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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Apr 14. 2024

854. 내 안의 나를 깨우는 장자: 내편

장자著, 최상용譯, 일상이상刊

 장자, 논어는 여러 번 읽어도 재미있고 유익하다. 者(역자)마다 조금 다르게 해석하니 항상 새롭고 읽을 때마다 한 구절 정도만 새기려 하니 매번 새로운지도 모른다. 이번에 읽은 장자는 내편, 외편, 잡편 등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4편 人間世(인간세)

人間世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난 세상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너는 쌓았던 덕이 어떻게 흩어지고 얄팍한 지식이 어떻게 생기는지 아느냐? 덕은 명예롭고자 하는 데서 흩어지고 지식은 경쟁심에서 생긴다. 명예롭고자 하는 것은 서로 헐뜯는 것이며, 얄팍한 지식은 다툼의 무기일 뿐이다. 이 두 가지는 흉기여서 둘 다 이 세상에 유행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와 같은 내용들입니다.


 초나라 자고가 사신으로 제나라에 가게 되었을 때 공자를 찾아 묻는다. ‘만약 사신으로 갔으나 일이 성사되지 않으면 왕에게 고초를 당할 것이고, 일이 성사된다 해도 애를 쓴 탓에 음양의 부조화로 인한 질병에 걸릴 겁니다. 일이 성사되든 실패하든 아무런 후환이 없는 사람은 오직 덕을 갖춘 사람만이 그리 할 수 있다 하셨습니다. 하지만 일을 실행하기도 전에 속이 타들어 갑니다. 미리 애를 기에 음양의 부조화로 질병에 걸렸습니다. 만약 일이 성사되지 않으면 왕에게 고초를 당해 이중의 재앙이 닥칠 겁니다. 어찌해야 할지 가르쳐 주십시오.’


공자가 답했다.

 ‘세상에는 크게 경계해야 할 일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자연적인 운명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인위적인 의리입니다. 자식이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은 운명이므로 마음에서 지워낼 수 없습니다. 신하가 군주를 섬기는 것은 의리로 어디를 가도 군주가 없는 곳은 없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이 두 가지를 피할 수 없습니다. 이를 일러 크게 경계해야 할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자식은 부모를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게 최고의 효행이요, 신하는 사태를 가리지 않고 군주를 편안하게 모시는 것이 최고의 충성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섬기는 사람은 슬픔과 즐거움에 흔들리지 않으며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음을 알기에 마음 편히 운명을 따릅니다. 이를 최고의 덕이라고 합니다. 신하나 자식된 사람이 부득이한 일을 당하면 사물의 실정에 맞게 실행하면서 자신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삶을 기뻐하고 죽음을 싫어할 겨를이 어디 있겠습니까?’


 공자가 계속 말을 잇습니다. ‘내가 들었던 것을 말해 주고 싶습니다. 가까운 나라와 교역할 때는 서로 신의로써 맺어지고, 먼 나라와 교역할 때는 반드시 말로써 진심을 나타냅니다. 이때 말은 반드시 전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역하는 양쪽이 다 같이 좋아하고 다 같이 화내는 것을 말로 전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양쪽이 다 같이 좋아하는 데에는 반드시 서로 좋은 말을 과장한 결과이고, 양쪽이 다 같이 화를 내는 데는 틀림없이 나쁜 말을 과장한 결과입니다. 과장된 말들은 거짓되고, 거짓되면 신의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격언에 있는 그대로의 사정을 전하고 과장된 말을 전하지 않으면 안전하다. 고 했습니다.’


‘ 또 기교로 힘을 겨루는 사람들은 처음엔 의기양양하지만 언제나 음모를 꾸며대며 끝냅니다. 싸움이 심해지면 온갖 기교를 동원하기 때문이죠. 예절을 앞세워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처음엔 심신을 잘 다스리지만 언제나 난장판으로 끝을 냅니다. 음주가 심해지면 야릇한 쾌락을 추구하기 때문이죠. 거의 모든 일이 그런 것 같습니다. 처음엔 당당하게 시작해도 언제나 비루하게 끝을 냅니다. 시작은 간단해도 끝날 무렵엔 복잡해지고 커져 버립니다.’


 ‘말은 바람이나 물결 같습니다. 행위에는 성공과 실패가 있습니다. 바람이나 물결은 요동치기 쉽고, 성공과 실패는 인간을 위험에 빠뜨리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화를 내는 것은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교묘한 말장난과 일방적인 언사 때문입니다. 죽음 직전에 놓인 짐승들은 울부짖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사나운 마음을 일으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분노하면 좋지 못한 마음으로 대응하는데, 그렇게 되는 이유를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진정 그렇게 되는 이유를 알아채지 못한다면 누가 그 결말을 알겠습니까? 그래서 격언에 “군주의 명령을 고치지도 말고 애써 이루려고도 하지 말라. 도를 넘는 것은 지나침이 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군령을 고쳐서라도 애써 이루려 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좋은 일은 오래 걸리며, 나쁜 일은 고치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저 사물의 움직임에 따라 유유자적하세요. 부득이한 일은 흐름에 맡겨두고 중도를 지켜나가는 것이 최선입니다. 무엇을 더 꾸며 보고해야 되겠습니까? 군주의 명령을 그대로 수행함만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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