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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Jun 20. 2024

880. 고요하지 않은 아침고요수목원

빛은 공학이자 과학이며 예술이기도 하다.

 2024.02.26, ‘아침고요수목원’ 이름이 예쁘다. 명칭에서 고요한 아침에 들리는 청명한 새소리가 연상된다. 한상경 삼육대학교 원예학과 교수가 가평 축령산자락 화전민이 염소 키우던 돌밭 10만 평에 1994년 자리 잡고 1996년 수목원을 개원했다. 30년간 가꾸고 키워온 수목원으로 인간의 집념과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침 고요’라는 명칭은 인도 시성 타고르가 조선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예찬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모처럼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없이 좋은 날, 아내가 픽한 장소는 아침고요수목원이다. 분당에서 88대로를 타고 미사를 거처 남양주로 접어들자 눈 쌓인 산들이 펼쳐진다. 아내는 어린 시절 부산에서 오래 살아서인지 아무것도 아닌 雪山(설산)을 보고 감탄하며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나중에는 모두 지우게 될 걸’이란 조언을 귀담아듣지 않았으나 가평에 접어들자 셔터를 누르기보다 감탄사 나오는 횟수가 많아졌다. 대성리, 청평댐 주변만 해도 풍광이 아름다운데 산세 좋고 계곡 깊은 축령산자락에 접어들자 잔설로 인해 수묵화를 그려놓은 듯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수목원은 아직 겨울이다. 절기로는 봄이지만 꽃샘추위로 꽃이 없으니 수목원에서 낸 아이디어가 ‘오색별빛정원전’인듯하다. 매표소 직원의 안내가 매우 솔직하다. ‘겨울이라 꽃이 없어 볼 것이 많이 없습니다. 조명은 5시에 켜나 해가 진 이후인 6시 30분 이후가 예쁩니다. 다른 곳을 구경하시다 6시쯤 입장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해가 지려면 4시간 정도 남았으니 볼 것 없는 수목원에서 보내기는 긴 시간이다. ‘카페가 영업하는지요? 식당도 영업하는지요?’ 물어봤다. 빵집과 카페가 영업을 한다기에 입장해서 산책하고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수목원 내에 자그마한 유리 온실도 있다. 유리온실에 들어서자 꽃향기가 가득하다. 익숙한 장미향인가 했는데 주인공은 천리향이다. 복수초, 동백, 처진 매화, 장미 사계절 꽃이 한 번에 폈으나 천리향의 향이 얼마나 강한지 시간이 흐르자 모든 향기를 삼켜버리고 코끝을 마비시켰다.

 자세히 보니 온실 밖에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오고 있다. 산속 추위를 이겨내고 보드라운 솜털을 내민 버들강아지도 예쁘고 이름 모를 나무들이 새싹을 틔우고 있다. 발밑에도 나물들이 올라오고 나무들은 열심히 물을 올려 푸른빛을 머금고 있다. 꽃피고 단풍 드는 계절에는 얼마나 아름답기에 지금은 볼 것 없다고 하는 것일까? 이 추운 겨울에 꽃향기와 새싹 돋는 것을 봤으니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아직 눈이 덜 녹아 많은 산책로 곳곳이 출입 통제되어 한 바퀴 도는데 2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코끝에 스치는 맑은 바람내음이 좋다. 매일 가는 분당 율동공원이나 광교 호수공원 공기내음과는 다르다.

 손님 없는 수목원 곳곳을 산책하고 빵집으로 향했다. 구색은 많지 않고 쿠키까지 20종정도 된다. 제빵사는 받아오는 빵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만드는 빵이라는 것을 알아 달라는 듯 커다란 소리를 내며 반죽을 치대고 빵을 구워내고 있다. 우유식빵이나 치아바타같이 무미의 맛을 좋아하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야간 점등 시간에 맞춰 다시 한 바퀴 돌아야 하니 에너지보충이 필요하다. 무미에 가까울듯한 먹물식빵을 구입하니 안에 치즈가 들어있어 전자레인지에 돌려야 한단다. 취향이 아닌 빵을 맛있어 먹은 것은 아니다. 


 오늘 일몰시간은 18시 17분이나 아직 훤하다. 오색 조명을 점등했지만 도드라져 보이지 않고 희미하기 만하다. 19시가 되어 어둑해지자 조명이 아름다워진다. 나무 꼭대기부터 잔디광장까지 형형색색의 불빛이 수목원을 밝히자 어디에서 사람들이 나타났는지 관람객이 몰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앞세운 가족 관람객도 있지만 남녀 연인사이가 많아 보인다. 외국인들에게도 알려졌는지 외국인관람객도 많다. 집에 올 때 주차장을 보니 관광버스가 예닐곱 대 정도 된다.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온 이유를 알았다.


 매우 주관적인 시각이지만 ‘오색별빛정원전’의 오색조명이 너무 요란스러웠다.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화려함이 부담스러웠고 지나침이 도를 넘으니 고상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분당 탄천 지류를 가로지르는 많은 다리에 경관 조명을 설치했으나 가장 부담스러운 조명은 시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조명이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색’으로 변하는 조명은 무섭기까지 하다.

 파리 세느강변 고성을 밝히는 조명은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다. 빛과 그림자만으로도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표현할 수 있다. 프라하의 야경이나 스페인 가우디성당도 화려하지만 도를 넘지 않았다. 경복궁 단청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는 단색조명으로도 충분하다. 단지 색감, 조도, 광도를 고려했을 것이다.  

 빛은 공학이고 과학이며 예술이다. 대학교 전기공학과에서는 조명공학을 가르친다. 일주일 전 관람했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이신자, 실로 그리다.’ 전에서 작가의 작품도 뛰어났지만 큐레이터의 예술 감각을 감상하고 왔다. 큐레이터가 작가의 작품을 돋보이게 함은 물론 전시 공간 전체 구도와 빛을 잘 조화시켜 개개의 작품을 합쳐 또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냈다. 빛은 공학이자 과학이며 예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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