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사유의 시선(2) (최진석著, 21세기북스刊)
3강 獨立(독립): 홀로 서다
- ‘가장 높은 차원에서의 지적 도전이 철학을 탄생시켰다.’
탈레스의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신에 대한 믿음이 주도하던 시대는 점점 막이 내려지고 인간의 생각하는 힘이 주도하는 세계가 열린다. 인류 역사는 주변이 중심을, 소수가 다수를 전복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기존 세계를 이탈하는 새로운 생각이었던 것이 믿음으로 자리 잡고 그 믿음을 밀어내는 또 다른 생각이 거듭되는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사유의 여정은 고독한 인간의 독립을 바탕으로 한다. 집요한 관찰과 예민함으로 기존의 것을 낯설게 쳐다볼 때, 그리고 홀로 세상에 부딪치는 참된 용기를 발휘할 때 철학은 탄생한다. -
01 理(이): 최초의 철학적 사유와 발휘
세계의 주도권이 신에서 인간으로 넘어오면서, 믿음의 시대에서 생각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天命의 시대에서 道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신화의 시대에서 철학의 시대로 넘어왔다.
02 孤(고): 고독을 기반으로 홀로 선 자
‘독립’은 홀로 서는 것이다.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만 책임성 있게 그리고 도도하게 우뚝 서는 것, 독립적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고독’이다.
03 視(시): 관찰과 몰입
어떤 대상을 집요하게 관찰할 때, 그로써 대상이 이전과 다르게 보일 때 우리는 생소함으로 깜짝 놀라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때 비로소 대상과 나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다.
04 勇(용): 기존의 것과 불화를 자초할 수 있는 용기
탁월한 높이에서의 사유, 그곳으로 가는 독립은 다른 말로 ‘용기’다. 기존의 것과 빚어지는 불화를 자초하고 감당하는 용기야 말로 자신이 자신의 힘만으로 서 있을 때 발휘되는 또 하나의 힘이다.
4강 眞人(진인): 참된 나를 찾다
- ‘나는 참된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가?’ 삼풍백화점 붕괴부터 세월호 침몰까지 그동안의 재난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준비와 훈련이 부족한 우리 한국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다산 정약용선생이 ’新我之舊邦(신아지구방)의 정신으로 ‘나의 낡은 나라를 새롭게 하겠다.’고 외쳤듯이 이제 우리는 기존의 관념에서 빠져나와 부지런히 새로운 지적 활동을 해야만 한다. 온전한 덕을 갖추고 주체적으로 우뚝 서 은유할 수 있는 참된 ‘나’를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
01 創(창): 훈고적 기풍에서 창의적 기풍으로의 이동
타인의 생각을 따지는 훈고적 기풍을 벋어나 생각의 주도권을 갖고 스스로 뜻을 세우는 창의적 기풍으로 우리 삶을 채우는 일은 기본적으로 자신과 나라를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만드는 일이다.
02 殺(살): 기존의 가치관을 모두 벋어 던지다.
장자의 ‘자기살해’는 기존의 가치관에 결탁되어 있는 나를 죽임으로써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충만해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는 ‘虛心(허심)’의 상태를 갖게 한다.
03 德(덕): 나를 나로 만드는 힘
덕은 자기를 자기로 만드는 힘, 덕이 온전해졌다는 말은 자기를 자기로 만드는 이 힘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상태가 바로 ‘泰然自若(태연자약)’, 기세 없는 기세를 갖는 상태다.
04 人(인): 참된 사람이 있고서야 참된 지식이 있다.
참된 사람, 즉 인격적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야 참된 지식, 즉 세상이 진실을 밝히는 이론적이고 지적인 통찰, 새로운 시대의식을 가슴에 품는 활동을 할 수 있다.
5강 問答(문답): 공유하다
- ‘자신을 진실하게 대면하여 이룬 각성 후에 스스로를 황량한 곳으로 끌고 가서 고독하게 보냈던 그 기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한 번쯤 자신에게 진실해지는 시간을 가져볼 것을 정한다.’ 스승과 제자가 서로에게 묻고 답한다. 개인의 성숙만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인생에는 행운과 선물의 단계가 있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그 동안의 강의를 토대로 스승과 제자가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한다. -
01 論(논): 사유의 높이를 나누다.
내 생각을 ‘옳다’ ‘그르다’의 잣대로 사용하는 순간 우리 삶은 형편없어진다. 자신을 믿지 못하면서 어떤 꿈이 가능하겠는가? 자기 꿈마저도 다른 사람에게서 검증받으려고 한다면 여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도덕경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탁월한 사람은 논변에 빠지지 않는다. 논변에 빠진 사람은 탁월하지 않다.’ 대부분의 논변은 자신의 관점을 정당화하는데 사용하기에 논변을 뛰어넘으라는 이야기이며, 논변이 피상적임을 인식한 후 수단으로 생각하라는 겁니다. 질문도 ‘이렇게 해도 될까요?’같이 주체성이 없는 질문보다는 ‘나의 관점은 이렇다.’며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자주 지금 이것이 나 다운 행동인가, 나 다운 결정인가 묻습니다. 제 내면의 경고를 항상 의식하려고 노력하고 ‘泰然自若(태연자약)’하려 노력합니다. 박사과정중 어느 날 저에게 제가 보이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제가 저를 봤는데 인격적으로 성숙되지 않았고 학문적으로도 성취 없는 삶의 실패자 같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작파하고 중국 북방의 황량한 도시로 떠났습니다. 하얼빈 헤이룽장대학에 적을 두고 학문의 길을 가야할지도 처음부터 생각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처음으로 제 자신에게 진실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전에 각성의 시간을 가지려했지만 근본적이지 않았습니다. 내면이 정리된 후 북경대학 철학과에서 공부하며 처음으로 공부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32살 되기 전까지의 공부는 해야 하는 것이니 습관적으로 했는데, 학문간 위계질서와 그 안에서 철학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니 공부가 즐거워졌지요. 처음으로 공부가 재미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새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축복이지요. 그 후 세상을 보는 눈, 삶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진실한 사람은 태연자약에 가까워 질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부부싸움도 하지 않고 짜증도 내지 않는 성인군자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보다 조금 나아졌다는 것뿐입니다.
02 共(공): 철학적 삶을 공유하다
지적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는 지적세계를 참세계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지적 체계는 실재하는 세계를 반영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주도권을 항상 세계에 두어야지 지식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지식에 주도권을 주는 한 고정된 지식체계로 세계를 가두고 정지시키는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적 체계로 유동적 세계를 먹어버리려 해서는 안 됩니다.
‘순자’, ‘勸學(권학)’편에 나오는 글입니다.
積土成山(적토성산), 風雨興焉(풍우흥언)
積水成淵(적수성연), 蛟龍生焉(교룡생언)
積善成德(적선성덕), 而神明自得(이신명자득), 聖心備焉(성심비언)
흙을 쌓아 산을 이루면, 거기에 바람과 비가 일어나고
물을 쌓아 연못을 이루면, 거기에 물고기가 생겨나고
선을 쌓고 덕을 이루면, 신명이 저절로 얻어져서, 성인의 마음이 거기에 갖춰진다.
우리는 그저 흙을 쌓아 산을 이루기만 하면 됩니다. 산을 이루는 일을 하지 않고 비와 바람을 얻기만 기대하면 안 되지요. 우리는 비와 바람을 만들지는 못해도 흙을 쌓아 산을 이룰 수는 있습니다. 이렇듯 탁월함을 추구하고 덕을 쌓으면 행운이나 선물처럼 신명한 통찰력이 생기고 성인의 마음이 따라서 갖춰지게 되지요. 우리가 학문을 하고 인격을 수양하는 일을 진실하고도 성실하게 해나가면 통찰력이나 성인수준의 마음을 갖는 행운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창의력과 상상력은 적토성산 이후에 얻어지는 행운이나 선물 같은 겁니다. 카리스마도 마찬가지로 내일부터 카리스마를 발휘해 보려 하면 됩니까? 카리스마는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부터 드러나는 겁니다. 정리하면,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거기에 몰두하는 일이 ‘積土成山(적토성산)’이며 의도하지 않아도 주어지는 행운이나 선물이 카리스마입니다. 내공이 갖춰진 내면은 향기처럼 발산되니 각자의 향기를 준비하는 일에 몰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