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늙은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2021년 12월 발행, 김 교수님이 102세 되는 해다. 얼마 전 김 교수님의 인터뷰 장면을 봤으니 올해 105세가 되셨다. 어떻게 생활하시기에 이토록 건강하실까?
머리말
동갑내기 김태길교수는 후배와 제자들에게 ‘김형석교수는 늦게 철드는 편이어서 오래 살 것 같다’라고 말하곤 했다.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도 ‘저 친구는 모자라는 데가 많아 언제 철들지 모른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주변의 여러 친지들까지 다 보내고 나 혼자 남았다. 넓은 사막에 홀로 서 있는 나무 같은 나를 발견했다. 지금까지는 철학자인 척, ‘인간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고 큰소리쳤으나 부끄러움만 남겼을 뿐이다. 90을 넘기면서 ‘나를 사랑해 준 분들을 위해 작은 도움이라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오늘의 나는 그분들이 사랑으로 채워졌음을 깨달았으니 어느 정도 철이 들었던 것 같다.
100세가 되면서 조선일보에 ‘김형석의 100세 일기‘를 연재하게 되었다. 그 전반부가 단행본으로 ’ 100세 일기‘로 출간되었다. ‘김형석의 100세 일기‘후반부와 발표되지 않았던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자가 되었다.
주는 마음이 그렇게 행복할 줄이야
2021년 여름은 힘들게 보냈다. 코로나19 때문에 찾아오는 손님이 없고, 내가 보고 싶은 사람과도 전화로 용무를 끝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지루한 장마까지 겹쳐서 작은 섬에 定配(정배)되어 사는 기분이다.
그래도 근래에 즐거운 모임이 있었다. 사랑하는 후배교수들과 서대문구의 한 호텔에서 점심을 같이 했다. 헤어질 때는 동석한 젊은 친구들에게 선물도 주었다. 와인과 안동소주, 캐나다산 명품인 벌꿀이었다.
주는 내 마음이 그렇게 행복할 줄은 몰랐다. 100세라고 해서 연초부터 받아두었던 물건들이다. 이 글을 쓰면서 좀 걱정이 된다. ‘선물로 드렸는데 결국 남에게 주는가’라고 생각할까 봐 서다. 그러나 내가 받았어도 같이 나누어 갖는 행복이 더 크니까 보내주신 분들도 더 기뻐해 주셨으면 좋겠다.
쓸모없는 늙은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40년 전, 회갑을 맞이했을 때의 일이다. 인생을 마무리하기 위해 남은 5년 동안 열심히 많은 일을 했다. 대학과 더불어 사회에서의 일이 끝나면 가정으로 돌아갔다가 공동묘지로 가는 여정이 기다리는 듯이 일을 해왔다.
그때 1962년 하버드대학교에서 정년 퇴임하던 폴 틸리히교수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유니온신학교에서 65세로 정년을 맞이했을 때, 7년 계약으로 하버드대학교 교수로 와 임기를 끝냈다. 그 후 기다리고 있던 시카고대학교에서 5년 계약으로 출강한다고 발표했다. 우리 나이로는 78세까지 현역 교수로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65세라는 젊은 나이로 인생을 끝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연세대학교 퇴임식 때, 현실에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를 했다. ‘오늘 연세대학교를 졸업하면 사회로 돌아가 열심히 일할 겁니다. 그것이 졸업생의 책임이니까요.’ 모두가 농담으로 여겼는지 웃었다. 그러나 나는 열심히 일했다. 내 생애에서 가장 소중한 학문과 사사의 업적은 그 기간에 이루어졌다. 바로 철학적 저서들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동갑내기 친구 안병욱, 김태길교수도 그랬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인생의 황금기는 60에서 75세까지’라는 것이었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75세까지 성장하고 터득한 지적 수준을 얼머너 연장하는가이다. 90세까지는 가능할 것이라 다짐해 보았다. 그 기대와 노력은 버림받지 않았다. 두 친구는 90까지 일했고, 나는 거기서 좀 더 연장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내 나이가 많다고 해서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젊은과 늙음은 나에게 속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을 표준 삼을 필요가 없다. 50대에도 늙은이가 있으며, 80세가 넘어서도 성장 할 수 있고 창조력을 갖출 수 있기에 인간이며 自我(자아)이다. 정신적인 성장만이 아니다. 정서적 풍부함과 행복은 나이와 같지 않다. 나는 지금도 예술가들의 생활을 부러워한다. 그들은 나보다 풍요로운 정서적 젊음을 지니고 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 모두가 신체적 건강, 정신적 성장, 아름다운 감정을 지니고 살 수 있다면 ‘나는 이렇게 살았더니 행복했다.’는 고백을 남길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