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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Aug 15. 2024

905. 가을은 귀뚜라미와 함께 온다.

엊그제부터 귀뚜라미 울었다.

 이른 아침이라 주위는 고요하지만 매미소리 요란하다. 장마가 끝났고 본격적인 더위를 부르는 소리 같아 겁이 덜컥 났다. 장마이전의 더위는 더위를 준비하라는 豫信(예신)에 불과하고 매미가 불러온 살을 태울 듯 이글거리는 더위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한낮 기온이 35도를 가볍게 넘었고 새벽 최저기온은 26도, 취침시간 기온은 28도로 상시 열대야다.

 지루한 장마가 끝났으니 暴炎(폭염)이 시작될 시기는 충분히 되었다. 이른바 避暑(피서),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휴가를 떠난다. 산으로 바다로 떠나지만 더위를 피하러 가는 것인지, 더위를 맞으러 가는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시원한 바닷물에 몸을 담그겠지만 한낮의 열기는 피하기 어렵다.


 낚시 가자는 釣友(조우)들 제의가 있었지만 더위가 누그러진 뒤로 미뤘다. 말이 좋아 避暑낚시지만 이론과 실전이 판이하게 다르듯 상상과 현실도 갭이 크다. 머리에는 시원한 나무 그늘밑에서 여유롭게 낚싯대 한 대 드리우는 동양화를 떠올리지만 그런 풍경은 仙界(선계)에만 존재하는 상상 속의 장소다. 人間界(인간계)에는 그런 곳이 없을뿐더러 이 시기 낚시는 實力(실력)보다 體力(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물가에 가면 해도 둘이고 달도 둘이다. 달이 두 개면 운치라도 있겠지만 폭염에 해가 두 개면 견디기 어렵다. 물에 반사되어 비치는 햇볕으로 자외선 지수도 높아 눈과 몸이 매우 피곤해진다. 좌대 안에 설치된 에어컨 바람을 쐬기 시작하면 아무리 낚시가 좋아도 좀처럼 밖으로 나가기 어려워진다.


 하긴 이 시기에는 낚시뿐 아니라 모든 야외활동이 피곤하다. 극성스러운 마니아들은 골프도 밤에 하고 낚시도 밤에 하지만 이 또한 체력전이다. 사람은 變溫動物(변온동물)이 아니고 恒溫動物(항온동물)이다. 뱀과 개구리는 외부환경에 맞춰 체온을 조절하지만, 인간은 체온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기온이 오르면 땀을 내어 체온을 낮춰야 한다. 땀을 내는 과정에서 신진대사가 활발해지고 에너지가 소비되므로 피곤해지는 것이다.

 물에 반사되는 태양으로 인해 해가 두 개이니 한낮에는 낚시가 불가하고 체감기온은 더욱 올라간다. 게다가 좌대 외부에는 피부에 좋지 않은 자외선이 가득하다. 에어컨 틀어놓고 방 안에서 빈둥거리며 손이 아닌 입으로만 낚시하게 된다. 아마 붕어도 입맛이 떨어졌으므로 찌 올림이 시원치 않을 것 같다. 

* ‘찌 올림이 시원치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는 낚시가지 못한 者(자)들을 위한 자기 위안적인 멘트다. 붕어는 變溫動物이라 수온에 맞춰 생활하며 이 시기에도 찌를 잘 올려준다. 수온이 올라갔어도 사람처럼 입맛을 잃지 않는다.


 매미는 여전히 요란스럽지만 새벽산책길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반가웠다. 아직 동이 트지 않았지만 벚나무도 쉬지 않고 노랗고 붉은 잎을 만들기 시작했다. 달력을 보니 立秋(입추)가 지났다. 8월 9일, 19일째 열대야가 지속되는 폭염 속에서도 귀뚜라미와 벚나무는 節氣(절기)를 잊지 않고 있었다. 

 가을은 이렇게 시작되나 보다. 폭염의 기세에 눌려 입추가 지났는지 상상도 못 했으나 생각해 보니 엊그제부터 귀뚜라미 울었다. 아무리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해도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귀뚜라미 소리를 이겨낼 더위는 없다. 


 절기로 보면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것은 맞지만 본격적인 가을의 시작은 處暑(처서)이며 8월 22일이다. 處暑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는 말이 있다.’ 處暑가 하루빨리 귀뚜라미 등에 업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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