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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4. 탁월한 사유의 시선(1)

탁월한 사유의 시선(1) (최진석著, 21세기북스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서문

우리는 지금까지 철학 수입국으로 살았다. ‘보통 수준의 생각’을 우리끼리 잘하며 살았지만 ‘높은 수준의 생각’은 수입해서 산 것이다. 다른 사람이 사유한 결과를 숙지하고 내면화하면서도 스스로 생각한다고 착각해왔다. 수입된 생각으로 사는 한 독립적일 수 없다. 그렇게 하면 당연히 산업이든 정치든 문화든 가장 근본적인 면에서는 종속적이다. 그 종속성을 벗어나서 독립적인 삶을 함께 누리다 가고 싶었다. 우리 나름대로의 판을 벌여보는 전략적 시도는 할 수 없을까? 그 질문에 철학적 높이에서 답해보려는 시도가 바로 이 책이다.


내 강의 내용을 출판사에서 정리한 원고를 한참이나 붙들고 있다가 스웨덴에서 마무리 했다. 가난과 노사분규로 몸살을 앓던 스웨덴이 행복한 국가로 변모한 과정을 스칸디나비아정책연구소 최연혁교수가 의미 있는 견해를 전해줬기에 그를 만나러 스웨덴행 비행기에 올랐다.

스웨덴은 중앙은행 시스템을 최초로 시작한 나라다 제도적인 면에서 先導力(선도력)을 가져 본적이 있다는 뜻이다. 제품이나 제도에서 先導力을 갖는 자는 것은 매사에 ‘수준’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난과 노사분규로 몸살을 앓던 스웨덴이 행복한 국가로 만든 저력은 이 先導力을 행사해본 경험의 연장선상에 있다. 先導力은 팔뚝이나 허벅지 근육에서 나오는 힘과 달라 지성적, 문화적, 인문적, 철학적, 예술적 높이의 시선에서 형성된다. 인격적인 토양에서 터져 나오는 창의력이나 상상력을 발휘하여 용기 있게 도전한 결과다. 우리가 반드시 가져야할 높이다.


우리사회의 체제는 경제적으로 자본주의고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다. 자본주의의 주도권은 자본가에게 있고, 민주주의의 주도권은 시민에게 있다. 우리사회가 미숙하다면 자본가와 시민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우리는 돈이 많아도 자본은 성숙되지 않았다. 부자는 있지만 자본가는 희귀하다. 국민과 백성은 있어도 시민은 아직 제대로 자라나지 못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돈이 자본으로 바뀌고 부자는 자본가로 바뀌어야 한다. 백성이 시민으로 바뀌어야 한다. 사적인 시선을 역사적으로, 공적으로 책임성을 발휘해야 한다.


1강 否定(부정): 버리다

- 철학의 시작은 곧 전면적인 부정이고, 이것은 새로운 세계의 생성을 기약하는 일이다. 새로운 생성이란 전략적 높이에서 자기 주도적 시선으로 세계를 보고 스스로 자신의 나아갈 길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스스로 그 길을 결정하지 못하는 한, 항상 종속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종속적인 한, 우리는 주도권을 잡고 자신의 삶을 꾸리거나 자신이 속한 사회의 새 방향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우리에게는 우선 버리는 일이 필요하다. -


01 明(명): 대립과 공존을 통한 철학적 차원의 사유

대부분은 자신이 붙들고 있거나 몸담고 있는 한쪽 세계를 온전한 세계로 착각하고 삽니다. 특정한 한쪽 세상을 빛나게 해주는 해나, 다른 한쪽만을 비추는 달을 유일한 빛으로 착각합니다. 우리나라는 너무도 오랜 시간 이념 대립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해나, 달을 붙잡고 이념화하여 진실이라 강변하며 상대방을 비난하고 탓합니다.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진보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가장 시급한 일은 이 극단적인 이념 대립에 빠지는 지적 단순함에서 빠져나와 각자 자신의 벽을 넘어서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대립에 갇히지 않고 오히려 대립을 품어 안는 내적 공력을 키워 지속적으로 변증법적 상승을 해야 합니다.


02 敗(패): 서양에 의한 동양의 완전 패배

1860년 체결된 베이징조약으로 동양은 서양에게 패배합니다. 이후 중국인들은 어떻게 하면 서양을 이길까 하는데 온 역량을 집중합니다. 극단적 단어를 사용해 ‘복수’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데, 복수의 결기도 없이 무조건적인 화해와 평화를 들먹인다면 나약함의 표시일 뿐입니다. 조선은 임진왜란을 민족적 치욕이라 말하며 일본을 미워하고 증오합니다. 하지만 지금껏 그 치욕을 되갚아주려는 장기적이고 차분한 준비가 없었습니다. ‘복수’를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은 더 큰 치욕이며, 300년이 지난 후 국권침탈이라는 치욕을 당합니다. 일본을 증오하는 대신 일본인보다 신용을 더 잘 지키고, 친절하고, 질서를 지키고, 많이 읽고 탐구하며, 청렴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일본에 대한 분노표출보다 더 잘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중국은 신중하고 강렬하고 일관되게 ‘복수’를 준비합니다. 아편전쟁 후 서양문물을 수용해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洋務運動(양무운동)’을 일으킵니다. 서양에 당한 원인이 군함과 대포라고 판단한 중국인들은 근 30년 동안 철 생산을 위해 외국의 광산기술자를 초빙하는 등 조국과 민족을 구하기 위한 ‘서양배우기’를 하는데 이러한 중국인들의 의지를 ‘救國救亡(구국구망)’이라 표현합니다.

양무운동이 결실을 맺어 강력한 ‘북양함대’를 재건합니다. 하지만 1894년 청일전쟁에서 북양함대가 참패합니다. 중국인들은 양무운동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철저하고도 근본적인 개혁을 시도합니다. 서양의 과학기술 문명을 따라잡으려고 노력하며 서양처럼 발전시키면 서양을 이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양무운동 30년간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과학기술문명을 가능하게 해주는 더 큰 힘이 배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바로 정치제도입니다. 중국은 서양의 제도를 배우려고 노력하게 되는데 이것이 變法自疆運動(변법자강운동)입니다. 변법은 제도개혁을 뜻하나 당시 중국은 보수적인 서태후가 실권을 장악하고 있어 개혁파가 어린 황제를 앞세워 유신을 하려하지만 103일 만에 막을 내리게 됩니다. 변법자강운동은 실패했지만 중국인들은 정치나 제도 넘어 더 큰 힘을 찾아 나섭니다. 그 큰 힘을 문화, 윤리, 사상, 철학으로 봤습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중국인들은 새로운 사상, 새로운 문화, 새로운 철학이 있어야만 건강한 정치제도가 가능하고, 과학문명 기술이 발전한다고 인식합니다. 부국강병의 밑바탕에 문화, 사상, 철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854년, 일본은 미국에 의해 강제 개항됩니다. 20년 후인 1875년, 한국은 일본에 의해 강제 개항됩니다. 일본은 20년간 다른 나라를 개항시킬 정도로 부강해졌습니다. 일본의 힘은 어디서 왔을까요? 일본은 1867년부터 1889년까지 메이지유신을 단행합니다. 봉건제에서 벗어나 통일된 목표와 방향을 향해 일사분란하게 걸어가 효율 높은 국가로 변신합니다. 중국이 철학적 시선의 필요성을 알게 된 것이 1917년인데 ‘철학’이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건너온 것입니다. 일본은 1874년에 철학이라는 관점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우리는 1926년 경성제국대학에 철학과가 생깁니다. 우리가 철학에 눈을 뜰 때 일본은 이미 철학의 생산단계에 들어간 것이지요,


철학의 생산은 곧 사유의 독립을 의미합니다. 일본이 철학의 성과를 생산할 때 우리는 수용하기 시작했으니 사유의 정점인 철학에서 일본을 뒤 쫒아 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1920년대 후반부터 경성대 졸업생들이 연구를 하기 시작했으니 근대적의미의 철학이라는 시선, 철학이라는 높이, 문화 자체에 대한 자각적 시각을 갖기 시작한 것입니다.


03 復(복): 서양을 배우다.

서양의 모든 월등함이 그들의 월등한 사상, 문화, 철학에서 왔음을 깨달은즉 ‘救國救亡(구국구망)’하기 위해서는 서양의 그것들을 철저히 배울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지금의 것’을 전면적으로 부정해야만 하는 이유다.


04 力(력): 문화, 사상, 철학의 힘

철학적인 활동은 먼저 ‘자기파괴’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현재의 것을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재의 것을 제대로 응시할 수 있는 높이를 갖는 것. ‘파괴’는 그 높이에서라야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


2강 先導(선도):이끌다

- ‘철학은 국가발전의 기초다.’ 우리나라의 발전은 건국을 시작으로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앞선 나라들을 따라하며 진행되었다. 이제는 그 다음 단계인 선진화로 도약할 때이다. 선진화란 사유의 상승이 기본 조건인바, 사유의 상승에 대한 해답은 바로 철학에 있다. 철학이란 시대의 흐름을 포착해내는 지성적인 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철학을 토대로 할 때 새로운 ‘장르’의 창조가 가능해짐으로써 ‘先導力’을 갖게 되고 결국 이것이 국가 발전의 기초가 된다. 단순한 지식 습득에서 벗어나 더 높은 차원에서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때 철학은 시작된다. -


01 胎(태): 새로 만들다.

先導力을 갖기 위해서는 ‘장르’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장르가 先導力을 갖게 하고, 先導力이 선진을 가능하게 한다. 이 장르의 출생처가 바로 철학적 시선으로 포착된 관념이다.


02 知(지): 창의와 상상이 작동되는 지성적 차원

전략적인 높이에서 작동되는 ‘창의와 상상’의 힘, 이것이 지성적 차원이다. 선진적인 先導力은 여기서 구성된다.


03 峠(상): 국가발전의 단계

스스로 사유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한 사유의 결과들로 자신을 채우면 그것은 노예적 삶이다. 철학적으로 사유한다는 것은 노예적 삶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독립을 이루는 여정에 나선다는 뜻이다.


04 思(사): 철학을 한다는 것의 의미

기존의 문법을 넘어 새 문법을 준비하려는 도전, 정해진 모든 것과 갈등을 빚는 저항, 아직 오지 않은 것을 궁금해 하는 상상, 이것들이 반역의 삶이라면 철학을 한다는 것은 반역의 삶을 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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