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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Jun 09. 2024

875. 조선이 사랑한 문장(2) (신도현著,행성B刊)

계급은 인격이 아닐세

25장 오동나무가 귀한가 대추나무가 귀한가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몸에도 귀천이 있고 크고 작음이 있으니, 작은 것으로 큰 것을 해치지 말고 천한 것으로 귀한 것을 해치지 마라. 작은 것을 보살피는 자는 소인이 되고 큰 것을 보살피는 자는 대인이 된다.’

 마음은 큰 몸이고 신체는 작은 몸이다. 신체를 귀히 여기느라 마음을 해치지 말라고 조언한다. 修身(수신)이란 말은 몸과 마음을 수양한다는 뜻이다. 내면을 평화롭게 다스리고 이러한 내면이 외면에 드러나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다.

 오동나무와 가래나무는 값나가는 귀한 나무다. 이를 버려두고 흔한 대추나무와 가시나무를 아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먹고 마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먹고 마시기만 하는 것이 문제다. 양심을 지키고 진리와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에게 먹고 마시는 것은 바른 길로 나가는데 쓰이는 에너지지만, 그저 먹고 마시는 사람에게는 단지 살찌는 습관이다.


26장 사실너머 진실까지 봐야 하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감각기관에는 사유하는 힘이 없으니 물질에 휘덮이기 쉽네. 마음기관에는 사유하는 힘이 있지 사유하면 얻되 사유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어. 마음 기관은 하늘이 내게 주신 것이니, 먼저 큰 것을 확립하면 작은 것은 떠나지 못한다네. 이것이 대인이 되는 법일세.’

 눈으로 본 빛깔과 귀로 들은 소리에 의미를 부여하고 파악하는 것은 마음이 하는 일이다. 이 둘을 잘 이용해야 하는데 감각기관만 있는 것처럼 사는 사람이 많은 것이 문제다. 오감의 욕망만 채우고 사유하지 않는 것이다. 

 사유란 생각하는 것 이상을 가리키는 철학언어로 ‘사실 너머 진실을 보는 것’이다. 마트에서 식자재를 훔친 사람에게 도둑이라 손가락질한다. 여기까지 사실이다. 하지만 도둑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음을 알게 되어 그를 쉽사리 비난하기 어려워졌다. 이건 진실의 영역이다.


29장 계급은 인격이 아닐세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닭이 울면 일어나 선행하는 사람은 순임금의 사람이요, 닭이 울면 부지런히 이권을 챙기는 사람은 도척의 사람이다. 순임금과 도척의 차이는 별게 아니라 선과 이익의 차이일 뿐이다.’

 성군 순임금과 악랄한 도척의 차이는 별게 아니다. 그날 하루 무엇을 지향하며 살았느냐다. 과거에는 타고난 신분이 사람을 평가하는 유일한 잣대로 신분에 따라 인격이 결정된다고 믿었다. 군자는 인간의 이상적인 경지를 뜻하면서 높은 귀족을 일컫는 말이기도 했는데 신분이 높은 사람만이 군자가 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

 길가의 걸인도 무례한 적선을 거부하는데 녹봉을 받는 귀족들은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축재에 혈안이 되어 있다. 대인과 소인의 구분은 사회적 계급과 관련 없다. 마음은 큰 몸이고 신체는 작은 몸으로. 큰 몸을 따르면 대인이고, 작은 몸을 따르면 소인이다.


30장 가시밭에선 튼튼한 신발이 필요하지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마음을 보살피는 데 욕망을 줄이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욕망이 적으면 비록 마음을 보존하지 못하더라도 잠깐 잃을 뿐이요. 욕망이 많으면 비록 마음을 보존하더라도 잠깐 보존하는 것일 뿐이다.;

 마음을 보살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욕망을 줄이는 것이다. 욕망을 줄이면 울분이 일어날 일도 줄어든다. 부정적인 감정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욕망대로 되지 않았을 때 일어난다. 애초 내 욕망이 작다면 부정적인 감정이 생겨도 바로 평정심을 찾을 수 있다.


33장 본마음을 잃은 것이 物化(물화)네

 ‘청잠’에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는 떳떳함이 있으니 하늘이 준 성품이다. 그 마음이 유혹되어 物化되면 바름을 잃는다. 선각자들은 그칠 줄 알아 바름을 머무르게 할 수 있었다. 삿됨을 막아 진정성을 보존하려면 예가 아니면 들어선 안 된다.’

 物化는 마르크스가 말한 물화와 상통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가치가 상품으로 여겨지며 사람마저 노동력이라는 상품으로 취급되는 것을 마르크스가 비판할 때 사용한 단어다. 정이는 사람이 본마음을 잃는 것을 物化라고 표현했다.

 사람은 자기 마음을 말로 표현한다. 조급하고 망령된 마음에서 조급하고 망령된 말이 나오지만, 망령된 말을 함으로써 마음에 조급하고 망령됨이 깃들기도 한다. 말은 정도에 맞게 해야 한다. 단순하지도 번잡하지도 않아야 한다.  어긋난 말을 할 때 가장 먼저 듣는 이가 자신이다. 그 말 때문에 내 마음이 어긋날 수 있다는 얘기다. 도리에 어긋나는 말을 하지 말며 말에 관한 성현의 교훈을 따라야 한다.


34장 마음은 하늘이 내린 임금일세

 범중선생이 말씀하셨다. ‘천지는 굽어봐도 우러러봐도 끝이 없고 아득하네. 사람은 그 사이에 점으로 존재하니 마치 거대한 창고 안에 쌀 한 톨 같구나. 그럼에도 세 기둥(三才: 삼재. 천지인을 일컫는다.)에 사람이 함께하는 것은 오롯이 마음 때문이라. 마음이 형체의 부림을 당하면 금수와 같아지도다. 입과 귀와 눈과 손발의 행위가 마음 틈 사이를 파고들면 마음에 병이 들고, 이런 마음에 욕망이 파고들면 마음을 보존할 수 있는 이가 드문 것을! 군자가 능히 명심하고 수양하여 진정성을 보존한다면 天君(천군: 하늘의 임금. 마음을 뜻한다.)은 태연하고 百體(백 체, 온몸이란 뜻)는 마음의 명령을 좇으리라.’


36장 잠시도 한눈을 팔지 말게

 마음을 잘 챙김으로써 인간의 도를 세울 수 있지만 잠시라도 내버려 두면, 즉 방심하면 마음은 금세 달아난다. 아슬아슬하고 미묘한 게 마음이다. 꾸준히 수양해 진정성이 유지되도록 마음을 잘 보살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많은 이가 마음을 놓아 잃어버린다. 마음은 잠깐 한눈을 팔아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보살피는 사람은 항상 자기 마음을 관조한다. 미미하게라도 나쁜 마음이 들것 같으면 즉시 알아차린다. 그 순간 그 감정은 가라앉는다. 

 마음을 보살피는 사람은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흔들림이 없다. 차분히 관조하고 묻고 생각하여 중용상태에 이른다. 이것을 ‘안과 밖이 서로 돕는다’고 한다. 


에필로그: 한 권으로 읽는 동양 고전

 심경 해설을 마쳤다. 고개를 끄덕인 문장만 곱씹고 실천하여 내 것으로 만들면 된다. 심경을 읽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론을 배우기 위함이다. 경쟁이 심한 한국사회에서 버텨 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두 번째는 조선과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다. 심경은 조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필독서로 읽지 않고 조선의 철학, 문학, 정치, 사회, 예술을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한민국은 조선을 계승한 국가이기에 심경을 모르면 우리 사회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세 번째는 심경이 고전이기 때문이다.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많은데 그중 하나는 당대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도록 돕는 것이다. 우리의 사고와 가치관은 시대의 산물로 온전히 독립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시대마다 환경마다 품고 있는 고유한 가치를 ‘이데올로기’리 한다. 이데올로기가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것을 이데올로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 그것을 불변의 진리로 여기기 쉽고 여기서 폐단이 생긴다.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려면 나와 다른 시대와 환경에서 태어난 문물과 사상을 접해야 한다. 환경은 다른 문명을 접하면 되지만  시대는 과거의 것만 볼 수 있다는 게 문제다. 현시대를 넘어설 수 있는 힌트는 고전에서 밖에 찾을 수 없다. 고전을 읽음으로써 지금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그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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