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암 헹케著/ 제롬 메이에르 비슈畵, 함께읽는책刊
노자의 생애와 사상을 글과 그림으로 간단하게 소개한 책이다. 마지막에 소개된 김경수교수의 해제가 노자에 대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해제/김경수: 자연과 힘을 믿은 사상가 노자를 말하다.
노자의 생애와 행적은 불분명하나 공자와 동시대인 춘추시대 말기(기원전 5세기) 인물로 보고 있습니다. 주나라가 쇠약해지고 주나라가 봉한 제후국들이 독립을 선언하며 많은 국가들이 생겨나 이를 춘추전국시대라 부릅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노자를 비롯한 많은 사상가들이 배출되었습니다. 유가를 대표하는 공자, 맹자, 순자, 도가를 대표하는 노자, 장자, 법에 의한 통치를 주장한 한비자, 겸애를 강조한 묵자 등 수많은 사상가 중에서 유가와 도가는 대표적인 사상으로 손꼽힙니다. 유가와 도가는 중국, 한국, 일본에서 매우 중요한 사상이었으며 유가의 시조는 공자, 도가의 시조는 노자입니다.
주나라는 禮(예)를 국가의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부모님께 순종하고 어른을 공경해야 했으며 예의와 법도에 맞춰야 했습니다. 장례, 제사도 엄격하고 까다로웠으며 예가 엄격하면 형식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공자는 형식적인 禮를 비판하고 仁(인)을 강조했는데 仁은 ‘타인을 사랑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공자는 禮도 중시했지만 仁을 중시한 반면 노자는 禮를 비판했습니다. 禮란 내면의 본심과는 관계없는 형식에 불과하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어른이 우리에게 부당한 행위를 하면 화가 나지만 당시 사회에서는 말대꾸하거나 항의할 수 없었습니다. 禮는 시대를 막론하고 필요하지만 지나치면 가식이 됩니다. 이러한 형식적인 禮를 비판하고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을 중요시했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중시한 노자는 無爲自然(무위자연)을 강조했습니다. 무위란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행동을 말합니다. 자연이란 자연히 그러한 것을 말합니다. 연약한 풀이 바위틈에서 자라나는 것도 자연히 그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본성에 어긋나는 일을 자주 합니다. 말에 굴레를 씌우고 소에게 코뚜레를 꿰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인위입니다. 노자는 생명의 긍정적인 힘을 신뢰해 생명은 간섭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잘 자라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노자는 교육에서도 無爲自然을 강조했습니다. 묵묵히 사랑으로 감쌀 뿐 어떤 강요도 하지 않음이 무위이며 아이들 스스로 배우고 성장하도록 놔두는 것이 자연입니다. 이러한 교육방식을 비판하며 아이를 방치하면 나쁜 길로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람의 본성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스스로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으므로 자율을 강조합니다. 반면 사람의 본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아이들 스스로 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은 타율을 강조합니다. 노자는 긍정적이었습니다.
노자는 가치의 상대성을 주장했습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늘 다투는데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강요하는 까닭은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며 자식이 반항하는 이유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생각이 옳고 누가 틀렸을까요?
노자는 善(선)과 惡(악), 美(미)와 醜(추)는 상대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사람마다 가치관과 주관에 의거한다고 본 것입니다. 서로 다투는 것도 자신의 옳음만 주장하고 타인의 옳음에 귀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투지 않고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이것이 오히려 이기는 길입니다.
바다는 세상에서 가장 큰 물입니다. 바다가 어떻게 큰 물이 될 수 있었을까요? 바다가 가장 낮은 곳에 있었기에 때로는 더러운 흙탕물도 묵묵히 받아들였기에 세상에서 가장 큰 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노자는 또한 유연한 사고를 강조했습니다. 바람에 맞서는 나무는 부러지지만 유연한 풀은 부러지지 않습니다. 또한 유연한 물은 나무와 돌을 만나면 비켜나갑니다. 물은 세상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하기에 지속적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또한 동식물에게 아낌없이 자신을 제공합니다. 노자가 물을 자주 칭찬한 까닭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강한 힘이 있음에도 모든 것들에 혜택을 주는 상생의 미덕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양에서는 동양의 바이블로 칭해지는 ‘논어’보다 ‘도덕경’의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노자가 서양과는 전혀 다른 사유의 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양에서는 세계가 물리적인 기하학적 질서로 이루어져 있다고 봤으며, 생명체조차도 일종의 복잡한 기계로 간주했습니다.
반면 노자는 세계가 기하학적 질서를 규정할 수 없는 변화가운데 있으며 생명은 이 변화 속에서 역동적이고 능동적으로 활동한다고 봤습니다. 노자의 이러한 사상은 세계를 기계적, 물리적, 수학적, 계량적으로 파악하려는 현대 학문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