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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Aug 01. 2024

899. 흉보면서 배운 할머니 입맛

흉보면서 닮아간다고 했던가

 해외에서 생활하는 둘째가 한국과자와 음식이 먹고 싶어 업체에 주문한 내역이 ‘꼬깔콘, 조청유과, 죠리퐁,.. 綠豆(녹두)’였단다. 어쩌면 작은 아이가 20여 년 전에 먹던 추억의 맛이었을 것이다. 추억의 음식을 주문하고는 엄마에게 전화해 항의했단다. ‘애를 어떻게 키웠는데 할매 입맛이야?’

 과자야 그렇다고 해도 ‘녹두’는 의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사실 ‘꼬깔콘, 조청유과, 죠리퐁’과. ‘녹두’는 연관고리를 찾기 어렵다. 아니 뜬금없다.


 어릴 적부터 먹었던 새우깡과 맛동산에서 벗어 나질 못한다. 함께 낚시 가는 동지들 막걸리 안주로 사가는 과자도 ‘새우깡과 맛동산’이다. 출시된 지 50년 넘은 과자가 아직도 잘 팔리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과자를 만드는 농심이나 해태하고는 전혀 엮인 사이도 아니고 주식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꾸준히 팔리는 것을 보면 끊지 못하는 마성의 맛이 있을 것 같다. 맛도 있지만 내게 새우깡과 맛동산은 그저 술빵이나 옥수수빵과 같은 추억의 음식으로 각인되어 있다.

 아내와 드라이브하거나 전통시장 구경 가면 노란 옥수수 빵을 집어 들곤 한다. 아내는 사카린을 넣었고 위생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반대하지만 소용없다는 것을 알기에 예전처럼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는다. 포기상태다. 사실은 나도 옥수수 빵이 맛나서 사자는 것은 아니다. 어렸을 적 어머님께서 밀가루를 막걸리에 반죽하여 쪄낸 구멍이 숭숭 뚫린 막걸리 빵이 생각나서 한 덩이 사자는 것이니, 내가 맛보고자 하는 것은 옥수수 빵이 아닌 어릴 적 추억이다.


 내 취향은 변함없이 ‘새우깡과 맛동산’이므로, 작은아이가 주문했다는 과자는 작은 아이가 어릴 적 마트에서 고르고 먹었던 과자일 것이다. 본인이 어릴 적부터 골랐던 ‘꼬깔콘, 조청유과, 죠리퐁’에 부모가 책임질 사항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녹두에 대해서는 부모가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그것도 족보를 따져보면 할머니 할아버지 책임이지만 두 분 모두 하늘나라에 계시니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 집 녹두전은 ‘지짐이’또는 ‘빈대떡’이라 불리는 ‘평양식 녹두빈대떡이다. 레시피가 그리 간단하지 않아 명절 때만 맛보던 음식으로 1년에 두 번, 추석과 설에만 했다. 어머니께서 연로해 지신 후 부터는 아내가 재료를 구입하고 손질했다. 손질한 재료를 갖고 가 어머니집에서 빈대떡을 부쳤는데 작은아이는 어려서부터 빈대떡을 부치고 싶어 했다. 조금씩 부치는 기술을 배워줬더니 추억의 음식이 된 모양이다.


 그래도 레시피가 간단하지 않은 빈대떡을 만들기 위해 녹두를 구입한 것은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작은 아이가 녹두를 얼마나 샀는지 모르겠다. 아내가 준비하는 것을 봐왔으니 적은 양은 아닐 것 같다. 손이 크셨던 어머니의 음식에 관한 기준은 ‘음식은 모자라면 안 된다. 야박해 보여서’였다. 손님 10분이 오신다면 한 가지 반찬만으로도 10분이 드실 정도가 어머니의 정량이었다.  

 ‘어머니 돌아가시면 나는 명절 음식 안 할 거야. 너무 힘들어.’하며 어머니를 흉보던 부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만만치 않은 양의 음식을 만든다. 모인 식구들이 충분히 먹고, 출가한 큰아이에게 바리바리 싸줘도 남는 양이다. 아내의 음식을 보고 자란 작은 아이의 눈대중도 작지는 않을 것이다.


 흉보면서 닮아간다고 했던가. 아내는 어머니처럼 피곤하게 살지 않을 거라 했지만 어머니를 닮아갔고, ‘요즘 호텔에서 4인 차례음식을 20만 원 정도에 팔아요.’라고 아내를 흉보던 아이들은 또다시 어머니를 닮아가는지 모른다.

 출가한 큰아이는 음식뿐 아니라 손이 큰 편이다. 달달한 초당옥수수를 좋아하는데 박스단위로 주문한다. 작은 아이가 녹두 500g을 구입했단다. 어머니는 녹두 2Kg 분량의 빈대떡을 만드셨고, 어머님이 발언권이 약화되었을 때 녹두 양을 1Kg로 줄였지만 여전히 많은 양이었다. 이웃 나눠주고 형제들이 먹고도 남아 집에 싸갖고 갈 만한 분량이었다. 작은 아이는 그 절반인 500g의 녹두를 구입했지만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아이들도 흉보면서 배운 가락이 있는가 보다.  ,


* 녹두 2Kg이면 돼지고기 전지 간 것 2Kg, 숙주 3Kg, 배추 5Kg, 고사리 2Kg, 대파 1.5Kg 계란 0.5Kg 정도 넣었다. 전체 16Kg이 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작은 아이가 구입한 녹두 500g은 빈대떡 4Kg 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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