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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Aug 18. 2024

906.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2

김정운 쓰고 그리다. 21세기북스刊

걱정은 ‘가나다순’으로 하는 거다

 여수엑스포역에서 서울로 가는 열차를 탄다. 구례인근 지리산 풍경이 최고다. 들판에 생뚱맞게 아파트가 보이기 시작하는 천안을 지나면서 내 심리적 상황은 급변한다. 갑자기 온갖 걱정거리가 떠오르며 공연히 불안해진다. 매번 그런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리 크게 불안할 이유는 없다.

 걱정거리 가운데 진지하게 걱정해야 할 일은 고작 4%에 불과하다고 한다. 일어나지 않을 일이나 이미 일어난 일, 아주 사소하거나 전혀 손쓸 수 없는 일이 96%라는 이야기다. 일 년에 삼백일 이상을 ‘푸른 하늘’과 ‘파란 바다’를 볼 수 있는 여수바닷가 화실에 있을 때는 전혀 생각나지 않던 96%의 걱정거리가 희한하게도 천안 근처에만 오면 한꺼번에 밀려오며 불안해지는 거다.


 ‘공연한 불안’에 대처하는 나름의 해결책은 걱정거리를 노트에 구체적으로 적는 일이다. 제목을 붙여 ‘개념화’된 걱정거리 대부분은 ‘쓸데없는 것’ 임을 깨닫게 된다. 아주 기초적인 셀프 ‘인지치료’다.

 ‘공연한 불안’의 개념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가나다순’으로 다시 정리하는 것이 좋다. 이는 ‘개념의 개념화’ 즉 ‘메타 개념화’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불안의 실체가 더욱 분명해진다. 더 이상 정서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 정리되지 않은 불안은 기하급수적으로 부풀어 오른다. 어느 순간부터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불안과 걱정이 습관처럼 되어버린 사람이 참 많다. 돈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다 한들 밤마다 불안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성공인가. 96%의 쓸데없는 걱정에서 자유로워야 성공한 삶이다.


자주 욱고, 잠 푹 자는 게 진짜 성공이다.


당신의 행복 따윈 아무도 관심 없다.

 혼자 지내면서 생산적이려면 절대 TV를 봐선 안 된다. 특히 연속극이나 시사프로그램은 쥐약이다. 불필요한 감정소모가 너무 많다. 우연히 감우성의 서재가 나오는 연속극 장면을 ‘찰방’으로 봤다. 취향이 나와 사뭇 비슷해 방송사 홈페이지 다시 보기로 쭉 봤다. 촌스러운 허세가 자주 등장했지만 그의 서재와 사무실에는 내가 좋아하는 소품들이 많았다. 만년필, 스케치노트, 팬으로 쓰는 태블릿 등등, 대충 그림을 그리고 그 옆에 하이쿠 비슷한 짧은 글을 써넣는 ‘혼자 놀기’는 나와 아주 비슷했다. 


 연속극 주인공의 취향에 내가 주목한 이유는 ‘좋은 것’에 대한 욕심 때문이다. ‘좋은 삶’을 사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좋아하는 것을 많이 하고, 싫어하는 것을 줄이면 된다. 제발 ‘좋은 것’과 ‘비싼 것’을 혼동하지 말자. 자신의 ‘좋은 것’이 명확치 않으니 ‘비싼 것’만 찾는 거다. 요즘 여수의 내 삶에서 가장 ‘좋은 것’은 ‘삶은 계란’이다. ‘삶은 계란’을 아침에 아주 맛있게 먹는 것은 내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유학하며 독일인에게 배운 ‘좋은 삶’을 위한 기술 중의 하나가 ‘계란 맛있게 삶기’다. 독일인들의 ‘삶은 계란’ 사랑은 특별하다. 노른자가 아주 약간만 익어야 한다. 여행지 숙박업소의 서비스 수준은 아침식사에 나오는  ‘삶은 계란’의 익힘 정도로 평가된다. 덜 익은 노른자와 잘 익은 흰자를 적당히 섞어 먹어야 고소하다.

 어느 정도 삶아야 좋은 거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곤란하다. 그러나 맘에 들지 않는  ‘삶은 계란’은 언제나 분명하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좋은 삶’이 어떤 것이야 물으면 대답하기 힘들다. ‘좋은 것’은 항상 애매하다 그래서 ‘그냥 좋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싫은 것’, ‘나쁜 것’을 구별하는 것은 쉽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의 책을 읽었다. ‘불행 피하기 기술(롤프 도벨리저)’원제목은 ‘좋은 삶의 비결’이다. 지구 반대편에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참 즐겁다. 저자의 주장은 간단명료하다. ‘좋은 삶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하기는 힘들어도 나쁜 삶이 어떤 것인지는 누구에게나 분명하다.’

 행복 혹은 ‘좋은 삶’에 좀 더 실천 가능한 방식으로 접근하자는 이야기다. ‘싫은 것’ ‘나쁜 것’ ‘불편한 것’을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하나씩 제거해 나가면 삶은 어느 순간 좋아져 있다. ‘나쁜 것’이 분명해야 그것을 제거할 용기와 능력도 생기는 것이다. ‘나쁜 것’이 막연하니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참고 견딘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내 스스로 아주 구체적으로 애쓰지 않으면 ‘좋은 삶’은 결코 오지 않는다. 아무도 내 행복이나 기분 따위에는 관심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계란을 삶는다.


내게 삶은 계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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