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가에 앉는 마음 May 24. 2024

-16. 스님의 설교

 얼마 전 스님과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집안 환경이 기독교라 불교와 친하게 지낼 기회가 없었고 스님과는 처음 대면하는 자리였으며 식사하는 것 또한 처음이었다. 불교는 매우 고리타분하다는 생각과 양념 안된 절밥 또한 입맛에 맞지 않으리라는 선입관이 있었지만 젓갈로 양념한 부추김치도 나왔고 고춧가루 양념을 한 김치도 나왔다.(다른 절도 이럴는지 모르지만...) 

* 예전 사찰음식에는 육식, 젓갈과 파, 마늘, 달래, 부추, 아위(아위는 우리나라에 없어 양파를 쓰지 못하게 한다.) 등 이른바 ‘오신채(五辛菜)’를 금했다. 오신채는 자극적이라 음식에 대한 탐욕을 불러일으키며 몸과 입에서 냄새를 풍겨 공동생활을 해치므로 금기시되는 식재료였다.

후식으로 떡과 과일이 나왔으니 고기만 없었지 절밥이 아니라 한정식 같은 기분이었다. 잘생긴 얼굴에 광채 나는 눈빛의 스님은 이름난 전국구 스님은 아니었으나 중간중간 욕도 섞어가며 하시는 말씀이 상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법력은 갖고 계신 듯하다. 보통사람이 욕을 하면 상스럽게 보여도 공력이 쌓인 욕쟁이 할머니가 욕을 하면 구수하고 감칠맛 나는 것과 같은 이치 같다.

 스님께서 현실의 시간은 과거 삶의 투영이며 현재의 삶은 미래를 사는 것이란 말씀을 했다. 어쩌면 윤회사상의 기본인 듯했으나 불교에 대해 무식하고 생소하니 철학적이며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현재의 어려움은 과거의 삶의 결과, 즉 업이 되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인간들은 어려움이 있을 때 어려움을 없애달라고 부처님께 기원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어려움을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방법을 제시해 주셨다.

 나는 부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논리 정연한 철학으로서 불교를 믿는다. 부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지고 믿으면 극락 간다고 부처님께서 이야기하셨다면 중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부처님을 믿고 잘 보여야 극락에 간다고 하면 극락에 간 다음에 부처님께 잘못 보일 경우 지옥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이며, 극락 가서도 부처님께 잘 보이기 위해 스트레스받을 것이니 부처님 믿는 것 자체가 마음이 편치 않은 일일 것이다. “


 현재의 삶을 살아가면서 쌓은 공덕이 미래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현재는 미래이며, 과거의 공덕이 현재의 삶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현재는 과거이기도 합니다. 스님은 살아가는 동안 열심히 살고 좋은 일을 많이 해야 나 자신은 물론 편할 수 있다는 설교를 하신 것 같다. 고리타분할 것이라는 불교에 대한 선입관도 바뀌는 계기가 되었고, 불교의 매력에 빠진 날이었습니다.

 스님의 설교가 끝난 후 몇몇 사람들이 일상사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님께 불어봤습니다.

- 우리 집은 증축을 해야 하는데 몇 월이 좋겠습니까?

- 올해 시험이 예정되어 있는데 붙겠습니까?

- 장가들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집을 증축하려면 장마철을 피해야 하고. 수험생은 열심히 공부하는 것밖에 답이 없으며, 결혼하려면 먼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건만 어떤 대답을 원하고 질문했는지 궁금합니다.


 과거에 쌓은 공덕이 현재에 나타나며 현재에 쌓은 공덕들이 미래에 나타나는 것이니 현재를 충실히 살라고 스님께서 조금 전에 말씀하셨거늘 속 좁은 중생들은 왜 그런 형이하학적인 질문들을 하는지 실망스러웠다.

 신도들이 질문을 하기 시작하자 나 자신도 올해 상반기 산업재해 실저이 좋지 않은데 하반기 전망이 어떻습니까? 하고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질문을 삼키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868. 와우정사, 원숭이의 가르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