 안전교육 끝난 후 전사업소 안전관리자들과 대천에 있는 포장마차를 떠들썩하게 만든 추억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쯤 되면 나이 많이 들었다는 이야기인가요? 앞으로의 일을 사랑해야 하는데 과거의 옛사랑을 추억을 더듬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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