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탈무드, 장자(1) (황효순監修, 장자著, 베이직북스刊)
639. 동양의 탈무드, 장자(1) (황효순監修, 장자著, 베이직북스刊)
논어, 장자, 한비자 등 같은 제목의 책을 계속 읽고 있다. 번역한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하고 있어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드는 것도 한 가지 이유지만 독자적인 해석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지 못한 탓에 재탕, 삼탕을 하고 있다. 퇴직 후에는 최고의 고전이라 일컫는 논어를 멋지게 읽어보고 싶은 것이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기도 하다.
1장 삶의 즐거움
- 마음의 세계는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
중국에서는 다른 사람의 앞길이 창창하길 축복할 때 鯤鵬展翅(곤붕전시: 곤붕이 날개를 펼치다) 또는 鵬程萬里(붕정만리: 붕새가 나아갈 길이 만 리가 된다)라는 고사 성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장자’ 첫 번째 장인 ‘소요유’에서 유래되었다. 이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니 분명 정신세계 이야기일 것이다.
장자에 나오는 또 다른 유명한 이야기는 蝸角之爭(와각지쟁: 달팽이 왼쪽 뿔에 있는 촉이라는 나라와 오른쪽 뿔의 만이라는 나라가 영토문제로 전쟁을 하는데 시체가 수만이고, 패잔병을 쫒는 데만도 15일이 걸려야 돌아오곤 했다.)이다. 촉과 만이라는 두 나라 입장에서 보면 영토를 놓고 싸우는 것이니 매우 중요한 것이나 인간의 눈으로 볼 때 그 전쟁이라는 것은 가소롭기 짝이 없다. 왜 그럴까? 인간은 달팽이보다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보기 때문이다. 만약 곤붕이 날아올라 한계적인 틀 안에 갇혀있는 인류의 온갖 작태를 우주적 차원에서 본다면 가소롭지 않을까? ‘천리 끝까지 보려면 한 층 더 높이 올라서라’는 말처럼 적극적으로 행동하면 더욱 큰 세계를 보게 된다는 뜻이다.
- 만족할 줄 알아야 행복해진다. -
장자 ‘추수’,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큰 산 속의 작은 돌멩이 혹은 작은 풀, 작은 나뭇가지에 불과하다.’ 작은 풀, 작은 돌멩이는 큰 산에 비한다면 겨우 송곳하나 세울만한 작은 땅에 불과하다. 작은 풀, 작은 돌멩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사소한 것일 수밖에 없으며 그저 한 방울의 비나 이술, 한 줌의 햇빛뿐인지 모른다.
사람들도 정말로 필요한 것은 아주 적을 것이나 욕구가 엄청나게 큰 것이 문제다. 옛날 제왕들은 후궁으로 3천명이나 되는 미녀들을 뽑아 놓았지만 평생 얼굴도 보지 못하고 썩히기도 했다. (이멜다의 수많은 명품 구두, 지네가 아닌 다음에야 모두 신어봤을까?)
만족할 줄 알면 항상 행복하다. 가진 것 없이 행복하기 어렵겠지만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와 배불리 먹을 것이 있다면 더 많은 것을 소유한다고 해서 반드시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 마음을 열어야 지혜가 보인다. -
사람의 오감이 함께 작동해야 세상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눈이 멀면 공간 감각이 부족하고 귀가 멀면 세상이 적막으로 둘러싸이게 된다. 이보다 더욱 끔찍한 것은 정신적 결함으로 제한적 견문과 지식으로 광대하고 풍부한 세계와 대면하니 놀라고 움츠러들게 된다.
이러한 정신적 폐색의 또 다른 원인은 오만방자함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확신하고 모든 것을 배척하고 부정하게 만든다. 이런 사람은 눈으로 온갖 사물을 보고, 귀로 여러 가지 말을 들어도 마음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한다. 즉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2장 존재의 가치
- 단점도 장점만큼 중요하다. -
道隱於小成, 言隱於榮華(도은어소성, 언은어영화: ‘도’는 작은 성공에 가려지고, ‘말’은 화려한 자구에 가려진다.) 화려하고 번지르르한 자구는 전달하고자 하는 참뜻을 가려버리곤 한다는 뜻은 이해되나, ‘도’는 작은 성공에 가려진다는 말은 조금 어렵다.
장자는, 큰 도는 하나의 통합된 존재로 세계만물은 모두 ‘도’안에서 살아가며 서로 통하고 서로 하나가 된다고 믿었다. 만물 중 한 부분만 두드러진다면 눈에 보이는 성과 때문에 도는 전체적으로 손상될 수 있다. 세상만사는 모두 상반되는 양면으로 이루어져 있어 동과 서는 상반될 수 있어도 둘 다 없을 수 없듯 한 면은 사라진 채 한 면만 존재할 수 없다. 우리 인생은 기쁨이 있는가 하며 슬픔도 존재한다. 그래서 서로 이해하고, 직시하며, 포용하고 동정하는 마음으로 알아가야 한다. 사람의 좋은 면만 사랑하고 나쁜 면을 싫어하는데 그 사람에게는 나쁜 면도 중요할 수 있다.
- 옳고 그름에 집착하지 마라. -
사람은 항상 자신의 판단이 정확하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시비비를 판단하는 자신만의 판단기준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와 남은 상대적이고 옳고 그름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차피 각자의 옳고 그름이란 모두 단편적인 옳고 그름 일뿐 자기 생각만 주장한다면 결국 한쪽으로 치우쳐 위대한 도와는 동떨어지게 된다.
-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라. -
진시황이 통일 후 승상이 된 이사는 다른 제후국에서 온 인재들은 내쫒지 말도록 간언한다.
‘태산은 작은 흙과 돌을 내쫒지 않았기에 높아 질수 있었으며 황하와 바다는 작은 물줄기를 버리지 않았기에 깊고 넓어질 수 있었습니다. 군왕은 수많은 평민 백성의 힘을 억누르지 않을 때 슬기롭고 영명한 덕행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장자는 뚱딴지같게도 태산과 천하가 작다 했다. 태산은 사람에게 크고 높게 보이나 하늘과 땅의 범위에서 바라본다면 미미한 존재이다. 마찬가지로 아침에 태어나 저녁에 죽는 벌레 입장에서 보면 성인이 되기 전에 요절하는 어린아이 수명도 상상을 초월하는 긴 시간이다.
황하의 신 하백은 처음에 자신이 거대하고 끝이 없다고 자랑했지만, 바다의 신 북해약에게 진정한 거대함과 끝없음이 무엇인지 배웠다. 그러나 북해약은 자신은 천지에 비하면 바다에 던져진 좁쌀과 같다며 겸손해 했다. 바다의 거대함이 순식간에 작아진 것이다. 핵심은 비교의 기준점을 전환하는데 있다.
3장 처세와 도리
- 지혜는 지식을 기초로 하지 않는다. -
유한한 인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에 대해 수많은 견해가 존재한다. 대다수는 부귀영화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다. 현대에서는 부귀영화를 얻으려면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믿는다. 틀린 생각은 아니며 힘을 다해 지식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은 근대이후의 정신적 흐름이다. 그러나 중국 고대에서는 지식추구가 삶의 궁극적 목적은 아니었다. 지식을 중시한 유가의 근본 목적은 인생을 풍부하게 하는데 있었다. ‘사물의 이치를 따지고 파고들어 지식을 명확히 한다.’는 格物致知(격물치지)는 진실한 뜻으로 마음을 다스린다는 誠意와 定心을 보충하는 역할을 했으며 절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
- 마음을 다해 경청하라. -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인류의 기본 미덕으로 사람사이에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서로 이해한다는 표시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교류로 의미는 자구 속에서 표현되지만 그 여운은 자구 밖을 감돈다.
당나라 때는 과거 시험 전 응시자가 시험담당 관리나 유명 문인에게 자신의 글을 보내 인연을 맺곤 하였다. 시인 부경여는 과거시험에 참가하기 전 당시 문단에 이름을 날리던 수부 낭중 장적에게 ‘시험에 가까워 장 수부님께 올림’이라는 유명한 시를 증정했다.
洞房昨夜停紅燭, 어젯밤 동방에 붉은 등불이 꺼지고,
待曉堂前拜舅姑 새벽을 기다려 시부모님께 문안인사를 드린다.
粧罷低聲問夫壻 화장이 끝나고 낮은 목소리로 부군에게 묻는다.
畵眉深淺入時無? 제 눈썹의 진하기가 유행에 맞나요?
동방화촉을 밝힌 다음날 새벽, 신부가 단장하고 시부모님을 만나 뵈어야 하는 상황과 마음가짐을 비유로 든 이 시는, 시험 보는 자신의 처지를 시부모께 인사드리는 각시, 장적을 신랑, 시부모를 시험담당관에 비유했다. 과거 시험을 준비했으나 떨리는 마음을 토로했다.
장적은 ‘주경여에게 답하다’라는 시로 대답했다.
越女新妝出鏡心 월나라 미녀 서시가 새로 화장하고 거울 앞을 떠나며
自知明艶更沈吟 자기가 어여쁜 줄 알면서도 또다시 중얼거리며 걱정 한다.
齊紈未足時人貴 제나라 흰 비단이 사람만큼 귀하지 않지만
一曲菱歌敵萬金 한 곡조의 시는 만금의 값어치를 한다오.
장적은 주경여가 증정한 시의 의미를 알고 답시를 증정했고 주경여의 실력을 크게 인정해 주었다. 고수인 장적은 주경여의 고향을 염두에 두고 越女, 鏡心을 가져다 썼고, 주경여를 연꽃 따는 여자로 비유해 연꽃 딸 때 부르는 菱歌로 받았다. 장적의 화답 시로 주경여는 이름을 떨쳤다.
* 주경여와 장적의 시를 여러 번 읽었다. 읽을수록 수험생의 떨리는 마음과 비범한 실력을 격려하는 절묘한 시구가 기막히다.
- 내면의 아름다움은 천천히 드러나는 법이다. -
사람의 외모는 천성적인 것으로 외모가 변할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내재적인 수양은 자기하기 나름이다. 이 두 가지는 모두 밖으로 드러나게 되며 외모의 아름다움과 품격의 아름다움이 그것이다. 외모의 아름다움은 첫 눈에 드러나지만 품격의 아름다움은 천천히 드러난다. 첫인상에서 외모의 아름다움은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나 품격의 아름다움은 점차적으로 부지불식간에 점점 더 큰 매력으로 발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