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것인가. 모든 잡다의 피로에서 해방되는 길
새판의 머리말 (초판 1987년, 1판 2017년으로 30년 간격이 있다. 저자는 2017년 머리말에서 30년 전 생각을 점검했다.)
이 책에 올라있는 소제목들 이를테면 ‘자아는 나의 것인가’ ‘존재는 그 자체인가’ ‘구름처럼 떠오르는 대상세계’는 그렇게 떠오르는 꿈같은 자아와 존재와 세계의 실체를 잡으려고 던지는 나의 질문 아니면 의문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러한 의문과 질문을 끝없이 던지고 있을 뿐 어떤 확실한 해답도 내걸지 않고 있다. 실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철학은 그때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갯속을 걷고 있었다.
실로 나는 내가 전공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회철학, 사회과학분야의 모든 문제의식이 희미해져서 그 바람에 철학전공 자체를 포기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 책에서 이어지고 있는 의문과 질문들은 이후 30년 나의 철학적 진로를 모색하며 다시금 돌이켜 보는 출발점 아니면 방향타로서 역할을 했던 하나의 문제집 또는 나의 개인적인 철학개론에 해당하는 것이다.
방향도 알 수 없는 바람을 잡으려고
파도처럼 起伏(기복)이 심해 정체를 알 수 없는 세상만사, 피하려 해도 오고야 마는 늘 사람의 뜻밖에서 펼쳐져 잡히지 않는 세상이변, 끊어진 시대의 흐름들, 숨져버린 존재자들, 그들에게 임시의 생명을 주고 태어나고 사라지게 하는 운명의 주재자는 누구인가.
‘이다’, ‘아니다’를 좌우하는 다만 자유의 바람일 뿐인가. 그 방향도 알 수 없는 바람을 잡으려고 太古(태고)의 原始(원시)로부터 샤먼과 지혜자는 끝없이 방황하지 않았던가.
문제를 넘어서 문제 앞에
사람의 역사는 문제의 해결보다는 문제의 터짐으로 이어지지 않는가. 그래도 문제해결을 위하여 살 만한 것인가. 하나의 문제를 넘어서 또 하나의 문제 앞에 놓이는 다만 문제 탈바꿈인 역사에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가. 거기에 숙명의 벽이 있고 해탈에의 문이 닫혀 있지 않은가.
이룰 수 있는 어떤 일도 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자는 백 번을 꾀해서 한 번을 이루면 된다고 한다. 기술자는 백 번을 일하다가 한 번을 그르치면 끝장이라고. 그러나 철학자는 언제나 그르칠 뿐이다. 그는 다만 문제에 부딪친다. 그는 이룰 수 있는 어떤 일도 하는 것이 아니다.
분석은 드러나지 않는 것을 풀어낸다.
분석이란 무엇인가. 풀어내는 일이다. 그것은 드러난 것을 전건으로 삼아 드러나지 않은 것을 후건으로 풀어내는 일이다. 그렇다면, 분석은 후건을 찾는 방법에 따라 이루어진다. 후건을 찾는 것은 전건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된다. 어떤 물음이 없이 분석이나 추론은 일어날 수 없다. 물음의 가지에 따라 분석과 추론의 가지가 생기지 않겠는가.
생각은 집념
병은 생명을 지닌 자의 피할 수 없는 고통인 것처럼 생각은 의문을 가진 자의 깨어날 수 없는 집념이다. 그것은 치료하거나 벗어나야 할 것이지 키우거나 잡고 있어야 할 일은 아니다.
결국에 버려야 할
늙는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것인가. 그것은 모든 잡다의 피로에서 해방되는 길. 젊음의 시절은 결국에 버려야 할 잡다에의 욕망으로 가득한 때. 죽는다는 것은 드디어 버림으로 들어서는 자유의 길
서양의 논리 동양의 마음
동양 사람이 서양의 과학을 처음 만났을 때 무엇을 깨달았는가. 그것은 좋은 것과 함께 나쁜 것도, 자연과 함께 超(초) 자연의 기적도 모두 원인과 결과, 이유와 귀결로 짜인 질서의 부분이란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가 다시 동양의 마음으로 돌아왔을 때 무엇을 찾았는가. 이유 있는 것과 이유 없는 것도, 인과로 엮어진 이승과 함께 인과를 풀어버리는 저승도 모두 알 수 없는 우주의 造化(조화)라는 깨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