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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Jun 02. 2024

872. 조선이 사랑한 문장(1)(신도현著, 행성B刊)

조선의 베스트셀러, 조선의 교양 ‘심경’ 

 心經(심경)이란 고전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읽어보니 心耕(심경)으로 작명해도 좋은 책으로 조선의 베스트셀러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프롤로그: 조선의 교양 ‘심경’

 마크 트웨인은 고전의 조건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 많은 사람이 칭송할 것 둘째, 많은 사람이 읽지 않을 것, 많은 사람이 고전을 칭송하면서도 정작 읽지 않는 것은 어렵고 두껍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심경’은 37장으로 양이 적고 어렵지 않다.

 ‘심경’은 송나라 성리학자 진덕수가 여러 책에서 핵심이 되는 내용을 뽑아낸 일종의 격언집이다. ‘심경’은 조선의 베스트셀러로 1장은 書經(서경), 2~3장은 詩經(시경), 4~8장은 周易(주역), 9~11장은 論語(논어), 12~13장은 中庸(중용), 14~15장은 大學(대학), 16~18장은 禮記(예기), 19~30장은 孟子(맹자), 31~32장은 주돈이, 33장은 정이, 34장은 범준, 35~37장은 주희 글에서 가려 뽑았다. 주 내용은 ‘마음을 다스리는 법’이며 마음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될 만한 문구를 뽑아 재배열한 것이 ‘심경’이다.


 남평 조식은 ‘심경은 마음을 죽지 않게 하는 약과 같다.’했으며, 다산 정약용은 ‘오늘부터 죽는 날까지 마음 다스리는 법에만 힘을 다하고자 하니 이제 경전을 깊이 연구하는 일은 심경으로 끝은 맺으려 한다.’고 했다.  


1장 중용은 이런 것일세.

 순임금께서 말씀하셨다. ‘인심은 너무 위태롭고 도심은 너무 아득하다. 정밀하고 한결같아야 진실로 중용을 잡을 수 있다.’

 인심은 기본적인 욕구를 좇는 마음이고, 도심은 바른 길을 좇는 마음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 둘을 지녔다. 인심은 자신과 종족보존을 우선시한다. 식욕과 성욕, 권력욕 등이 그 예다. 이런 것들만 좇으며 산다면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삶이니 위태롭다. 반면 도심은 기본적인 욕망을 포기하더라도 자신이 믿는 가치와 정의를 추구하려는 마음이다. 물론 그렇게 살기 쉽지 않으니 아득하다.

삶이란 이 두 마음이 싸웠다 화해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순임금은 중용을 택했다고 말한다. 중용을 얻는 방법이 ‘정밀함’과 ‘한결같음’이다. 주희는 ‘널리 배우고 깊이 묻고 신중히 생각하며 명철하게 판단하는 것을 정밀함’이라 했고 ‘의지를 굳건히 하고 우직함을 실천하는 것을 한결같음’이라 했다. 

 명철하게 판단하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중해야 한다. 명철하게 판단한 후에는 굳건하고 우직함이 필요하다. 타인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는 의지를 지녀야 한다. 나의 길을 믿고 당당히 걸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중용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 중용은 매사에 ‘알맞게’ 대응하는 것이다. 부당하고 불의한 일에 부딪혔을 때 바꿀 수 있는 상황이라면 과감히 용기 내는 것이 ‘알맞음’이요, 도저히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다음을 기약하며 힘을 기르는 것 또한 ‘알맞음’이다. 매 순간 상황을 깊이 고려해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중용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한 선택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 이도저도 아닌 산술적인 중간을 택하는 것도 중용이 아니다. 중용은 유교에서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삶의 방식이다.


6장 고통의 미덕은 무엇인가

 몸이 아플 때 욕심은 가벼워진다. 건강할 때는 이것저것 갖고 싶고 성취하고 싶은 게 많은데, 몸이 아플 때는 ‘몸이 아프지 않았으면’하는 마음뿐이다. 또 아파보니 그간깊이 공감하지 못한 타인의 고통도 새삼 느껴진다. 출세가도를 달리던 사람도 곤경에 처하면 겸손해진다. 지금의 실패가 온전히 나의 탓이 아니듯이 이전의 성공이 온전히 나의 덕이 아니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주위에 좋은 말 하는 사람만 있다면 문제점을 파악하지 못한다. 그럴수록 나는 거만해져 언젠가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그래서 쓴소리를 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처럼 곤경은 우리를 깨우친다. 그런데 문제는 상황이 나아지면 금세 그 마음을 잊는다는 데 있다. 반면 대인은 그 마음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배움을 얻는다. 막히는 데서 도리어 뚫는 법을 깨우치는 것, 이것이 삶의 묘미이자 진보의 실마리이다. 


12장 감정을 부릴 줄 알아야 하네

 우리나라 근대 사상가 박중빈(호는 소태산, 기존 불교를 비판하고 불교 교리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수행이라 주장했다. 원불교를 창시했다.)은 희로애락 감정을 대하는 방식을 3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 번째 단계는 중생 즉 보통 사람이 대하는 방식이다. 자신이 주인이 돼 감정을 부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감정에 예속돼 부림을 당하는 단계다.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화가 일어나고 그 화 탓에 손해를 본다. 두 번째는 보살이 대하는 방식이다. 불교에서 보살은 수행 수준이 높지만 아직 부처에 이르지 못하는 단계다. 보살은 감정에 부림을 당하지 않고 감정을 조절한다. 감정을 초원하니 평온하지만 무미건조하다. 즉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지만 인간미가 부족해 보인다. 마지막에는 부처가 대하는 방식이다. 부처는 감정에 예속되지도, 그렇다고 감정을 떠나지도 않는다. 감정을 상황에 맞게 드러낸다. 분노해야 할 상황에서 분노하고 슬퍼할 때 마땅히 슬퍼한다. 보살은 손해를 보지 않는 수준에서 그친다면 부처는 나와 타인에게 두루 이로움까지 준다.

 이것이 바로 중용의 경지다. 사람이 중화, 즉 중용을 이룰 수만 있다면 천지자연이 바로 서고 만물이 길러진다. 지금까지는 인간이 문제를 만들어 왔다면 이후로는 인간이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18장 열흘 붉은 꽃은 없다네

 같은 즐거움이지만 군자는 도를 깨우칠 때 즐겁고 소인은 욕망을 채울 때 즐겁다. 그런데 소인의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한다. 도라는 것은 좋고 나쁜 상황과 무관하게 깨우치면 충만함을 느끼게 하지만, 욕망은 채울수록 갈증 나게 하는 끝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제까지 욕망을 채울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열흘 붉은 꽃이 없듯 하루아침에 추락할 수 있는 것이 세상살이 이치다.

 도는 오직 내게 달려있지만 욕망은 환경과 타인 등 여러 여건에 달려있기에 마음먹은 대로 채울 수 없다. 도를 좇으면 즐겁지만 욕망을 좇으면 미혹될 뿐 즐겁지 않은 이유다.


21장 잃어버린 가축은 찾으면서 왜 마음은 찾지 않는가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요 의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 따르지 않으며 그 마음을 잃고 찾을 줄 모르니 슬프다. 사람이 닭과 개를 잃으면 찾을 줄 알지만 마음을 잃고서는 찾을 줄 모른다. 학문의 길은 다른 것이 아니다. 그 잃은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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