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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May 19. 2024

866. 오른손에 논어, 왼손에 한비자

모리야 히로시著, 다산출판사刊

 후배들에게 논어 읽기를 권하다가 부장으로 승진하는 후배들에게는 한비자를 권했다. 논어에 따라 처신을 올바르게 하면 세상 살기에 어려움이 없으며 주위사람들과 어울려 일하거나 놀기에 거침없다.

 하지만 많은 직원들과 어울려야 하고 조직을 관리하는 관리자 입장에서는 때론 한비자적인 관리방식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이 내 마음 같지 않으며 이타적이기보다 이기적인 사람과 마주치는 경우에는 한비자 방식이 적합하다.  

 서가에 꽂힌 책을 둘러보다 비슷한 생각을 한 작가를 만났다. 물론 같지는 않으나 제목이 적절한 표현이다. ‘오른손에 논어, 왼손에 한비자’, 이 책을 구입해 놓고 읽지 않은 이유는 표지에 모든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를 균형 있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 ‘성선설? 성악설? 공자와 한비자에게서 배우는 실천적 인간학’

 본문은 논어와 한비자의 주요 내용을 발췌, 설명해 놓은 것으로 오늘은 논어의 인간학과 한비자의 통치학에 대해서만 요약한다.     


논어의 인간학

 논어는 일본인의 기본사상을 형성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고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공자를 시조로 하고 그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것이 유교다. 그리고 맹자가 공자의 가르침을 계승하여 발전시켰고 훗날 주자학과 양명학이 탄생했다.

 유교의 인간관은 성선설에 입각하지만 ‘성선’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맹자다. 공자는 ‘성선’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무슨 일이든 인간을 신뢰하며 해나가자는 입장이었으니 성선설이 바탕에 깔려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논어의 전반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인간학’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인격형성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좋을까. 주위의 신뢰를 얻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인간관계에는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 리더에게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나라를 다스리고 통합해 나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등 인간 삶에 관한 모든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발 더 파고 들어가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修己治人(수기치인)의 學(학)’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修己란 ‘자신을 수양한다.’즉 능력과 인격, 양쪽 면에서 자신을 갈고닦는 것을 의미한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자면 修身(수신)이라 해도 좋다.

 治人이란 사람을 다스린다. 즉 사회의 지도자적 입장에 서서 세상을 위해, 남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는 이를 위해서도 修己의 노력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修己治人이야말로 공자의 가르침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비자의 통치학

 공자의 주장이 이른바 ‘이러고 싶다’, ‘이랬으면 좋겠다’ 등의 이상을 말하는 것으로, 예전부터 이에 공감하는 사람들에게서 두터운 지지를 쌓아왔다. 그러나 이상은 어느 시대에나 쉽게 실현되지 못하고 현실이라는 단단한 바위에 부딪치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공자가 주장한 덕치주의도 예외는 아니었다. 

 처음부터 이상 따위를 내세우지 말고 우선 인간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똑바르게 인식한 후 거기에서부터 출발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法家(법가)라 불린 면면들이 바로 그들이다. 여기서는 그 전형으로 한비자를 들고자 한다.


 한비자의 주장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성악설에 입각한 통치의 학이라 할 수 있다. 성악설은 荀子(순자)가 처음으로 주장했다. 순자는 공자의 가르침을 계승하여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와 달리 ‘인간 본성은 악이고 선은 인위적인 것이다’라며 성악설을 주장했다. 제대로 된 규범을 만들어 악의 본성을 억눌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비자는 젊은 시절 순자의 문하에 들어가 성악설을 계승했다.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는 무엇일까? 한비자는 ‘이익’만이 인간을 움직이게 한다고 봤다. ‘뱀장어는 뱀과 비슷하고 누에는 유충과 비슷하다. 누구나 뱀과 유충을 보면 놀라고 소름 끼쳐한다. 하지만 어부는 뱀장어를 손으로 잡고 여성은 누에를 손으로 집는다. 이익이 있으면 누구나 두려움을 잊고 용기 있는 사람으로 변신한다.’


 한비자는 인간이란 이익에 집착하는 생물이라 했다. 그리고 당연히 입장에 따라 추구하는 이익이 달라진다. 군주에게는 군주의 이익이, 신하에게는 신하의 이익이 있다. 군주에게 신하란 언제 자신을 배신할지 모르는 존재고, 신하에게 군주란 언제 자신의 목을 칠지 모르는 존재다.

 이는 군신관계에만 국한되지 않고 일반적인 인간관계에도 해당된다. 한비자는 상대가 누구이건 인간은 믿을 수 없는 존재라고 이야기했다. 그 점을 확실히 인식하여 방어조치를 강구하지 않으면 파멸의 길로 간다고 했다.

 한비자는 이러한 전제에 입각해 ‘그렇다면 군주가 믿을 수 없는 신하를 제대로 다루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논리를 펼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法(법)과 術(술), 두 가지가 필요하고, 이것만 있으면 신뢰가 가지 않는 신하를 길들이거나 벌벌 떨게 하는 등 마음먹은 대로 다룰 수 있다고 했다.


 法은 법률을 의미하고 신하와 인민이 따라야 할 기준으로 명문화하여 제시해야 한다. 어길 시에는 가차 없이 벌칙을 적용하여 처벌한다. 術은 법을 운용하여 신하를 통제하기 위한 노하우 같은 것으로 명문화된 것은 아니다. ‘術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군주가마음속에 넣어두고 이것저것 비교하여 신하를 통제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근무평정과 비슷한 개념의 刑名參同(형명참동)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제창했다.

 ‘刑’이란 달성한 실적, ‘名’ 이란 본인의 보고, ‘參同’이란 두 가지를 비교해 평가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100을 하겠다고 보고하고 80밖에 달성하지 못하면 罰(벌)이다. 100을 신고하고 100을 하면 賞(상)이다. 100을 신고하고 120을 하면 이것도 벌이다. 음흉한 신하가 120을 할 수 있는데 적게 신고해 상을 받으려 했다는 것이다.

 術의 또 한 가지 측면은 상벌의 권한을 군주가 확실히 휘어잡아 직접 행사하는 것이다. 이는 신하를 통제하기 위한 절대적 조건이 된다고 한다.


* 일본인 작가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으나 ‘논어’에 관한 한 한국인 작가니 학자를 따라가지 못한다. 한국을 ‘유교의 나라’라 칭한 이유가 있었다. 문화와 학문의 깊이가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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