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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Nov 26. 2023

831. 남다르게 결단하라. 한비자처럼(2)

신동준著, 미다스북스刊

먼저 베풀어야 한다.: 施予計(시여계)

 무릇 일꾼을 사서 농사를 지을 경우 주인은 가산을 덜어 일꾼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질 좋은 錢幣(전폐)를 구해 품삯을 준다. 이는 일꾼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그처럼 해야 밭을 깊이 갈고 제대로 김을 맬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인과 일꾼이 상대방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관계는 부자지간에도 적용된다. 일꾼이 일에 공들이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일하거나 베풀 때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해치려는 마음을 지니면 부자지간 일지라도 멀어지고 원망하게 된다.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 有餘計(유여계)

 조각을 할 때는 기본 원칙이 있다. 코는 무엇보다 크게 하고 눈은 무엇보다 작게 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큰 코는 작게 할 수 있지만 작은 코는 크게 할 수 없다. 작은 눈은 크게 할 수 있지만 큰 눈은 작게 할 수 없다. 세상 모든 일이 이와 같다. 복구가 불가능한 일을 행할 때 신중히 접근하면 실패 확률이 적다.

     

아첨과 충성을 구분하라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즐겨 마신다. 자신의 병을 고쳐준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명군은 이를 즐겨 듣는다. 충언을 들으면 공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상벌에는 원칙이 중요하다.: 規矩計(규구계)

 사물 한가운데 형체가 있는 것은 재단하거나 분할하기 쉽다. 형체가 있으면 길고 짧음이 있고 크고 작음이 있다. 모나고 둥근 모양이 있으며 견고함과 무름이, 가볍고 무거움이 있으며 검고 희고가 있는데 이를 事理(사리)라 한다. 사리가 있으면 물건을 쉽게 나눌 수 있다.

 넓은 공당에 모여 앉은 많은 사람들이 갑론을박 논쟁할 때 나중에 한 발언이 쉽게 채택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임기응변의 권모에 뛰어난 유세객은 이를 훤히 알고 있다. 모나고 둥근 方圓(방원)을 그리고자 할 때 規矩(규구)를 따르면 일에 효과가 드러날 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규구와 같은 기준이 있어야 한다. 특히 책략가는 이 이치를 잘 살펴야 한다.

* 모든 사물은 음과 양의 대비 같은 구분이 있으며 이는 상대적이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 가운데서도 우열이 갈리기 마련인데 이것이 사물의 이치, 즉 事理다. 사리를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선, 그림쇠와 곱자를 뜻하는 規矩와 같은 기준이 있어야만 사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쉽게 믿지 말고 오래 믿어라.: 愼信計(신신계)

 군주가 자신의 자식을 너무 신임하면 간신들은 그 자식을 이용해 사욕을 채우려 한다. 군주가 부인을 지나치게 신임하면 간신들은 그 부인을 이용해 사욕을 채우려 한다. 무릇 아내처럼 가까운 사람과 골육의 친분이 있는 자식조차 신뢰할 수 없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사람들은 이익을 따르기 마련이다.: 好利計(호리계)

 옛날 조양자의 마부 왕랑이 말을 사랑하고, 월왕 구천이 사람을 아낀 것은 전쟁터에 내보내 잘 타고 빨리 내달리게 하려는 취지였다 의사가 환자의 고름을 뽑아내기 위해 상처를 빨아 나쁜 피를 입 안에 가득 머금은 것은 골육의 친애하는 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익을 얻으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관자’ 오보는 ‘백성을 얻는 방안으로 백성에게 이익을 주는 것보다 더 나은 방안이 없다.’고 했다. 즉 利民(이민)이 다스림의 근본이라는 주장이다. 백성을 배불리 먹이며 이익을 안겨주는 것이 득민의 요체라는 것이다. 사마천도 사기에서 利民을 크게 언급했다. ‘무릇 치국평천하의 길은 반드시 백성을 잘살게 하는 데서 비롯된다. 백성들이 부유하면 다스리기 쉽고, 백성들이 가난하면 다스리기 어렵다.’

     

 한비자 등 法家(법가) 사상가들은 인간의 好利之性(호리지성: 선악보다 이해를 우선시하는 성품)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을 보였다. 인간을 禮(예)로서 다스릴 수 없고 강력한 法制(법제)를 동원하지 않으면 혼란을 막을 길이 없다고 했다. 모든 인간관계는 이기심에 따른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본 것이다. 利慾(이욕)에 휘둘리는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통찰한 이가 한비자였기에 신하가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일지라도 영달하려는 마음에서 군주에게 아첨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경고한 것은 이 때문이다. 


 性善說(성선설)이나 性惡說(성악설) 관점에서 인간세상을 바라보아도 되지만, 조직에서는 한비자의 눈으로 인간관계를 보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정확했다. 비정하지만 현실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好利之性은 변함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며 밤새도록 술잔을 부딪쳐도 이해관계가 없다면 ‘우리는 남이다!’로 변하는 것이 사회생활이다. 각박하고 팍팍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한비자를 읽고, 30년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빈병을 만든 후 내린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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